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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절 불암사 원문보기 글쓴이: 선재행
590. 도화 (桃花) - (2)
원오근(圓悟勤)이 송했다.
언덕 위에서 봄바람을 반기고
가지 끝에서 천기를 누설한다.
분홍빛이 온 누리를 밝히니,
어찌 봄 날씨의 힘을 빌리랴.
또 송했다.
검술을 배운 종사, 의심이 없다거늘
현사(玄沙)가 완전하지 못하단 말, 가장 신기(新奇) 하도다.
배운 지식 다 버리고 살과 뼈도 깎아 내니
격식 밖의 근기는 번개같이 빠르다.
불안원(佛眼遠)이 송했다.
봄이 오면 으레 낱낱 가지에
같은 하늘, 같은 땅의 도를 의심 않노라.
완벽하지 못하단 말, 묻지를 말라.
나를 몹시도 웃게 하리라.
운문고(雲門杲)가 송했다.
복사꽃 보고 깨쳤다고 모두들 말하나
그 말이 옳은지 알 수 없도다.
끝없는 우주에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어느 남아가 대장부던가.
또 송했다.
귀신의 관문을 쳐부수니
해가 한나절이나 되었네.
한 화살로 붉은 꽃심〔紅心〕을 맞히니
온 누리엔 한 치의 땅도 없다.〔현사(玄沙)가 "철저하지 못하다"
한 말을 송한 것이다.〕
죽암규(竹庵珪)가 송했다.
복사꽃에서 검을 찾은 손이
말없이 봄바람에 웃고 있네.
흰머리가 되도록 돌아가지 못하니
집이 해문(海門)의 동쪽에 있다.
또 송했다.
노형은 완전치 못한 줄을 장담한다니
현사의 말씀이 왜 그리 절박한가!
그대들, 언덕 위의 붉은 복사꽃을 보라.
모두가 집 떠난 사람들의 피눈물이니라.
목암충(牧庵忠)이 송했다.
불붙는 복사꽃이 웃는 뺨에 비치니
영운이 한 번 보자 참 소식을 깨쳤네.
현사가 점검하고는 군소리가 많았으니
흙 위에다 진흙 얹어 또 한 겹이 되었네.
백운병(白雲昺)이 송했다.
2월달 복사꽃이 난만할 적에
영운이 한 번 보자 의심이 없었네.
현사의 깨치지 못했단 말 누가 알리요.
콧구멍은 원래가 아래에 뚫렸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했다.
현사의 손가락으로 타는 솜씨를 알고 난 뒤엔
한 조각도 바람 따라 나는 것 없다.
산 남쪽, 북쪽에 비단같이 붉으니
서글픈 유랑(劉郞)은 돌아가지 못하네.
무용전(無用全)이 송했다.
영운이 한 번 볼 때 양 눈썹 비꼈으니
어부는 묘한 꾀가 우러났도다.
흰 파도 솟구칠 때 낚시를 던져
고기와 자라 멋대로 다투게 하리라.
묘지곽(妙智廓)이 송했다.
사자가 다닐 땐 동무가 필요 없고
코끼리 가는 곳엔 여우 자취 없도다.
양춘(陽春) 8) 이 피리〔胡笳〕에 섞여 드니
바람결에 딴 곡조로 변한 것 아닐런가.
개암붕(介庵朋)이 송했다.
영운은 확실하고 분명했거늘
까닭 없는 현사는 도깨비 눈동자였네.
들 주막에서 돈피〔貂〕옷 주고 술을 사는데
발 넘어서는 꽃 파는 소리 들리네.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30년을 허망하게 설쳤는데
잎 지고 싹 돋기가 몇 번이던가.
영원히 잃지 말고 잘 보호해 지켜라.
복사꽃 한 번 보곤 다시 의심 않네.
무위자(無爲子)가 송했다.
영운은 우연히 복사꽃을 보고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네.
어째서 현사는 보장하지 않았는가.
말라빠진 뿌리에서 새싹이 돋는다.
열재(悅齋) 거사가 송했다.
영운은 분명하게 복사꽃을 보았는데
또다시 노련한 작가 현사를 만났네.
은근히 걱정하던 창자를 움켜쥐고
청하여 와서 조주의 차를 마신다.
