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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플라톤
보통 ‘국가’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는 플라톤의 작품 가운데서 중기의 대표작이다. 초기 작품은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스승의 사상과 그의 사상이 결실되는 가장 원숙하고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또한 말기의 작품은 플라톤의 사상이 더욱 심화 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초기 작품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대표한다고 하면 중기 작품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국가론>이다.
<국가론>의 내용은 오직 국가에 대해서만 논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그리스 문화의 전통이 담겨져 있으며, 교육, 경제, 사회, 예술, 도덕.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 등의 사상이 총망라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하나의 작품을 읽고 이와 같이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문제를 제기해 주는 책은 아마 유예를 찾지 못할 것이다. 비록 여기에 수록된 내용이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시대적 제한으로 현대의 우리에게는 매우 소박하고 어떤 면에서는 유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이 순수하고 간결하면 할수록 그만큼 문제의 핵심을 제시해 주고 있어 음미할 보람을 느끼게 한다.
플라톤의 사상은 옛날에 이러한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그러한 것이 아니다. 현대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유럽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의 사상에 대한 일련의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곧 플라톤의 사상이 유럽의 철학사의 주맥이 되어 각 시대의 사상 속에 영해되어 있어, 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서구의 사상을 알 수 없는 그러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30여 대화편 가운데서 가장 잘 플라톤의 사상이 요약된 대표작인 <국가론>은 교양인의 필독서라 아니 할 수 없다.
본 대화편은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에서 정의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당시의 소피스트를 대표하는 트라스마코스는 정의는 강자가 자기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의가 어떤 자에게는 의로운 것이고 좋은 것이지만 다른 자에게는 불의요 좋지 못한 것이 되는 그러한 상대적인 것에 불과한가 하는 음미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의롭고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정의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이를 잘 파악하기 위하여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보다 더 확대된 구가에 있어서의 정의를 밝혀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국가에로 대화를 옮겨간다.
국가의 기원에 대해 플라톤은 신화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매우 현실적인 발생론을 제기한다. 국가는 필요에 의해 생긴다고 하고 그 필요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지며 전문적인 분업에는 이에 적합한 인간이 종사하게 마련이다. 분업으로 생성된 제품의 교환을 위해 상업과 화폐가 필요하게 되며 전체 국민이 풍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영토를 요구하게 된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이웃나라와의 전쟁이 불가변하게 된다.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전사가 필요하며 또한 국가를 인도할 지배자로서의 철학자가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목표는 순수하고 명백하다. 만인의 공동 목표인 행복을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이러한 목표에 대한 참된 인식과 목표 달성을 위한 지식은 생산자나 전사에게는 기대할 수 없고 오직 철학자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철인 정치의 이상을 내세운다. 인간이 소규모의 유기체인 것처럼 국가는 거대한 유기체이다. 인간에 있어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거대한 인간인 국가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진다. 인간에 있어서는 영혼의 능력에 차이에 따라 세 가지의 인간형으로 분류되는데 마찬가지로 국가에도 이에 대응하는 세 계급이 생기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욕구에 따라 사는 자로 구성되는 것이 서민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수요 되는 여러 가지 재질에 대한 욕구로 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농공상인 계급이다. 이들은 다른 두 계급에 속하는 자에게 ‘보수와 영양을 공급하는 자’이며 국가의 경제적인 토대를 이루지만 통치에는 전혀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수호자 계급의 보호와 지도를 받으며 우수한 자는 상위계급으로 오를 수 있다. 이들은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이므로 사유재산과 가족제도가 허용되며,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인정되고, 수호자의 친구이며 형제로서의 대우를 받는다.
둘째, 기개 있는 자에 상응하는 수호자 또는 보조자는 용기와 명예를 높이 평가하는 계급이다. 이들은 밖으로 국가를 수호하고, 안으로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확보하는 임무를 갖는다. 이들은 부보다는 명예를 존중하기 때문에 일체의 사유재산이나 가족은 허용되지 않으며 부인과 자식까지도 공유해야 하는 완전한 공산 사회를 형성한다. 개인적인 이해가 전체에 대한 그들의 봉사를 방해하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천성에 있어 남자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남자와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권주의자의 선구자는 플라톤이라 하겠다.
셋째, 이성적인 것에 상응하는 최고 계급 즉 통치자 또는 철학자는 국민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현명한 자가 되게 마련이다. 그들의 사명은 입법과 그 실시, 교육과 그 감독이다. 그들은 순서에 따라 최고의 관직에 취임하고, 나머지 시간은 철학적 탐구에 소비한다. 즉 학문과 최고선의 이데아의 탐구에 헌신하는 것이다. 선의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정상이며 이에서 모든 질서와 정의는 그 자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이상국가의 체제와 밀접히 연관이 된다. 선의 이데아의 실현을 위한 적합한 체제가 이상국가라면 이에 따른 교육이 바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모든 유년기의 어린이에게 체육을 통한 건전한 신체의 단련이 이루어지며, 다음에 음악 교육을 통해 정서와 고상한 정신에 대한 체득과 조화를 도모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한 음악에는 그 교육 내용에 어울리는 것으로 엄선해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교육에서 장차 통치자 될 자질에 대한 유의가 있어야 하며, 우수한 자질을 가진 자는 더욱 상위의 교육에로 진학이 허용된다.
