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회 『詩하늘』시 낭송회는 『文藝韓國』으로 문단에 나오신 후,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름의 구도자적 외길 걷기를 감행하면서 풍류정신이 떠받드는 전통적인 서정 세계를 일구고 가꾸는 江祜(강호) 김주곤 시인을 모시고 시 낭송회의 밤을 갖고자 합니다. 그의 시편에 면면히 흐르는 서정적 자아들은 불교적 세계관, 동양적 지혜와 인생관과 만나고, 그 바탕에는 향토적, 토속적 정서와 풍류정신이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고집스런 미덕을 지닌 시인을 만나 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간『소리 없는 소리』(2006, 모아드림) 외 4권의 시집을 상재하셨습니다.
이번 시 낭송회에서는 시집『소리 없는 소리』(2006, 모아드림)의 시편들을 감상하면서 정겨운 시간 함께 가졌으면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모쪼록 귀한 시간 내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고, 아울러 시인의 시집 상재를 축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일시: 9월 15일(금) 오후 7시 30분
- 장소: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 빌딩 지하 1층 카페 ‘스타지오’
- 회비: 10,000원 (식사와 음료, ‘시하늘’책자 제공)
- 주차: 3시간 무료
詩하늘 운영위원 일동 올림.
*김주곤 시인의 약력
-경북 청도에서 남
-호는 江祜(강호)임
-문학박사로 대구한의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건축조형대학장, 경산대학교 대학원장, 대구어문학회장을 역임함
-저서에는 『한국시가와 충효사상』, 『한국불교가사연구』, 『한국가사와 사상연구』, 『한국가사연구』외 다수
-시집 『시들지 않는 또 하나의 時間』(새미), 『아물 수 없는 空間』(푸른사상), 『時空의 노래』(새미), 『색깔 없는 무지개』(고요아침), 『소리 없는 소리』(모아드림)이 있음
-현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한국불교문인협회, 대구불교문인협회, 국제 펜클럽한국본부회원 및 대구광역시 지역위원회 회원
*시편들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소리
-김주곤
바람소리 귀 울리고 사라졌다
물소리 조잘조잘 바다로 갔겠지
삼계의 물소리
마음의 소리에 일어난다
삼라만상은 자기의 소리를 낸다
제각기 아름다운 소리
각양각색 자기의 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대우주의 운행에는 소리 없는 소리가 있다
소우주인 인간에도 육근의 색깔 없는 소리
삶의 하얀 소리를 듣고 싶다
말(言語)
-김주곤
말은 사상의 옷
찬란한 옷은 호랑나비 같이 난다.
간편한 옷에 지혜가 둥지를 틀고 있다.
언어는 마음의 호흡
마음의 심부름꾼이 될 때
고뇌를 고칠 수 있는 명의(名醫)가 된다.
사상을 변형시킬 대화의 힘이 되면
입에 있는 마음보다
마음속 입으로 나의 심장을 울린다.
말은 실행의 그림자
정신의 호흡이다.
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회에 약을 주는 의사 되어
칼 보다 무서운 혓바닥 조심해야 한다.
말은 꿀보다 달고, 독사의 독보다 독하니
설망어검(舌芒於劍) 호변객(好辯客)으로
구업(口業)1)을 짓지 말아야 한다.
금석과 같이 확실한 말(金石之言)2)만 하여
말의 홍수시대에 창파만경 헤엄 잘 쳐야겠다.
1)惡口·兩舌·綺語·妄語
2)荀子 <非相篇>
나그네
-김주곤
인간은 인연 따라 헤매는 외로운 방랑자.
달빛 마시고 역사의 피리 소리를 듣는다.
법륜의 수레를 타고
기타 소리에 희망 엮으며 돌아간다.
여인숙 등불이 꺼지면 홀로 조는 가로등 밑에
오동잎 떨어지니
가을바람 잎을 모아 서천으로 가려나.
삭풍 불기 전에 도포자락 휘날리며 무전여행 가련다.
나는 사바세계를 홀로 가야 하는 나그네.
고비사막 모래를 양식 삼고
선인장 꽃향기 마시며
우주를 여인숙 삼아 학 타고 수미산을 넘으리.
진아(眞我)
-김주곤
말없이(默言) 나의 길을 걸어 가고파
미생(未生) 이전의 참나(眞我)를 바로 깨달아
불타는 영혼을 다 바치고 싶다.
몸(肉體)을 마음(眞我)에 맡긴 여생,
법계의 참 벗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며
영원 불멸의 계율을 노래하며 학 타고 날아가리.
빛나는 희망은 별 빛이 인도하고
간절한 소원은 달님이 풀어주니
텅 빈 허공을 구름 타고 은하계로 떠나리.
고향 땅 선무산 백일홍은 붉게 피었는데
뜰 앞 매화꽃 향기는 입을 다물고 있네.