설두현(雪竇顯)이 "30년 동안 검을 찾은 나그네야"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있는가, 있는가?"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납자의 눈 광채를 잃었도다."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구덩이를 메우고 골짜기를 막는다."
"오늘까지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전쟁에 진 장수로다."
주장자로 땅을 한 번 구르고 말하였다.
"보라."
법화거(法華擧)가 대우지(大愚芝)에게 갔더니, 대우가 물었다.
"옛사람이 복사꽃을 본 뜻이 무엇인가?"
선사가 대답하였다.
"굽은 것은 곧은 것을 감추지 못합니다."
대우가 다시 물었다.
"그것은 그렇다 하겠지만 이것은 어떤가?"
선사가 말하였다.
"큰 거리에서 금(金)을 주우니, 이웃 사람 누가 알리요."
대우가 다시 물었다.
"그대〔上座〕는 알고 있는가?"
선사가 말하였다.
"길에서 검객(劍客)을 만나거든 검을 뽑고, 시인(詩人)이 아니거든 시를
바치지 말아야 합니다.
대우가 말하였다.
"작가인 시객(詩客)이로다."
선사가 말하였다.
"한 가닥의 분홍실을 두 사람이 끕니다."
대우가 물었다.
"현사가 말한 '지당하기는 매우 지당하나……' 라는 것은 또 어찌하겠는가?"
선사가 대답하였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밑이 보이나 사람은 죽어도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대우가 말하였다.
"옳은 말이로다."
선사가 말하였다.
"누각은 구름을 능가할 기세요, 산봉우리는 푸른빛을 겹쳤습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바쳤다.
봉황은 스스로 은하수로 날아올랐고
영운의 복사나무엔 늙은 까치가 앉았다.
고금 사람들 복사꽃의 뜻을 읊지 말라.
하늘이나 인간이 보탤 바 없도다.
장로색(長蘆賾)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장하도다. 도를 배우는 이는 영운이라야 된다. 30년의 세월을 보내지 않
고도 한 번 깨닫자 마음 밖의 법이 없다 했으나 복사꽃은 눈앞에 분분히 낙화
한다. 그러나 공연히 사람의 눈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꺼내기 몹시도 어렵게
하는구나."
보녕용(保寧勇)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말해 보라, 영운이 끝내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만 가지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공적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겠
는가? 만일 그렇다면 일찍이 무엇을 깨달았단 말인가.
그리고 현사의 그런 말은 그를 긍정한 말인가, 긍정하지 않은 말인가? 만일
긍정했다면 현사의 안목이 어디에 있으며, 만일 긍정하지 않았다면 영운의 허
물이 어디에 있는가? 대중들에게 따져 이해하려는 이가 매우 많으니, 그 까닭
에 '천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했노라' 고 하였다.
나 역시 여러분이 완전히 깨치지 못했다고 보증하노니, 나의 한 게송을 들어
라."
다음과 같이 송했다.
영운이 갑자기 복사꽃을 보았지만
작가인 현사를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이 이야기는 고금에 끊이지 않겠거늘
납자들 제멋대로 하늘가를 달리게 두라.
천동각(天童覺)이 소참(小參) 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영운이 복사꽃을 보고 깨친 뜻이 어떤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시력(視力)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영운이 부합했었느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그러면 맑은 하늘에 밝은 해이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
"영운이 본 곳이 어떻다고 여기는가?"
"복사꽃을 한 번 보니, 눈에 티가 들었습니다."
선사가 물었다.
"그대의 눈에도 힘줄이 있는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북 치는 이와 피리 부는 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눈먼 나귀가 제 무리를 뒤쫓는구나."
스님이 다시 물었다.
"현사는 어째서 '지당하기는 매우 지당하나 노형이 아직 완전히 마쳤다고
보증할 수 없다' 고 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이는 납자가 엇바꾸는 시절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마치 섣달의 부채와도 같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영운이 복사꽃을 보고 도를 깨달은 것을 두고 모두가 '사물에 즉(卽)하여
정신을 드러내고, 현실에 의탁하여 물건을 드러낸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
무슨 이야기인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일체 눈을 들어 올리고 일체 몸을 던
져 버리어 온몸으로 이렇게 오고 바닥까지 이렇게 보아야 비로소 자기의 마
음과 통하고, 만상(萬像)의 본체와 부합하리라."
