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帶曲贈孤竹使君(금대곡증고죽사군)
이달(李達:1539~ 1612)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서담(西潭)· 동리(東里).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렀다.
허균(許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스승이다.
서얼이었기에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 그 재능이 아까워 특별히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됐지만,
그것도 잠시, 벼슬을 버리고 팔도를 유람하면서 민중의 삶과 자신의 처지를 시로 읊었다.
그는 일흔이 넘도록 자식도 없이 살다가, 평양의 한 여관에서 쓸쓸히 죽었다.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저서로는 제자 허균이 간행한 『손곡집』 과 또 한명의 제자인 유형이 간행한 『서담짐(西潭集)』이 있다.
중국 상인이 강남 저자에서 비단을 파는데
商胡賣錦江南市 상호매금강남시
아침 해가 비치니 보라색 연기가 나는 듯.
朝日照之生紫煙 조일조지생자연
아름다운 여인은 꼭 치마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佳人正欲作裙帶 가인정욕작군대
화장대를 아무리 뒤져 봐도 돈 되는 게 없구려.
手探粧匳無直錢 수탐장렴무직전
-『손곡시집(蓀谷詩集)』권 6
*
유쾌하고 낭만적인 돈 꾸기가 이달(李達)과 최경창(崔慶昌) 사이에 있었다.
이달(李達)이 무장(茂長) 현감으로 있는 최경창을 따라 전라도 영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이때 이달은 사랑하는 기녀(妓女)가 있었는데, 그 기녀는 보라색 비단을 사서 치마를 만들고 싶어 했다. 비단 값 치를 돈이 없었던 이달은 시를 한 편 써서 벗 최경창에게 보냈다. 시의 제목은 「고죽 사또에게 주는 금대곡(錦帶曲贈孤竹使君, 금대곡증증고죽사군)」이다.
이 시를 받은 최경창은 “만약 이 시를 값으로 따지면 어찌 천금만 되겠는가? 가난한 고을에 돈이 넉넉하지 못해서 시 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겠구나” 하면서 시 한 구절에 쌀 열 석씩 계산하여 모두 40석을 보냈다. 이러한 낭만적인 이야기가 허균의 『학산초담(鶴山樵談)』과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려 전한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도서출판 북멘토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