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조(태조 이 성계의 고조부 전주 이씨)의 대장정(大長程)
"조선은 여진족이 세운 나라다"
줄기차게 이 학설이 주장되고 있다.
이성계가 여진(女眞) 땅 출신이고, 휘하 측근 장수들이 여진족이니 탄탄한 가설이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30년 전 추석날 어머니가 세상 뜨셨다.
장례 지방(紙榜)을 쓰면서 또 울컥했다.
모친 본관도 모르고 살았던 불효가 죄스러웠다.
어머니가 '전주 최 씨'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친정은 첩첩산중에 숨겨진 오지 마을이다.
여남은 채 되는 최씨 마을과 전라도 '전주'와는 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1230년 즈음의 일이다.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가 1,000명 무리를 이끌고 강원도 삼척에 왔다.
정착하게 된 전말은 대략 이렇다.
목조 이안사는 약관의 나이에 이미 전주 토호세력 우두머리였다.
용맹과 지모 덕망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관청 소속인 아름다운 관기를 집에 두고 각별히 사랑했다.
새로 부임한 산성별감이 그 관기의 수청을 요구했으나 이안사는 거부했다.
버티다가 잡혀간 관기도 수청을 완강히 거절하고 자결했다.
조폭 수준, 목조 패거리의 난동은 낭자한 피를 불렀을 것이다.
관리들은 조정에 군사 동원을 요청하였다.
관기를 죽였다고 날조하는 등, 모든 죄를 목조에게 돌렸다.
문전옥답 다 버리고 전주를 탈출한다.
그때 목조 나이 27세였다.
함께 따라간 백성이 170호에 이른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니 1,000명은 족히 되는 것이다.
('전주군지'에는 7,000여 명으로 기록됨)
목조의 엑소더스 대장정(大長程) 과정은 상상불가다.
갓난쟁이, 호호노인, 임산부, 환자 등이 포함된 무리를 이끌고 천 리 행군이라니!
짚신이 해지면 맨발로, 굶으며 걸었겠지.
언제 출발했든 엄동설한은 닥치게 마련이다.
강원도 산간의 폭설은 대단하다.
며칠 쌓이면 키를 넘는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
내가 태어난 곳, 그 척박한 강원도 삼척 미로 땅에 화적떼처럼 나타났을 게다.
목조의 삼척 행적은 뚜렷하다.
몽고군을 막기위해 두타산성을 쌓는다.
왜구를 막으려고 큰 선박 15척을 건조한다.
부모가 연달아 돌아가 미로 땅에 묻었다.
아버지 이양무는 노동산(蘆洞山)에, 어머니 이씨는 동산(東山)에 모셨다 이것이 준경묘와 영경묘이다.
두 무덤은 왕릉 수준으로 잘 보호되고 있다.
조선 사직을 낳은 명당이라고 여겨 왕실의 애착이 컸다.
무덤을 쓰게된 전설은 장황하여 생략한다.
아름드리 금강송이 울창하여 풍광이 좋다.
광화문 숭례문 경복궁 대들보 보수에는 꼭 이곳 소나무를 쓴다.
고사를 지내고 '어명이오' 세 번 외친 뒤 나무를 벤다.
목조의 삼척 생활은 길지는 않았다.
전주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그 관리가 '안렴사'로 영전, 강원도로 오게된 것이다.
안렴사는 도지사 격이다.
이번에는 왜구 퇴치용 배 15척을 타고 북쪽으로 탈출한다.
하지만 부모의 무덤을 보살피고 봉제사(奉祭祀)할 사람은 필히 남겨야 한다.
심지 깊고 의리 있는 최말뚝(가명)이 자청했을 거다.
전주 사람 최말뚝(崔末得)의 후예가 내 어머니인 것이다.
내 외갓집은 영경묘와 붙은 마을이다.
그곳 사람들은 그 동네를 지금도 '사밭'이라 부른다.
나는 '제사 밭(祀田)'으로 해석한다.
풍파를 헤치고 의주(宜州 지금의 덕원)로 이주한다.
거기서 이안사는 의주병마사가 되어 영흥에 있는 원나라 쌍성(雙城)과 대치하는 임무를 받는다.
그러나 세가 불리하자 1254년 원나라에 그만 투항하여 버렸다.
그런 후 두만강 유역 경흥 동쪽 30리 지점에 있는 알동(斡東)이라는 곳에 정착하였다.
거기서 천호(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가 되어 여진(女眞)의 한 지방을 다스렸다.
1274년 세상을 떠나니, 경흥 남쪽 5리에 묘를 만들었다.
태종 10년 함흥으로 이장하여 덕릉(德陵)으로 칭한다.
종묘에 모신 군주 중 최고
항렬이다.
이역사적 인물이 삼척으로 탈출하지 않았더라면 분명조선은 없다 .
조선이 없으면 세종도없고 한글도 없다.
한글이 없으니 이런글을 쓸리도 없겠다.
아 ,나도이땅에 태어나지 않는구나.
뜬금없는 생각에 暗然히
愁愁롭다!
심 봉구 시인.(댓글 참조)
글: 심 봉구시인.
경신고등국어 교사 교장역임.
한국문학회 회원.
시 수필다수.
삼척 고등 나와 동기동창.
이 성계의 조상묘인 준경묘
영경묘는
제고향인 삼척시 미로면에 봉안이 잘되어 있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