설봉료(雪峰了)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복사꽃 화사하게 피니, 영운의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봄바람에 향기가 길
에 가득한데 꽃은 아직 가지에 달려 있다. 이럴 때에 지당하기는 매우 지당하
거늘, 현사는 어찌하여 '노형은 감히 깨치지 못했다고 장담하노라' 라고 하였
을까? 알겠는가? 범지가 버선을 뒤집어 신으니, 사람들 모두가 틀렸다 하였
다. 차라리 그대의 눈을 찌를지언정 내 다리는 숨기지 못하리라."
운대정(雲臺靜)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2월에 복사꽃이 곳곳에 피니, 바람 불자 조각조각 이끼 위에 떨어진다.
영운이 다른 사람들을 몹시 속인 뒤에 지금껏 배에 가득 의심을 품고 있다.
옛날에 영운 화상이 대중들과 있기를 30년에 깨달은 바가 없더니, 우연히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복사꽃을 보고 갑자기 도를 깨닫고는 게송 읊었으니,9)
대중들아, 영운 노장의 그런 이야기가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기는 한 것인가?
그러므로 '밥을 이야기해도 배가 부르지 않고,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 고 하였으니, 입으로 지껄이는 빛과 소리로 어떻게 표준을 대겠는가?
150년 동안 던져 두어 아무도 그를 점검하지 않았구나. 오늘 내가 이르노니, 영
운 노장이 그 때 깨달아 듣기는 했으나 복사꽃에 눈 찔리는 꼴을 면치 못했도다."
설두녕(雪竇寧)이 염(拈) 하였다.
"그런즉 열반묘심(涅槃妙心)은 깨치기 쉽거니와 차별지(差別智)는 밝히기 어
렵다. 영운이 본 곳은 그만두고, 현사가 그렇게 말한 속뜻은 무엇인가?"
양구(良久) 했다가 말하였다.
"일찍이 방랑 생활을 했기에 나그네를 더욱더 가엾이 여기고, 지나치게 술을
탐하였기에 취한 사람을 아끼느니라."
대평연(大平演)이 염하였다.
"무엇을 지당하다 하는가? 다시 30년을 참구해야 되리라."
자수(慈受)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말해 보라. 어디가 영운이 완전히 깨닫지 못한 곳인가? 졍수리의 안목을
갖춘 이는 듣자마자 알겠지만 뒤통수에 눈썹이 달린 이는 여전히 망설일 것
이다. 알겠는가? 30년 동안 발길 따라 다녔더니, 하루아침에 시비의 구덩이
를 초월했다. 복사꽃은 해마다 물결 따라 흐르면서 곁의 사람 마음대로 갈 길
두고 다투게 한다."
장산근(蔣山勤)이 염하였다.
"천 근의 쇠뇌로 생쥐를 쏘지 않는다. 영운은 이미 하늘 관문을 흔들었고,
현사는 다시 땅 주축을 흔들어 엎었다. 말해 보라, 어디가 완전히 깨치지 못
한 곳인가? 관문을 꿰뚫는 안목을 가진 이는 가려내 보라."
또 염하였다.
"노래가 고상할수록 화답하는 이가 더욱 드무니, 설곡(雪曲)과 양춘곡(陽春
曲)이로다.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劒)은 중생들을 제도하는 요체이거
늘, 어떤 이는 아직도 보고 듣는 데 걸려서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어 '서로
속이는 말이라' 하니, 한낮의 외로운 등불이 벌써 광채를 잃은 줄 전혀 모른다.
끝내 어디가 완전히 깨닫지 못한 자리인가? 항아리 속의 세월이 장구하도다."
백운병(白雲昺)이 염하였다.
"영운이 깨달은 곳은 만 가지 법의 근원을 끝까지 궁구한 것이요, 현사가 제
창한 것은 천 가지 차별된 길목을 차고앉은 것이다. 하나는 펴고 하나는 오므
렸으며,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대꾸하니, 마치 손을 맞잡고 산에 오르는 것 같
도다. 그러나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검을 뽑을 것이요, 시인이 아니거든 시
를 바치지 말지니라."
8) '양춘곡'은 초(楚)나라의 곡으로 고상한 곡을 대표하며, '호가(胡茄)'는 북방 호
족들이 풀잎을 말아서 부는 피리를 말한다.
9) 게송의 내용은 앞에서 "30년 동안 검을 찾은……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