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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한 최고의 차는 어떤 차일까? 네 명의 자동차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만족시킬 '최고의' 차를 골라봤다. 모두 여러분이 다음 가족차로 고려해볼 만한 차들이다
PEUGEOT 5008
이제 나이 들어 자식들은 모두 집을 떠나고 가족은 아내와 나 둘뿐이다. 커다란 차는 필요 없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딸이 1년에 한두 번 손주 둘을 데리고 나온다. 그때 공항에 마중 나가 아이들과 짐을 싣고 올 차가 필요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는 여행은 짐이 상상을 초월한다. 유모차 두 개와 큼직한 여행가방 너덧 개는 보통이다.
5008은 생각보다 차체가 아담한데 실내가 넉넉해 상당한 양의 짐을 실어 나를 것 같다. 7인승이라 2열엔 아이들 둘의 베이비 시트를 달고, 3열엔 어른 둘을 태울 수 있다. 1년에 한두 달을 위해 커다란 SUV를 살 필요가 있느냐고? 과거에도 여름 한철 가족과 놀러 가는 꿈을 꾸면서 1년 내내 봉고 밴을 몰고 다닌 적이 있다.
딸과 손주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나 혼자 즐기는 차가 되는데, 회사가 있는 경북 김천에서 서울까지 오가느라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고속도로를 500킬로미터 정도 달린다. 고속도로를 달리기에 편한 차가 필요하다. 요즘 고속도로는 요일과 시간에 관계없이 정체가 오락가락해 빨리 달리는 건 진즉에 포기해야 한다. 오히려 정체 속에서 나를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시보드가 멋진 차에 점수를 주는 까닭이다. 5008은 콘셉트카를 생각나게 하는 운전석이 멋지다.
5008보다 휠베이스가 짧은 3008은 2017년에 ‘유럽 올해의 차’ 상을 받았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올해의 차’를 많이 뽑지만 내가 신뢰하는 건 <모터 트렌드>의 ‘올해의 차’와 유럽 저널리스트 60명이 뽑는 ‘유럽 올해의 차’뿐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올해의 차’로 뽑힌 차는 인정해줄 만하다. 3008과 5008은 너비와 높이가 같고, 길이만 5008이 조금 길다. 휠베이스가 165밀리미터, 전체 길이가 190밀리미터 늘었다. 손주들 짐을 싣는 데 필요한 공간이다. 3008보다 50킬로그램 남짓 무거운 5008은 그렇게 크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주차에 대한 압박이 덜하다.
난 프랑스 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언젠가 프랑스 차를 내 차로 가져보고 싶었다. 시트로엥 DS나 2CV, 르노4 등 여러 프랑스 차가 나의 드림카였다. 검소하고 독창적인 기술에, 예술혼이 흐르는 프랑스 차가 좋았다. 5008은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휠을 부여잡고 그 위로 넘보는 계기반이 독특하다. 세상에 프랑스 차만 이런 운전석을 제공한다. 그런 프랑스 차를 사랑한다. 젊은 날 타던 현대 엑셀의 스티어링휠을 작은 것으로 튜닝한 적이 있다. 작은 휠에 계기반이 가려지자 거울을 붙여 해결했다. 유쾌한 추억이다. 5008은 작은 스티어링휠을 한껏 아래로 내리면 편한자세가 만들어진다.
2열에 달린 세 개의 시트는 각각 앞뒤로 밀 수 있어 성인 남자 셋이 어깨 부딪히지 않고 탈 수 있다. 딸과 아이들이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엔 회사 직원들을 태울 수 있겠다. 게다가 레그룸도 넉넉하다. 3열은 떼어낼 수도 있는데 등받이를 접은 상태에서 오른쪽에 있는 노란색 레버를 당기면 쉽게 떨어진다. 자동차 의자를 풀밭에 놓고 즐기는 피크닉을 상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과거 2CV가 그랬다. 2CV를 타본 적은 없지만 시트로엥 광고 속의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 역사가 오랜 푸조의 디젤 엔진은 성능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08을 타면서 폭발적인 성능은 필요 없지만 1.6보다 2.0리터 엔진을 사고 싶다. 120마력의 1.6리터 디젤 엔진은 중저속에서 만족할 성능을 보이지만 고속에서는 아무래도 힘이 부족한 듯하다. 내 차로 한다면 180마력의 2.0 GT가 바람직하다. 저속에서 불끈 솟는 토크가 나를 유혹한다.
