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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Son of man
마태복음 24:26-39
다니엘 7:13,14
2025.3.2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인자"는 히브리어 "벤 아담, ben adam", 아람어 "바르 에노쉬, bar enosh", 헬라어, "후이오스 안쓰로푸, huios anthropou"입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다니엘서 7장(13,14절)의 천상의 인물, "인자"를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 하나님의 종으로, 유대인은 해석합니다.
복음서의 "인자"는 다니엘서 7장의 인자와 유사합니다.
복음서는 초월적 메시아의 종말적 재림을 말합니다(George W. E. Nickelsburg, Anchor bible dictionary, vi.149).
빌립보서 2:6-11 KOERV에 보면,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하나님과 꼭 같으시다는 점을 자신을 위해 이용할 것으로 생각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신분을 띠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8] 그분은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곧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자리로 들어 올리시고 그 어떤 이름보다 빼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우러르게 하셨습니다. [11] 그리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지혜의 성육신입니다.
빌 2:6-11은 주의 고난과 승귀의 종에 대한 지혜의 낮아짐과 높아짐을 말합니다(참조 1 Enoch 42; George W. E. Nickelsburg, Anchor bible dictionary, vi.149).
구약에서 "인자"는 하나님과 인간의 다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민 23:19; 사 51:12; 시 8:5).
민수기 23:19 KOERV에
[19]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기에 이랬다저랬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 한 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
여기서 "사람"이 히브리어 "벤 아담"입니다.
에스겔서에 "인자"(son of man, 히 ben adam)라는 말이 93회 언급됩니다.
에스겔 해석자들 간에 "인자"에 대해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평범한 지위(위치)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선택하여 하나님의 사자(메신저)로 보냄받았다는 의미에서, 특권적 존재로서 "인자"라는 표현을 썼다는 해석입니다(George W. E. Nickelsburg, Anchor bible dictionary, vi.137).
저(선형수)는 에스겔서의 "인자"는 두가지 의미(해석)를 함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흙의 아들, 즉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의 태도와 삶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을 유대인들(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사자(메신저)로 택하시고, 주의 주시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라는 의미가 "인자" 라는 말에 담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스겔에 쓰인 "인자"와 복음서에서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일컫는 의미는 차이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인자는 성육신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복음서에서 "인자"는 항상 정관사("the son of man")를 사용합니다.
요한복음 5:27만 예외입니다.
마태복음 24:26-37; 37-39 = 누가복음 17:22-37.
마태복음 24:26-28 KOERV
[26]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저기 광야에 있다!’ 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리스도를 찾으러 광야로 나가지 말아라. 또 ‘그리스도가 저 골방에 있다!’ 하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말아라.
[27]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어디서든 볼 수 있듯이 사람의 아들도 그렇게 올 것이다.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 내가 오는 것도 그와 같이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37-39 KOERV
[3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노아의 시대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38] 홍수가 나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
[39] 그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있다가 홍수를 만나 휩쓸려 갔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 = "인자"의 현현은 번개의 번쩍임과 노아 시대 홍수가 임하는 것과 비교됩니다.
인자의 나타나심은 우주적 차원 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의 오심은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하는 성격의 심판을 가져오게 됩니다.
누가복음 17:22-35, 37 KOERV
[22]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들 가운데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그가 있다.’ 또는 ‘보라, 여기에 그가 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좇아 달려가지 말아라. [24]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는 너희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에 그는 온 하늘을 비추는 번개처럼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25] 그러나 그에 앞서 사람의 아들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26]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도 노아가 살았던 때와 같을 것이다.
[27]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홍수가 나서 다 죽고 말았다. [28] 롯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고팔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있었다.
[29] 그러나 롯이 소돔을 떠나는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자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이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에 있는 물건을 챙기러 내려와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들에 나가 있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32] 롯의 아내가 어떤 일을 당하였는지 기억하여라.
