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아침, 재정 씨는 얼마 전 돌아가신 친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김포공항에 도착 후 지하철을 타고 친형이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해 재정 씨를 기다리던 직원을 만났다.
“이쪽이 동생이고, 상주예요.”
장례식장에 도착 후 만난 직원에게 재정 씨가 상주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아니라 재정 씨에게 장례 관련된 내용들을 설명해 주길 바라서였다.
장례식장 직원은 상주인 재정 씨에게 사망신고서 발급, 장례 절차, 사망신고, 장례비 신청 등 필요한 사항에 관해 설명했다.
“기다리고 있을테니 천천히 일 처리하고 연락주세요.”
재정 씨는 병원, 주민센터 등 방문해 일을 처리했는데, 3시간 정도 걸려 관련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형님 얼굴 보고 가시겠어요? 내일 발인할 때 보셔도 되고요.”
“........”
“내일 누님하고 함께 보면 어때요?”
재정 씨에게 내일 멀리 전북 정읍에서 누님이 올라오는 누님과 함께 보기를 권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휴, 그래도 오늘 다했네? 주민센터 가서 서류 떼고 계산도 했고.”
“네. 고생하셨어요.”
그날 밤, 재정 씨는 피곤했는지 일찍 곯아떨어졌다.
“형! 서둘러요. 이러다 늦어요.”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장례식장에 늦지 않게 가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재정 씨는 늑장 부렸다.
“안 되겠어요. 지하철로 갑시다. 뛰어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지만 30분 넘도록 잡히질 않아 서둘러 지하철을 탔고, 한참을 걸어 겨우 제시간에 도착했다.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장례식장 직원은 염을 끝냈다며 친형님이 계신 곳으로 재정 씨를 안내했다.
“고인 얼굴 보시고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고요.”
“재정이 형, 한번 불러드리세요.”
“형….”
재정 씨는 별다른 말 없이 친형을 한번 불러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화장장 이동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차’
서둘러 장례식장 앞에서 친누나를 만났고, 서둘러 발인했던 장소로 찾아갔으나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이었다.
“누님, 죄송해요. 제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누님과 함께 발인하는 걸 잊어버렸네요.”
“아니에요.”
무슨 정신이었는지 누님 기다리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후 친형의 관이 밖으로 나와 응급차로 옮겨졌고, 응급차에 가족은 1명만 함께 탈 수 있다기에 누님이 함께했고, 재정 씨는 택시를 타고 뒤따랐다.
화장장에 도착 후 처리할 행정 업무를 처리하며 형님을 모실 유골함도 골랐다.
얼마 후 친형이 화장장으로 들어갔고, 기다리는 동안 누님은 재정 씨 옆에서 동생을 챙겼다.
“그래도 네가 장례도 치르고, 모시겠다고 해서 대견하네. 우리 막내가 이럴 줄 몰랐네.”
“내가 동생이니까.”
사실 친형님을 못 만난 지 수십 년이고,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게 10년 전이다.
그럼에도 이번 장례 과정에서 재정 씨가 동생 노릇 하기를 바랐는데, 선뜻 그러겠노라 했다.
화장하는 동안 부고장 제작을 도왔고, 재정 씨는 둘레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냈는데 놀란 둘레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에 자세한 설명은 내가 대신 했다.
그사이 화장이 끝났고, 수골하고 나서 마지막 행정 처리를 위해 친형이 살던 주민센터에 들렀다. 그곳에서도 누나는 재정 씨가 마지막 일 처리를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살뜰히 도왔다.
“재정아, 고생했어. 이거는 경비에 보태고 내려가서 동생(전담 직원) 맛있는 거 사줘.”
그렇게 누나와 헤어진 후 재정 씨는 친형을 유골함을 모시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누나, 잘 도착했어요.”
“벌써갔어? 빨리 갔네. 누나는 아직 가는 중이야.”
“다음에 봐요. 오늘 고생했어요.”
“고생은 네가 했지. 푹 쉬고 다음에 보자.”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늦었기에 추모 공원에 바로 모실 수 없어 하룻밤 재정 씨 자취방에 모셨다.
‘잘 도착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감사해요~’(누님 문자)
‘누님이 옆에서 살피고 챙겨주신 덕분에 무사히 잘 치렀네요. 무슨 정신이었는지…. 마지막 가시는 길 저 때문에 형님 얼굴을 누님이 보지 못하셔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전담 직원 문자)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렇게 장례 절차 밟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누님 문자)
내가 큰 실수를 했음에도 오히려 날 위로해 주시니 더 죄송했다.
다음 날, 친형을 서귀포 추모 공원에 모셨다.
내가 부득이하게 집안일로 인해 함께 할 수 없어 원장님이 재정 씨가 친형을 추모 공원에 안치하는 일을 거들어주셨다.
감사하게도 안치하는 시간에 맞춰 둘레 사람들이 추모 공원에 찾아주었다. 재정 씨 친형이 동생의 둘레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해 주니 뿌듯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공원에 안치 잘했어요.”
“애쓰셨어요. 누나에게 형님 안치한 사진 보내드리면 어때요?”
“네.”
재정 씨는 형님을 안치하고 사진을 찍어 누님에게 직접 보냈다.
이번 친형의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상주인 재정 씨와 누나가 제 노릇 하기를 바랐다.
행정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내가 처리하는 게 아니라 재정 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을 직접하고, 어려운 부분은 동의하에 거드는 모양새이게 하려고 애썼다.
재정 씨가‘내가 상주니까, 내가 형의 장례를 치렀다.’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2026. 04. 08일. 수요일. 김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