땅바닥에 들러붙어 코너를 매끄럽게 돌아가는 프랑스 차의 주행감각은 SUV라고 예외가 아니다. ‘어드밴스드 그립 컨트롤’은 나도 모를 트릭으로 험한 길을 헤쳐 나간다. 사소한 문제는 빨리 달릴 때 노면을 많이 타 스티어링휠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는 거다. 아내가 운전하기에 조금 힘들지 않을까? 음, 이건 아내에게 비밀로 해야겠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이 차는 어떨까? 기아 카니발
나에게 푸조 5008의 경쟁 상대는 다른 SUV가 아니라 미니밴인 카니발과 스타렉스다. 1년에 한두 번 짐을 많이 싣고, 평소에 고속도로를 편하게 달리는 차를 원한다. 카니발은 미니밴으로 완벽하지만 차가 너무 커 주차 스트레스가 걱정이다. 또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버스전용도로를 달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할까 두렵다. 내 차에 여섯 명을 태울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다. 스타렉스는 의자 몇 개 떼어내면 모터사이클을 실을 수 있을까?
VOLVO XC60
몇 년 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가족을 위해 고른 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다. 남편과 나 둘뿐인 우리 가족에 커다란 세단은 필요 없다는 나의 판단과 SUV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 C 클래스를 골랐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고 가족이 늘었다. 아, 사람은 아니다. 동생에게 사정이 생겨 키우던 고양이를 우리에게 보냈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2년이 조금 안 된다. 그사이 우리 가족의 생활 모습도 이전과는 꽤 달라졌다. 나도 고양이가 가족을 위한 차를 고르는 데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고양이와 외출할 일은 많지 않다. 1년에 한두 번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갈 때와 서너 번 고양이 호텔에 갈 때가 전부다. 그때마다 케이지에 실어 뒷자리에 태우는데 지금 타는 중형 세단 뒷자리를 싫어하는 눈치다. 탈 때마다 엄청난 소리로 울어댄다. 밖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무서운 걸까? 그래서 밖이 보이도록 가운데 자리에 케이지를 놓는데도 불안해하는 기색은 여전하다. 케이지 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정수리를 긁어주면 그제야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SUV는 세단보다 차고가 높다. 당연히 시트포지션도 높다. 높이 앉으면 시야가 좀 더 넓어진다. 그렇다면 우리 고양이도 SUV 뒷자리에 앉으면 밖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SUV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남편에게 이 말을 했더니 “정말 그럴까?”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래, SUV도 좋은 것 같아.” 하지만 커다란 SUV는 부담스럽다. 여전히 주차에 서툰 남편도 불안하다. 그렇다고 코나처럼 작은 SUV는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을 태울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 망설여진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내가 고른 모델은 볼보 XC60다.
일단 뒷자리가 넉넉하고 안락하다. 암레스트도 큼직해 케이지를 올려놓기에도 좋다. 뒷자리까지 시원하게 하늘을 보여주는 글라스 루프를 열고 암레스트 위에 케이지를 올려놓으면 우리 고양이도 덜 불안해할 것 같다. 네바퀴굴림 모델은 폭설이 몰아쳐도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다(무척 건강한데도 문득문득 ‘고양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참, 뒷자리에 열선 시트도 있다. “이 차에는 뒷자리가 뜨끈해지는 게 없니?”라는 엄마의 질문에 어깨를 움츠리지 않아도 된다. 디젤 엔진을 좋아하지 않지만 볼보의 4기통 디젤 엔진은 소음과 진동을 잘 다스렸다.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배를 긁어줄 때 우리 고양이가 내는 소리와도 비슷하니 친근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요즘 많은 자동차가 긴급 제동 시스템을 품고 있지만 그래도 원조는 볼보다. 그만큼 더 안전하고 확실히 멈출 거란 믿음이 간다. XC60는 이 밖에도 안전장비를 듬뿍 챙겼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으면 스스로 스티어링휠을 움직여 차선을 지키도록 하는 파일럿 어시스트는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때때로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간격을 벌리기도 하면서) 달린다. 도로 이탈 방지 시스템은 뜻하지 않게 도로를 벗어났을 때 스티어링휠을 움직이거나 브레이크를 밟아 사고에 대비한다. 큼직한 센터페시아 모니터에 뜬 다양한 안전 기술을 보면 그냥 마음이 든든하다.
