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579
■ 2부 장강의 영웅들 (235)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31장 오자서(伍子胥)의 비밀 계책 (1)
공자 광(光)이 궁으로 들어온 것은 오자서가 오왕 요(僚)를 알현하고 나간 바로 직후였다.
그는 피이(被離)에게서 오자서(伍子胥)가 천하 영걸의 상(相)임을 듣고 반드시 자기 사람으로 만들리라 결심했다. 서둘러 입궁하기는 했으나 이미 오왕 요는 오자서와 면담을 마친 뒤였다. 표정으로 보아 서로 얘기가 잘된 것 같았다. 공자 광(光)은 오자서가 오왕 요(僚)의 심복이 될까 두려웠다.
그는 슬그머니 오왕 요(僚)에게 말을 걸었다.
"듣자하니 초나라 오자서(伍子胥)가 우리 나라로 망명해왔다는데, 왕께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왕 요(僚)는 느낀 대로 대답했다.
"소문대로 영걸(英傑)이었소. 기골이 장대하여 사람을 압도할 뿐 아니라 현명하고 효성이 극진했소."
"왕께서는 오자서의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것입니까?"
"나는 그와 더불어 천하대사를 논했는데, 그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적중하였소. 그래서 그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 또 그는 잠시도 부형(不兄)의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소. 그래서 그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
"앞으로 왕께서는 오자서(伍子胥)를 어찌 대접하시렵니까?"
"나는 그와 더불어 천하를 도모할 생각이오. 또 그를 도와 초(楚)나라를 쳐서 그의 원수를 갚아줄 작정이오. 우선은 그에게 대부 벼슬을 내릴까 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공자 광(光)이 눈꼬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한마디 간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해보시오."
"왕께서는 만승(萬乘)의 왕입니다. 오자서(伍子胥)는 한갓 도망자에 불과합니다. 만승의 왕으로서 필부의 원수를 갚아주려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오나라는 초나라와 수없이 싸움을 벌여왔으나, 한 번도 크게 이겨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자서(伍子胥)를 위해 또 군사를 일으키시렵니까? 결국 필부의 원한이 나라의 수치보다 더 중하다는 말씀입니까? 싸워서 이기면 오자서의 분을 설치(雪恥)해준 데 불과하고, 진다면 우리 오(吳)나라 전체의 치욕이 되고 맙니다."
".....................?"
"오자서(伍子胥)가 다른 많은 중원의 나라들을 제쳐두고 하필 우리 나라로 도망온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 우리 오(吳)나라를 이용하려는 수작에 다름 아닙니다. 송나라도, 정나라도, 진(晉)나라도 오자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왕께서만은 한 개인의 원한에 얽매어 쓸데없는 군사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오자서는 결코 우리 오(吳)나라를 위해 이 곳으로 망명해온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오왕 요(僚)는 공자 광(光)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어차피 오자서가 아니더라도 오(吳)나라는 초나라와 적대 관계에 있다. 그런데 오자서(伍子胥)를 받아들여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졸지에 오나라는 오자서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싸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중원 제후들의 손가락질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내가 경솔했구나.'
오왕 요(僚)는 후회했다.
다음날, 오자서(伍子胥)는 큰 기대를 품고 궁으로 들었다.
그런데 오왕 요(僚)의 태도가 어쩐지 전날과 달랐다. 말을 이리저리 돌리며 마음속에 담긴 얘기를 피했다. 벼슬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오자서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뭔가 이상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왕 요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오자서에게 벼슬을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만나는 것 조차 피했다.
오자서(伍子胥)는 실망했다. 아니 절망했다.
오나라 군대를 앞세워 초나라로 쳐들어가리라던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있던 오자서는 삽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자서는 착잡한 심정으로 피이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피이의 집에 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피이(被離)는 그 방문객을 오자서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공자 광(光)이라고 했다. 오왕 요(僚)의 사촌형이자 전왕인 제번의 장자(長子).
오자서(伍子胥)는 퍼뜩 당읍 땅에서 사귄 전제(專諸)의 말을 떠올렸다.
- 도성으로 들어가면 공자 광(光)과 사귀십시오. 장차 큰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공자 광(光)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인물이라니. 오왕 요(僚)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냉대에 낙심해 있던 오자서는 새 희망을 발견한 듯했다. 그는 극진히 예(禮)를 올렸다.
공자 광(光)과 오자서(伍子胥)는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공자 광(光)은 오왕 요(僚)와 달랐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투에서도, 표정에서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오자서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때 문득 공자 광(光)이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그대는 왕이 어째서 별안간 그대를 멀리 대하는지 아시오?"
오자서(伍子胥)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유를 몰라 내심 궁금해하던 참입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저에 대해 참소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만....."
"정확히 보았소. 왕에게 그대를 쓰지 말라고 참소(讒訴)한 사람이 바로 나요."
"옛?"
"이유가 궁금하오?"
"그렇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오. 왕이 그대를 신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소."
"...................?"
"지금 왕은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 만한 그릇이 못 되오. 탐욕스럽고 참소(讒訴)에 넘어가기 쉽소. 나의 한마디 말에 그대를 멀리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오. 이런 왕이 그대를 끝까지 도와주리라 생각하오? 그래서 나는 그대를 왕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던 것이오,"
오자서(伍子胥)는 공자 광(光)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그는 얼굴빛을 바꾸고 물었다.
"저도 공자에게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공자 광은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해보시오."
"저를 왕에게 멀리 떼어놓는다 하여 공자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저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하하하,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글쎄......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차차 알게 되지 않겠소?"
공자 광(光)은 이 반문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날부터 오자서(伍子胥)는 의문에 싸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