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내며
김 성 문
2022년 추석 며칠 전에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추석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 김치(백김치류), 과일, 술 등 6가지이다.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사를 보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내이다. 아내가 성균관 표준안을 따르자고 제안했다.
우리 가정은 매년 기제사와 같은 차례상을 차린다. 조금 많이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제물의 양과 가짓수를 줄이라고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아내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라서 그대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성균관에서 제시한 차례상 표준안을 봤다면서 느닷없이 간소화하자고 제안했다.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사 음식 준비로 인한 가족의 피로함을 없애야 하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즉시 받아들였다.
나는 밥과 국도 준비할 필요가 없고, 기름에 튀기고 지진 음식도 올릴 필요가 없다고 미리 말해 주었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야!” 환호성을 지른다. 날이 맑으면 차례도 조상들이 있는 산소에 가서 직접 지내도록 했다.
밀양에 있는 동생에게도 변화된 제물 준비를 알리고 올해 추석 때는 날이 좋으면 가족 산소에서 지낼 터이니 산소로 바로 오도록 했다. 동생네도 대환영이다. 몇 가지 안 되는 차례 음식을 우리는 나물, 김치, 송편을, 동생네는 과일, 적, 술을 준비하도록 했다. 아내는 산소에서 점심도 겸할 수 있도록 간단한 밥과 반찬을 준비했다.
가족 산소에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있다. 산소 중간지점에 차례상을 마련했다. 제물 진설 도중에 조카가 향합에서 향을 꺼내더니 불을 붙인 후 산소 옆에 꽂는다. 차례 장소가 산소이기 때문에 진설을 마친 후 참신을 먼저 하고 강신을 한다고 했다. 가정에서 지낼 때는 먼저 조상신을 모시기 위해 강신 후 참신한다고 일러 주었다. 제사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곁들였다.
제사에는 향(香)과 술이 빠지지 않는다. 향의 원류는 이집트이고 인도로 전해진 다음 동아시아로 전파가 됐다. 향 문화권의 특징은 더운 지방에서 냄새를 중화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리고 유목 문화에서는 향을 태워서 연기를 하늘로 보내면서 신과의 매개체 역할을 하도록 향을 사용했다.
유교에서는 사망자의 유품을 모두 태우면 연기가 망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믿는다. 지금도 유교 문화에서는 유품을 모두 태운다. 어느 망자의 생전 모습을 찾기 위해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두 태우고 없다고 한 관계로 망자의 과거 모습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망자의 유품을 모두 태워 없애는 일은 재고해 봐야 할 일이다.
향 문화와 엎드려서 하는 절(拜) 문화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 왔다. 절은 일반적으로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이는 형식이다. 큰절은 나의 제일 높은 곳인 이마를 땅에 닿을 정도로 한다. 이는 내 몸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존중하는 정신의 표현이다.
불교에서는 향을 피우고 차(茶)를 올리고 절을 한다. 사찰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부처의 세계에 알리는 신호이다. 가정에서는 조상신에게 알리는 신호이다. 일반 제사에는 차 대신에 술을 올린다. 이때 술잔을 올리면서 향불 주위로 돌린 후 올리는 가정이 있다.
술잔을 향불 주위로 돌린다는 문구는 어느 예서에도 없고 불교문화에서도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술잔 돌리는 문제로 말다툼이 있는 경우를 보았다. 오른쪽으로 돌린다. 아니야 왼쪽으로 돌린다고 야단이었다. TV를 보니 술잔을 올리는 사람이 향불 주위로 돌리고 올린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매스컴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잘 생각해서 자료 화면이 방영되어야 하겠다. 사당이나 가묘(家廟)를 가지고 있는 집안에서는 술잔을 돌릴 수 없다는 구조를 잘 알고 있어서 돌리지 않는다. 아예 돌리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딸이 시댁에 도착했다는 전화와 함께 제일 먼저 전하는 소식이 있었다. 시댁에 도착하니 시어른이 신문에 난 성균관 차례상 표준안을 스크랩해 둔 것을 보여 주시면서 올해 추석부터는 전을 안 부쳐도 된다고 했다면서 날 듯이 좋아했다.
우리 가정도 아내와 제수(弟嫂) 세 사람이 제사나 차례 때 전을 부치는데 3시간 이상을 소비했다. 완전 중노동이다. 딸은 연로한 시어른이 전을 부치고 곁에서 거들기만 하는데도 신경이 쓰였는 모양이다. 제사 음식 준비가 현재 젊은이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명절증후군이 급증하고 명절 뒤 이혼하는 가정이 증가한다는 내용이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온다.
시대에 따라 제사 음식 문화가 변하고 있다. 제사 음식도 전통적인 음식보다는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있다. 어떤 가정에서는 전을 부치지 않고 식구들의 건강과 영양을 생각해서 대게, 갈비, 전복, 조기, 왕새우 등을 제사상에 올린다. 제사를 모시고 난 후 식구들은 제사에 사용한 음식인 대게와 준비해 둔 회 등으로 만찬을 한다. 이튿날 아침은 어제 제사에 사용한 전복으로 죽을 끓여 속풀이를 한다. 점심은 갈비찜, 생선구이와 다른 반찬으로 해결하니 제사 음식이 남을 일이 없고 모두가 좋아한다. 이렇게 하니 세대 간 갈등도 없고, 주부가 행복하다. 주부가 행복하면 가정이 밝아진다고 한다. 참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마다 제사나 차례의 예법은 다르다. 현실에 맞게 수정해서 실시하면 될 것 같다. 이번 성균관의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줄이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추석 차례를 산소에서 직접 지내는 방식도 괜찮은 것 같다. 간단한 차례 음식으로 참석하는 가족들만 먹을 만큼 준비하는 것도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산소에 도착했을 때 조상님들도 환한 얼굴로 맞이한 것 같았다. 내년에도 가족과 함께 와서 추석 차례를 지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산소를 뒤로했다.
합설한 기제사 상차림, 촬영: 2021.03.11.
첫댓글 저는 맏며느리이기는 하지만 제사는 아들들이 지내니 관심이 덜한데 이렇게 정리를 잘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저러나 딸만 둘인 저는 제사상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ㅋ
조 선생님! 요즈음은 딸이나 아들 중 한 자녀 가정이 많기 때문에 아들만 제사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딸도 부모 제사를 모시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사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