음악 교육에는 문예에 관한 교육도 포함이 된다. 이것은 신화의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지만 호머나 헤시오도스의 신화 가운데 인간의 건전한 육성에 해롭다고 여겨지는 내용은 제외되어야 하며, 재구성되어야 한다.
다음에는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기에 시작과 문예, 음악,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정신의 훈련과 양식이 될 수 있는 수학을 배우게 된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의 정문 현판에 ‘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플라톤은 수학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일상적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수학 교육이 아니라 정신의 훈련을 위한, 즉 추상적이며 이념적인 이데아의 인식을 위한 기초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교육 과정 속에서 방자하고 나약한 풍습은 배격되고, 다만 인간을 고귀하게 하고, 진리와 선과 미에로 인도하는 내용만이 허용된다. 이에 의해 참된 도덕국, 높고 순수한 신의 관념, 죽음과 무상이 따르는 현세적 복리에 대한 멸시감 등이 어린 영혼에게 싹트게 하려는 것이다.
예문과 수학의 교육에 이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이 실시된다. 그후 일차 선발에 의해 천분이 적은 자는 군인의 신분에 머무르고, 다른 자들은 더욱 높은 학문을 열심히 그리고 조직적으로 연구하게 하고, 2차 선발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선출된 우수한 자는 다시 5년간의 존재자의 인식(이데아론, 변증론)에 대해 연구하게 되며, 보다 높은 정사의 임무를 맡게 되고, 여기서 남은 자는 그 밖의 여러 관직을 맡게 된다.
선발된 우수한 자들이 15년간 자기의 맡은 직무를 원만히 마치고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른 50세가 되면 비로소 통치자, 철학자가 되고, 순번에 따라 국가의 중책을 맡아, 다른 자들을 지배, 교육하게 된다. 이들 통치자는 사후에 사자들이 산다는 행복의 섬으로 옮겨져 ‘행복하고 신과 같은’ 인간으로서 기념되고, 국가의 존경을 받게 된다.
이 새로운 이상국가의 대규모 설계에서 플라톤은 기성 국가의 정치, 사회의 질서와 생태를 매우 예리하게 분석,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이상국가의 건설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생생하게 제시해 준다.
과연 플라톤은 이러한 이상국가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하나의 유토피아로서만 제시한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그의 국가는 하나의 원형(이데아)으로 이데아가 경험에 의해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거의 그것에 가까운 국가는 실현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국가에 대한요구는 사물의 본성,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정의와 부정의의 토대가 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인간들의 상호봉사와 생산의 필요를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국가가 생성되는 기원을 ‘필요’에서 찾고 있다.
플라톤은 인간과 같은 유기체라는 전제에서 국가전체의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상 국가를 설계했다. 국가는 통치자 수호자 그리고 생산자 계급으로 구성된다. 소수의 철인이 통치하고 다수의 방위자 계급과 더 많은 생산자 계급의 사람들이 통치자의 지도에 따라 자기가 하게 되는 일에 만족하고 또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나라이다.
이 국가의 통치자에게는 지혜의 덕이 있어야 하고 수호자 계급에게는 용기와 덕, 즉 지식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것(철학)을 모두 소유해야하며 생산자 계급에는 특히 절제의 덕이 필요하나 또한 이 절제의 덕은 모든 계급을 통해서 작용한다. 이 세 계급이 자기 천성에 잘 어울리는 한 가지 일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여기에 충실할 때 정의로운 나라가 된다. 여기서 플라톤은 비민주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진정한 의도는 목수가 지배자가 되는 중우정치를 낳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인간의 영혼도 국가의 구조에 대응해서 지혜의 근원이 되는 이성과 용기의 근원이 되는 기개 그리고 절제의 덕을 갖게 되는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부분이 조화를 이룬 자를 정의로운 사람이라 한다.
철인지배자의 정치권력은 권력투쟁이나 경쟁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화의 원리에 따라 의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플라톤은 정의로운 국가의 지배는 반드시 철인이어야 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 같이 그 이유는 근본이 되는 선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도덕적으로 지식에 일치하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 탐구를 사랑하는 학문적인 인간이야말로 이성적인 인간이며, '미의 idea'를 창출할 철인이 되어지는 것이다.
교육이란 맹인의 눈에 시력을 넣어 주듯이 우리의 영혼 속에 없던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진리를 배울 수 있는 능력과 진리를 볼 수 있는 기관을 영혼 속에 지니고 있어서 바로 이 영혼 전체를 전환하는 사물에서 불변의 실재에로 전환시켜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대화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교육의 핵심인 '선'이야 말로 최고의 지식이며, '선'이 함께한 통치가 될 때 최고의 이상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