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다수 포함되었지만 일단 그냥 써내려 갑니다.
14시가 될 때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었습니다. 전력수급불균형에 대한 아무런 예후나 통보도 없었죠.
그런데 오후 2시가 지나면서 부터 고객들로부터 전압강하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전력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전력수급상황 그래프를 보니 전력예비율 6%(여유전력 400만 kW)이상을 줄곧 유지하고 있어, 일부지역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했습니다.
14:30분이 넘어가서야 송변전계통쪽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들리고, 제한송전 가능성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14:40분쯤 통신사에서 중계기 전원이 차단되었다는 신고가 있었고, 원격제어 가능한 약정고객들에게 부하차단에 대해 긴급통보하라는 지시와 동시에 동 고객들의 전력공급을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15:00부터 제한송전 예정이라는 긴급통보가 있었으며, 차단 우선순위 선로에 대한 긴급검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게 14시 50분쯤이었는데 이때까지도 전력거래소 수급상황 그래프는 여전히 예비율 6%였고 YTN, KBS, 인터넷,트위터 어디를 뒤져봐도 이에 대한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때문에 모두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15시가 넘어가면서 관할 변전소들이 실제 선로를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폭증하는 민원으로 모든 부서의 업무가 마비되었으며 직원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선로는 우선순위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가량씩 동시에 4~5개 선로씩 차단 되었고, 17시까지 동일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19시가 넘어서야 모든선로에 대한 전원공급이 완료되고 겨우 상황이 일단락되었는데, 저희가 관할하고 있는 선로중 1/4 이 넘는 선로가 정전피해를 입었습니다. 입사후 초유의 대사건이 이렇게 황망중에 종결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로 인해 눈코뜰새 없이 바빠질 겁니다. 그 바쁜 업무중 80%가 고객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살고있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부터도 욕을 먹고 사과를 드려야 했습니다.
물론 한전의 과실이 없다할 수는 없겠지만 그와 관련해 항변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인터넷에 올리면 욕만 처들을 것이 뻔하니 미소님의 카페를 빌어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 예방책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장관이 전력거래소의 데이터가 허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 예비전력이 24만KW, 즉 예비율 0.35%였다고 합니다. 한전에도 저 허위정보가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전직원들은 모두 저 허위정보에 속았습니다. 만약 저 전력거래소의 전력수급 데이터가 한전에도 정확하게 통보되었더라면 이런 혼란은 예방 내지는 최소화가 가능했을 겁니다.
분명 관련부서로부터 사전안내나 재난방송, 긴급절전홍보 지시가 내려올 것이니까요.
상황을 인지하고 제한송전을 시작할 때까지 약 20~30분동안 전력거래소 중앙급전분소의 통제하에 있는 송변전 계통쪽에서만 정보가 나왔고 그 외 어느 부서도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못하고 있던 상황으로 그저 보이는 데이터와 다르게 수급상황이 좋지 않구나 하는 정도였죠.
저 전력거래소가 대체 뭐하는 곳일까요.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력거래소가 한전인줄 알고 있습니다만 실은 지경부 산하 기관으로 전력수급과 관련해서 전력계통 전반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수요는 얼마나 될지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몇개의 발전소를 가동할 지, 발전된 전력은 얼마에 매매할지에 대한 가격결정은 물론, 수급안정을 위한 긴급 제한송전 결정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막강한 기관입니다.
전력거래소는 2001년 설립되었는데 전기위원회와 함께 한전의 민영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전력거래소의 경영진이 전부 지경부 퇴물관료이거나 정권의 낙하산들로 채워집니다. 한전은 실질적으로 지경부 산하 공기업이라서 그런지 이 전력거래소까지 한전을 동반자나 긴밀한 협조자로 보지않고 그냥 하부기관 취급을 해버립니다.
그렇다고 전력계통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자들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경부 출신이면 아무나 앉아있는 그런 자리란 얘기입니다.