[33]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다시 오는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자고 있으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35] 또 두 여자가 맷돌로 곡식을 갈고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37] 제자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언제나 주검이 있는 곳을 알려면, 독수리가 모여드는 곳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노아 시대 임한 홍수처럼, 롯의 시대 닥친 불심판 처럼, 소수의 의인들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저주의 심판이 대다수 인류에게 내려지게 됩니다(George W. E. Nickelsburg, Anchor bible dictionary, vi.142).
여기서 "인자"는 인류의 구원과 심판을 감당하는 분으로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8:38 KOERV에 보면,
[38]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음란하고 죄로 가득한 세대이다.
이런 세대에 살면서,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나와 나의 가르침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이 세상에 다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인자"를 풀어서 쓴 말입니다.
미래의 심판 주로 오시는 인자는, 그와 그의 가르침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를 장차 부끄럽게 여기신다고 합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그의 구원과 영광에 참여하기 어렵게 됩니다.
29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말리는 베드로를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시고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인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에 이릅니다(vi. 144).
그리고 승천과 재림과 심판과 구원의 길로 가는 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인자"는 예수님의 인성과 죽음과 심판에 연계됩니다.
또한 "힙순, hypsoun"(올리다, 높이다), "독사제인, doxazein"(영광스럽게하다)이 "인자"와 결합되어 쓰입니다.
그 두 단어는 장차 인자의 승귀의 지위를 드러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이 그분의 승귀(의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요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 사이에 예수님의 정체성의 긴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천상의 선재성이 두드러집니다(George W. E. Nickelsburg, Anchor bible dictionary, vi.146).
하나님이면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은 혼란스럽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천상의 선재성이란 땅에 사람으로 오시기 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계신분이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2:1-12 KOERV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의 믿음을 좋게 보셨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그곳에는 율법 선생들도 몇 사람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있구나. 하나님 말고는 감히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께서 곧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하느냐? 이 중풍병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라고 말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사람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죄를 용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증명해 보이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자, 일어나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중풍병 환자가 일어섰습니다.
그는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놀라운 일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인자 예수님은 질병을 치유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성육신의 말씀, 그리스도는 세계 전 역사의 중심 사실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삼위일체 존재에 근거합니다.
성육신은 전체 삼위일체의 일(역사)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보냄을 받았고,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성육신은 인간의 타락 이후 즉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의 오랜 역사를 거쳐서 준비되었습니다(Herman Bavinck, the person of christ, sin and salvation in Christ, Reformed dogmatics v.3, 235).
성경에 따르면, 성육신은 처녀(동정녀) 출생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은, 그의 전 생애를 거쳐서, 승귀 상태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성경 예언대로 메시아는 특별한 방식으로 기름부음 받는다는 것이었고,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받았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요한복음 3:34).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자유한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참되고 온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Herman Bavinck, v.3, 236).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분 중보자가 계시는데, 참 하나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심장입니다(Herman Bavinck, v.3, 237).
성육신이 불가능하다면 하나님과 인간 피조물의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그 교제가 망가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이고 새로운 인류의 머리입니다(Herman Bavinck, v.3, 237).
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아담과 달랐습니다.
아담은 성인이었고 그리스도는 젖먹이였습니다.
둘째 아담, 젖먹이는 낙원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악된 세상에 오셨고, 모든 방식의 유혹과 악에
마주쳐야 했습니다.
낙원의 아담과 달리, 그리스도는 죄악된 세상의 육을 입고 오셨고 고난과 죽음에 노출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낮아짐의 행동이었습니다.
젖먹이 그리스도는 키와 지혜와 지식이 자랐습니다.
땅 위에서 그 역시 한 순례자였습니다.
그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믿음과 소망 속에 살았습니다.
신과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 연합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알았습니다.
젖먹이 예수님은 도덕적으로도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었지만(역자 선형수 주: 성령의 온전한 능력이 항상 함께 하심으로), 유혹과 싸움에 대한 반응을 통해 그의 죄없음은 명확해졌습니다.
그의 능력 또한 그의 인성 안에서 제한적이었습니다.
부활을 통해 그는 만유의 주,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만유의 주로서, 중보자로서 그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경배받으실 그리스도이십니다(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3, 238).
사람의 몸으로 오사 인자 예수로 살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 예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