주차에 서툰 남편이 두 팔 벌려 환영할 기능도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차의 모습을 보여주는 360° 서라운드 카메라다. 지금 이 차가 어떻게 주차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줘 화면을 보면서 주차하기가 수월하다. 앞뒤나 양옆에 차가 있을 땐 간격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주차하는 게 자신 없을 땐 파크어시스트 파일럿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직각주차는 물론 평행주차도 완벽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하나 맘에 드는 기능은 실내 공기 청정 시스템이다. 센서가 지속적으로 실내 공기질을 감시하는데 탄화수소나 질소산화물 같은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감지하면 바깥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자동으로 외기유입을 차단한다. 0.4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먼지를 70퍼센트 이상 걸러낼 수 있는 멀티 필터도 달았단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연 날에도 걱정 없겠다. 조목조목 따져가며 적고나니 점점 ‘이 차다!’ 싶은 마음이 커진다. 여보, 우리 차 바꿀까? 글_서인수
이 차는 어떨까? 렉서스 NX 300h
마지막까지 XC60와 고민했던 차가 바로 NX 300h다. 둘이 주로 타면서 한 달에 한두 번 뒷자리에 부모님을 태우기에 적당한(물론 뒷자리에 열선 시트도 있는) SUV인 데다, 디젤 엔진과 비슷한 연비를 누릴 수 있는(그러면서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은 겪지 않아도 되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뒷자리 무릎공간이 XC60보다 조금 좁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XC60만큼 다양한 안전장비를 품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종 선택에서 탈락했다. 해외 판매 모델에는 종합 안전장비인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가 있던데….
LAND ROVER DISCOVERY
아내와 나의 자동차 취향은 무척 다르지만 교집합이 없는 건 아니다. ‘큰 차는 큰 차답고 작은 차는 작은 차다워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같다. 달리 말하면 큰 차는 클수록 좋고, 작은 차는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 선호하는 특성은 정반대다. 아내는 큰 차를, 나는 작은 차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된 아들, 이제 돌을 앞둔 딸이 점점 커나갈 일을 생각하면, 거의 혼자 타고 다니는 내 차는 그대로 두더라도 가족용으로 쓰는 아내의 차는 좀 더 크면 좋겠다는 게 지금 우리 가족의 솔직한 현실이고 바람이다. 게다가 차에 대한 취향은 엄마를 닮은 아들 녀석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우리 부부의 취향대로 가족용 차는 클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45인승 버스를 덜컥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적당한 크기에 다루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온 가족이 함께 타고도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미니밴은 왠지 답답한 이미지여서 싫고, 모는 사람보다 차에 타는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분이어서 영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만큼 자연에 푹 파묻혀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 만큼, 아내와 나 모두 험로 주행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네바퀴굴림 SUV에 마음이 더 동한다. 이 정도 조건만 놓고 생각해봐도 우리 가족이 꿈꾸는 차는 실용성 높은 대형 SUV로 간단히 정리가 된다.
잠깐의 고민 끝에 정한 유력 후보(라고 쓰고 희망 사항이라고 읽는다)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지난해 새 모델로 완전히 탈바꿈한 이 차라면 네 명으로 이뤄진 우리 가족에게 차고 넘치는 차가 될 것이다. 사실 아내는 구형 디스커버리의 투박하고 각진 모습을 더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다만 아내가 인상이 날렵해진 새 디스커버리에 손사래를 치는 반면, 난 못마땅하긴 해도 봐줄 만은 하다는 의견이다. 생김새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내 차가 되고 난 다음에 더 중요한 건 외모보다는 내면이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의 실내는 첨단과 전통이 공존한다. 여러 기능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쉽게 찾아 조작할 수 있으면서도, 보고 쓰기에 신선한 느낌을 줄 만한 요소들이 많다. 간결하고 단정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내장재는 아이들의 손때를 묻히기에는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새 디스커버리는 이전 세대 차들과 비교하면 운전하기가 편해졌고 승차감도 꽤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겨도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실내 공간이 넉넉하다는 선대 모델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점이다.