전력이란게 발전소에서 발전한 전기가 송전선로를 통해 변전소를 거치고 전주를 타고 각 가정이나 업소, 공장에 공급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고, 전국적으로 망 연동을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전이 발전부터 배전에 이르는 단계를 전부 총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빠른 통제가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먼저 발전소가 분리되었습니다. 명목상은 한전 자회사이지만 올해 현 정부가 시장형 공기업이란 명목으로 그마저도 통제권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송변전 계통을 유지관리하는 것은 한전이지만 단순히 관리만 할뿐 계통운영에 관한 정보나 권한은 전력거래소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제한공급에 대한 거래소 지시가 있으면 한전은 자의적 판단을 배제한 채 즉각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그렇습니다.
한전은 전력공급의 주체이면서도 정작 권한이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겪고나서 저는 마치 정권과 재벌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한 자괴감에 스스로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제가 보기에 역설적으로 이번 정전사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벌써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낮에 일어났고 저녁이 오기전에 복구되었습니다. 0.35%의 예비율로 블랙아웃이 안되었다는 것은 신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수초만 늦었어도 계통은 무너졌을 것이고 아마 족히 1주일은 불꺼진 대한민국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력수급위기는 이미 지난 겨울에도 있었습니다. 여수산업단지 정전 기억하시나요?
만약 그 여수산단에서 정전이 안되었다면 그 당시에도 제한공급이 불가피했을 정도로 심각했었습니다.
올 여름은 어떤가요.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지나갔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올 여름에 이미 사단이 나도 났을 것입니다.
이제 다가오는 겨울이 걱정입니다. 이미 여름보다는 겨울의 부하피크가 더 높은 상황입니다.
또 겨울의 피크시간은 저녁 7~8시 무렵으로 이 시간에 정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직한 일입니다. 아마 무법천지가 되 버리고 말거예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라면 ..... 이제 이 사고는 반복될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물리적으로 그렇습니다.
매년 원전 5기에 해당하는 수요폭증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댓글 일단 저부터도 전기를 막쓰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해야겠네요. 그린 에너지 등에 대한 대안은 안되는 것인가요? 그리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후 벌어질 이 정부의 추악한 행태에 대해 글을 올릴까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이런 용기있는 발언이 람세스님에게 해가될까 걱정됩니다. 미국전기 민영화에 버금가는 일이 이땅에 벌어지고 있었군요... 힘내시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한전을 욕하기 보다는 문제의 근원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공공서비스를 위한 국영기업들을 효율과 이익이라는 구실로 민영화하였을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미국의 사례에서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는게지요. 대한민국이 보일러인가. 거꾸로 가게.
잘 읽엇습니다 그린에너지 운동 실천해야겟네요
이런일이 몇 번 더 발생 된다면, 공기업의 나태에 대한 질타와 민영화로의 여론몰이가 있을 수 있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몸 조심하시고요...
이러다 람세스님에게 해가 가지는 않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참... 알수록 점입가경인 상태네요.
전혀 몰랐던 일이네요. 저도 한전에다 전화하는라 고생했는데 ...
진실은 왜곡되어 있었네요
아 그렇군요, 세상은 증말..
너무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올 겨울을 어떻게 견뎌낼지....
아~~ 같은 전기 직종에 일하는 사람으로서..마음이 아프네요..원인 제공자 따로 욕먹는 사람 따로..화이팅 하시길~~~
정말일거라 믿습니다만, 한쪽의 정보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건 생각해 볼 일이네요. 전력거래소에서의 제공정보가 거짓말이었다는 점에대한 보충정보 있으시면 어느분들이건 부탁드립니다. 만일 알려주신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전화로 욕을 먹어야 할곳, 그리고 앞으로 문제점을 파악해 고쳐나가야 할곳은 전력거래소겠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위해서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벌어진 상황과 문제점에 대한 정보가 조금더 필요할것으로 생각합니다.
한전에서는 발전소의 발전량을 볼수가 없습니다. 전력거래소를 발족하면서 한전은 송배전망만 관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발전소에 발전기가 얼만큼 돌고 있는지를 모르니 예비율을 산출할수가 없는겁니다. 그러니 전력거래소에서 발표하는 제공정보가 거짓인지조차 알수가 없는것이지요. 이게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