아침상에 앉은 붕숭아는 무릉도원 이야기
부평초 같은 인간 세상 무애가나 불러볼까.
가슴속 뜬 달 허공을 밝게 할 때
다정한 달빛은 내 마음 밝게 하네.
혼탁한 온 누리 복사꽃 피우고
지구 한 모퉁이 창칼 놓고 평화 노래 불러볼까.
통일
-김주곤
통일과 균형은 예술의 신비
문예는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나
단순성은 개체행동의 일치를 요구한다.
통일성은 긴장과 마찰을 용인하니
반대물의 조화 위에 설립된다.
정치의 현상을 유지하고 통일을 추구하며
통치의 목적은 인류의 선복(善福)이다.
통치가 필요 없이 통치되어
만리동풍1)되어 인류가 복되게 하소서
이 땅, 천지의 음양을 소화2)되게 하여
분단된 삼천리 금수강산 무궁화 만발할 때
헤어진 배달겨레 태극기 펄럭이며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소서.
1)『漢書』<終軍傳> : 萬里同風 ; 天下가 統一되어 遠近이 모두 풍속이 같음을 이름.
2)『書經』<周官篇>
산(山)
-김주곤
산을 좋아한다
지구의 산들은 천년의 대사원
어머니같이 위대한 창조자
산은 숱한 자연풍경의 시초요 종말이다.
세상번뇌 잊고 싶을 때
용이 날고 봉이 춤추듯(龍飛鳳舞)1) 하면
신령스러운 산에 올라 참선하고
노래 소리 듣고 싶으면
깊은 산과 그윽한 골짜기(深山幽谷)2) 찾아가
물소리 들으며
천암만학(千巖萬壑)3) 기맥 받아
선열(禪悅)을 고산차 마시면서
다수(茶壽)를 즐기다가 초생요사(超生了死)하리.
마음이 가난할 땐 삼신산(三神山)4) 올라가고
태고의 신비를 듣고 싶을 땐 백두산 천지를 본다.
만학천봉 자랑할 땐 히말라야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어깨 올라 태극기 꽂는다.
밝은 달이 잣나무에 걸려 울고 있을 땐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법등 밝혀
중생의 심등(心燈)을 밝혀주리.
뻐꾹새가 우는 적막한 공산
누워 있는 큰산은 하품을 한다.
서있는 작은 산 기린 같은 목을 들어 수미산 바라볼 때
두견새 목 다듬고 매미가 열창하면
세레나보다 어여쁜 꽃 방긋웃네.
세상인사(世上人事) 구절양장의 천첩옥산(千疊玉山) 묻어두고
만수천산(萬水千山) 빈손으로
덩더쿵 춤을 추며 에베레스트산에 연 날리고 싶다.
고수다리 아래 낙동강 흘러간다.
학우들의 사랑도 흘러갈 때
학창시절 추억이 알알이 익은 우정.
환희와 기쁨 벽계수 되어 흐르고
비극과 슬픔은 누렇게 흘러간다.
새벽은 오고 캄캄한 밤은 오지 마라.
세월은 흘러가도 추억은 보낼 수 없다.
낙동강 맑은 물 청도 땅에 쉬어 보렴.
잉어 떼 반기면서 춤을 추며 놀 때
과거 보러가던 선비 쉬어가던 납닥바위
알상 급제한 선비는 구름 타고 날아간다.
낙방한 사대부 어르신, 떡절에서 떡을 먹네.
도불습유(道不拾遺)의 미풍양속 먹고사는 청도,
영원토록 맑고 푸른 물같이 흘러가라.
용각산은 두 손들고 천세만세 장수를 주고
낙동강 한내 강은 손을 잡고 한량없는 복을 줄 때
소 싸움하러 각국에서 온 황소의 고함소리.
승리한 누른 소 배가 불러 잠만 자고
달아난 검은 소의 울분 노래하며 떠나가네.
수덕사(修德寺)
-김주곤
비구니 수도장 덕숭(德崇) 총림 수덕사는
화장(化粧)하지 않는 소박한 마음씨에
단아하고 화려하지 않는 난초 같은 맵씨다.
꾸밈없고 거짓말하지 않는 섬세한 솜씨가 있는
여승의 부사덕1)을 겸비한 사찰이다.
아름다운 자태의 대웅전은 침묵하고
관음화신이 수덕각시의 모습으로 들어간 관음바위 서 있다.
대화와 행동으로 선풍을 일으킨 경허(鏡虛) 무언 설법하고
만공(滿空)이 여생을 보낸 작은 초가 소림초당(少林草堂)에
<님의 침묵> 들리는 것 같다.
불유각(佛乳閣), 만공(卍空) 글씨,
탑명을 한글로 새긴 만공탑 하늘 떠받치고 있다.
김일엽(金一葉) 기거하다 열반한 환희대에는
<청춘을 불사르고> 간 곳 없다.
그 앞에 추모탑이 마당에 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