주로 아이들이 타게 될 2열 좌석은 크기도 적당하고 아이들을 챙기기에도 공간이 충분하다. 크게 열리는 도어 덕분에 둘째를 어린이용 카시트에 앉히기도 편할 테고, 답답하다는 첫째의 투정도 이전보다는 훨씬 덜할 것이다. 한창 모바일 게임과 인터넷 동영상에 빠져 있는 녀석에게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USB 포트가 아빠 엄마의 잔소리를 잊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다. 3열 좌석은 정말로 사람을 태우기보다는 짐을 싣는 용도로 주로 쓰게 될 것이다. 이전보다 접고 펴기 편리한 것은 물론 바닥 높이도 그리높지 않아 유모차나 장바구니, 캠핑 장비 같은 것을 싣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3열 시트 자체도 간이형이라기에는 제법 제대로 된 형태여서 아이들끼리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써먹기에도 좋다.
아내가 주로 몰 차로 디스커버리를 먼저 떠올린 큰 이유 중 하나는 지형반응 장비인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이다. 아내는 운전을 좋아하기는 해도 오프로드를 달려본 경험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여행이든 캠핑이든 가족이 함께 먼 길을 떠날 일이 있다면 좀 더 안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능이 많기를 바란다.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 정도면 길 위에서 마주치는 웬만한 문제들은 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겨도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고르기는 망설여진다. 그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몰아본 다양한 랜드로버 차들이 대부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모델이 바뀌면서 나아지는 점들도 있기는 하지만 전자장비와 관련된 고장은 거의 모든 시승차에서 겪었던 기억이다. 사막 한가운데 갖다 놔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브랜드가 랜드로버인데, 과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우리 가족을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로 디스커버리를 사게 된다면 뽑기 운이 좋기를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글_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이 차는 어떨까?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아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크고 각지고 우람하게 생긴 차 ‘끝판왕’이다. 좌우가 분리된 독립식 2열 시트에 두 아이를 앉히면 나머지 공간에는 오지에서 며칠은 캠핑할 수 있을 정도의 짐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하지만 고급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내장재와 조립 마무리, 노면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승차감 같은 것들이 선택을 꺼리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차 덩치가 이쯤 되면 어디 세워두기가 곤란하고 민망하다. 난 반댈세.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
이쪽은 내 취향을 좀 더 반영한 선택이다. SUV는 아니어도 웬만한 정통 SUV 못지않은 짐 공간과 수납공간,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SUV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안정감과 민첩함도 지니고 있어 잘 포장된 길에서는 모는 맛도 쏠쏠하다. 특히 튼튼한 설계와 첨단 ADAS 기능이 뒷받침하는 안전성은 가족용 차로서 가장 마음을 끄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한 차로 쉽게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로 몰겠다고 아내와 나 사이에 싸움이 날까봐. 다른 하나는 제대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페라리 GTC4루쏘
네 명이 탈 수 있고, 어린이용 카시트도 달 수 있고, 그러면서 트렁크에 짐도 실을 수 있고, 네바퀴굴림이어서 사계절 쓸 수 있고, 성능은 끝내주고, 실내는 화려하고, 승차감은 페라리치고 편안하고, 내키면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 쏠 수도 있고. 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이건 좀 심했어….
