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요즘 일과는
6시 전후면 저절로 눈이 떠져 기상을 합니다.
새볔이슬을
베잠벵이에 스치면서 메줘야할 밭 한떼기도 없는 주제에 기상만은 부지런한 참한 농사꾼 못지않지요
쭈구리 데불고 동네 공원 한바퀴를 돌고 그래도 남아도는 시간은
깐에
중핵교 시절에 기계체조반에 잠시 몸담은 전적이 있을만큼 지금도 유연성 하나만은 자신해설라므내
일주일에 서너번은
저학년만 가능한 벨리댄스 핫요가.라인댓. 에어로빅 반에 뒤에 서서 흉내나내는 품새지만 부지런이 따라는 다닙니다.
군산시 월명동 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군산여중고는 한 울타리안에 있는데요
교문 지나서 쭉 안으로 들어간 길에 상운동장이 있었으며
"내일 세상이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으리라"는
스피노자 말쌈의 팻말을
6년간 눈이오나 비가오나 최소 하루 한번씩은 보아왔죠
그래도 그시절의 군산여중은
전주여중 다음으로 전라도에선 명문으로 쳐주어
김제 옥구미면 이리 장항 서천 등지에서
유학(?)을 가던 그시절 학교에서 방귀깨나 뀌던 아이들만 지원하던 학교였읍죠 ...
지금도 배를타고 내려 한 30여분걸으면
커다란 자목련이 봄이면 그 가지같은 큰봉우리를 하늘로 곳꼿이 머리를 쳐들고 서있던 백화양조 얕으막한 담장을 지나서 학교 교문에 다다르던 길목의
모퉁이 모퉁이가 4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그대로 손에 잡힐듯이 선연합니다.
일제 강점기때
너르고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소출되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위해 군산내항은 일본인에 의해 개항됬으며
전진기지로 이용되어 북적거리고 융성했고
내지 일본인이 많이 상주해 사는 영화동 신흥동 일대는 적산가옥들이 200여채나 남아있어 그 시절의 영화를 고스란이 보여주고 있읍니다.
그러다보니 일본 거류민이 많이 살던지라 졸업생들중에 귀국한 선배들이 모교에 희사한 도서관이며 그시절 보기 어렵던 커다란 강당이나 책들이 도서관에 빼곡했엇지요.
같은반 아이였던
군산옥구 미면인가 사는 염전하는집 친구 따라서 가본 그아이의 얼굴이나 이름은 가물가물한데도
군산 그애네 집 근처
옥구염전에서
바라다보던 만경강 갯벌과 서해쪽으로 바라다보이던 시계는 넓고도 광활했다는 기억입니다.
천일염은
바람이 불거나 서늘한 날이 아닌 요즘처럼 찌는듯한 맑은 더위에 건조한것
염전은 시간이 길러내는 밭인데 남서풍에 말린 소금이야말로 최고의 진짜 짠맛이며
그 풍화작용의 시작은 신생이요 끝은 소멸입니다
분명이 먹는 식품인데 광물로 분류되어지며
소금은 바닷물을 졸여서 삼투압을 갖는 성질이며 염부의 수없는 고무래질로 무한반복되는 결정체이자 이제는 중국산에 밀려 사라질 위기의 산업이지요
한조각의 소금은 열댓말의 바닷물의 풍미를 품고있읍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니 최고의 맑은 순수짠맛을 내는 상등품은 남서풍에 자연건조된거라는 어릴쩍 지식이 뇌리에 남아
장을 볼때 장사꾼이 그 무어라 줏어섬기던 옥석을 가려낼 정도의 혜안은 자부합니다.
옥구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은 그야말로 금쌀이었읍니다.
금쌀로 밥을 지으면 우선 찰지고 윤기가 자르르 흐릅니다.
찰지다는 말은 밥알의 응집력이 좋다는 말인데요
(몇십년전에 미국에서 먹어본 쌀은 알랑미같이 푸석하니 밥알이 알알이 겉돕디다
중국집에서 테이크아웃해먹던 브로콜리나 새우 볶음밥은 알알이 각자 노는데요
중국이나 스페니쉬쌀은 서로 엉겨붙으면 하질이라니 상품으로 치는 기준이 나라마다 제 각각이지 싶읍니다.)
밥알이 서로 엉켜붙는다고해서 쌀이라고 다 금쌀은 아니지요
밥은 차지면서도 밥을 입안에서 씹을때 한알씩 따로 씹히며 단내가 향긋하게 퍼지면서 찰기가 살아있고 미각과 촉각의 결합이 환상를 이뤄야 비로써 특상품인 금쌀이라 명 명 되어지는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뭥미
제가 미식가라도 되지싶은데요
먹는거는 그게 뭐든지 주는데로 없어서 못먹는 이른바 잡식성입니다만
죄송한 한 말씀 올리자면
국장님
딱 한가지 못 먹는게 보신탕 .. 되겠읍니다요
제가 옥구,,호남평야쌀 예찬론자가 된것은
어려서 하------도 윤기 잘잘 흐르는 하얀 이밥에 무우 듬성듬성 썰어넣은 쇠괴기국 원없이
배두드려가며 먹는게 일구월심 소원인지라 그리한거 같으므니다.
사족을 하나 부치자면요
순종은 후사가 없는걸로 알고있고요
대원군의 하나뿐인 딸이 조씨 집안으로 출가했는데요
그 여식이
예전에 국정원장을 지냈으며 종로에서 출마했던 이종찬씨의 어머니이며
한말의 거부였던 우당 이희영의씨의 아들이라지요
아마도
첫댓글 그때그시절 이 그리워지네요--
어쩌면 그때그시절을 생생하게 글을쓰셔네요
감동입니다
갑작이 장항도선장 에서군산으로 가는 배가 그리워지네요
넵. 우리 쭈구리님.
잡식성인 제가 메뉴 선택이 서툴러요.
선택은 님께 부탁드립니다.
언제 시간 되실때 마음의 고향인 서천의 정취를 느껴 보실까요. *******
쭈구리님의 소시적 시골 정서를 재밌게 표현했군요 ....
보신탕 못 먹는 것은 저하고 같고~~ 시골에 살던 모습이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