BMW 5 SERIES
결혼 5개월 차 우리 부부의 패밀리카는 미니 쿠퍼 D다. 아직은 신혼이라 그런지(그런 거겠지?) 한 달에 서너 번은 장모님 댁에 간다. 몸 만든다고 유난 떠는 사위와 미식가인 딸을 위해 온갖 반찬과 식재료(심지어 도구까지)를 챙겨주시기 때문이다. 손이 크신 장모님의 사랑을 미니로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가끔 있다. 나와 아내는 동네 마트보다 창고형 대형마트를 애용한다. 저렴한 값에 필요한 것들을 대량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쇼핑 카트를 채우다 보면 아내는 꼭 이 말을 한다. “미니에 다 실을 수 있을까?” 얼마 전 차에 전혀 관심 없던 아내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아이가 생기면 미니를 패밀리카로 쓰기에 힘들지 않겠냐는 말을 꺼낸 뒤 미니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앞으로 돈이 더 들어갈까 걱정하는 눈치다. 이미 팔아버릴 결심을 한 것 같다. 내 생에 첫 차가 어디론가 팔려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문짝 두 개 달린 미니를 패밀리카로 주장하는 건 누가 봐도 억지다. 이왕 바꿔야 하는 거라면 가장이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차를 선택하고 싶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타려면 무리해서라도 좋은 차를 사는 게 좋겠지. 어떤 차를 들이밀어야 내 즐거움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일단 아내와 예산을 먼저 정해봤다.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는 전제하에 2년 뒤에는1억원까지 차에 투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런저런 카드를 내밀기도 전에 아내가 “친구가 얼마 전 BMW를 샀대”라는 말을 꺼냈다. 벤츠는 왠지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이라 아내도 BMW에 마음이 간단다. 순간 ‘강남 쏘나타’라 불리는 5시리즈 중 540i가 떠올랐다. 얼마 전 메일로 날아온 보도자료를 읽고 보관함에 저장까지 해둔 모델이다(디젤 모델보단 경쾌한 휘발유 모델이, 530i보단 화끈한 가속 성능을 뽐내는 540i가 더 끌린다). ‘신형’과 ‘고급스러움’을 앞세워 은근슬쩍 아내에게 “이 차는 어떠냐?”고 물었다.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마침 시승할 일이 생겨 퇴근길에 아내를 데리러 갔다. 그녀는 조수석에 타자마자 “미니 쿠퍼보다 덩치가 큰데 문이 가볍네”라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예감이 좋다. 난 미소를 지으며 “비싼 차는 다르지?”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제 터치도 되는 디스플레이 앞에 검지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원을 그렸다. 제스처컨트롤이 작동하며 블루투스로 연결해둔 음악이 B&W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노를 저을 타이밍이다. 어차피 아내는 주행 성능에 큰 관심이 없다. 미니로 경험해 보지 못한 스마트한 기능들을 어필해야 한다. “여기 이 버튼 보이지? 이걸 누르면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차선을 따라 주행해. 차선을 이탈하면 경고나 진동으로 알려주거나 스티어링휠을 틀어 차선 안으로 넣어주기도 해. 게다가 스마트키로 무인 원격주차도 할 수 있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아내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로 시트다. 누워보고 눌러보더니 한숨 자기 딱 좋겠다고 한다. 거의 넘어왔다. 기분 좋게 차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차로에서 초록불이 들어오자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출력이 향상된 6기통 휘발유 엔진이 힘을 뿜어내는 순간 몸이 시트에 파묻혔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두 배는 커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뿔싸. 스포츠 모드로 설정해둔 걸 깜빡했다. 이런 살벌한(?) 차에 아이를 태울 순 없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외다. “놀이기구 같은 게 재미는 있네.” 긍정적이다. 이때다 싶어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덩치는 이래도 최고출력이 340마력, 최대토크가 45.9kg·m야.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4.8초면 충분해. 쉽게 말해 여자 운전자라고 무시하고 위험하게 추월하려는 남자들을 대부분 여보 뒤에서 달리게 할 수 있다는 말이지.” 위험한 걸 시킨다며 한소리 듣긴 했지만 마음에 든 눈치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뒷좌석과 트렁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트렁크도 충분하겠다는 말에 나는 직접 몸을 구겨 넣는 시범도 보였다.
사실 1억원 넘는 세단이 가격 대비 성능에서 ‘끝판왕’이라 불리는 다양한 SUV와 패밀리카 자리를 놓고 겨루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 있다. 누군가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밀리카는 가족만을 위한 차가 아니다. 나를 위한 차이기도 하다. 다행히 540i는 재미와 실용성을 모두 안겨줄 괜찮은 카드다. 우린 아이를 위해 희생만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는 약간은 이기적인 부모가 되기로 했다. 글_구본진
이 차는 어떨까? 현대 코나
소형 SUV 광풍을 벗어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코나와 스포츠 세단 두 대를 거느리고 싶다. 만약 지금 내가 패밀리카로 한 대만 구입해야 한다면 코나가 가장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3000만원이면 고급 옵션(전방 충돌 방지 보조, 차선 이탈 방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후측방 충돌 경보, 하이빔 어시스트 등은 기본 사양이다)을 가득 넣을 수 있다. 1.6리터 디젤 모델과 1.6리터 휘발유 터보 모델 중 어떤 엔진을 선택하든 주행 실력은 수준급이다. 싸고 넓고 잘 달리고 안전한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가족을 위한 차로는 조금 작지 않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