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댁에서 보내온 청국장
새벽바람이 창문에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휘파람소리를 내던 골바람도 어느새 다정한 속삭임으로 바뀌었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아직도 귓전이 시리다. 그래도 관사 앞에 알프스의 빙하처럼 얼어붙은 의풍천이 햇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면 꼬르륵꼬르륵 물소리를 낸다. 해발 500m가 넘는 오지에도 기어이 봄이 오는 것이다.
벽지학교 총각선생의 하루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물이 따뜻해지면 쌀을 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의 성찬은 무엇으로 준비할까? 날마다 그렇듯이 청국장찌개를 끓이는 수밖에 없다. 1974년 그 시대 벽지학교 총각선생의 자취 생활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청국장이다.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콩을 씻어 물에 불린 후 가마솥 대신 양은솥에 푹 삶아 내어 사택 방 한구석에 담요를 푹 덮어씌워 놓았다. 그것이 냄새를 풀풀 내면서 실이 찍찍 나면 겨울 양식이 되어 주었다.
땅에 묻어 겨울을 난 배추김치를 썰고 찌그러진 냄비에 청국장찌개를 안친다. 시꺼멓게 변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제대로 띄우지도 보관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청국장 덩어리를 넣고 쌀뜨물을 받아 배추김치를 넣어 석유풍로에 올려놓으면 된다. 냄비 뚜껑이 노란 수증기를 내뿜으면 순아네서 가져온 두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여 빠뜨리면 끝이다.
꼴은 그래도 맛은 그만이다. 멸치를 넣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맛은 청국장 그대로의 맛이다. 가끔 건져 올리는 두부가 궁색한 총각선생이게는 왕건이가 되어 주었다. 청국장에 푹 익은 배추김치를 건져 흰쌀밥에 넣고 쓱쓱 비비면 왕후장상 부러울 것 없는 성찬이다. 콧잔등에 제법 땀까지 솟는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야 아무리 거칠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입에서 나오는 것이나 삼가면 되는 것이지. 식사를 마치고 남은 찌개 냄비를 살살 흔들어보면 잔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 콩을 일어서 돌을 가려내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꼴에 맛은 그만이었던 것이 냄비 바닥에서 구르는 맥반석 때문은 아니었는지.
어머니는 청국장을 담북장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에 대한 의리로 최근까지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청국장과 담북장은 약간 다른 것이었다. 담북장은 이른 봄에 잘 뜬 메주를 빨리 먹기 위해 간장을 내지 않고 담가서 4~5일 만에 먹는 것을 말한다. 반면 청국장은 삶은 콩을 발효시켜 2~3일 만에 먹는 것을 말한다. 장류 중에 가장 빨리 먹을 수 있어서 전국장戰國醬이라 했다고도 한다. 어머니의 담북장에는 잘 익은 열무김치가 들어갔다. 그래서 뚝배기에서 겉만 살짝 익은 열무김치를 찾아 먹는 맛도 재미있었다. 늦가을에 먹어도 좋지만 해토머리 꽃샘추위에 점심으로 식은 밥에 화롯불에서 달고 달아 콩알이 뒹구는 청국장찌개를 얹어 먹는 맛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청국장을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샀다. 청국장을 몇 말씩 띄워서 절구에 찧어 요즈음 초코파이 크기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셨다. 무거운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 시장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시장 길가에 청국장을 앞에 놓고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친다. 오늘 먹는 청국장에는 구수한 그리움뿐 아니라 가슴 아린 기억도 또렷하게 숨어 있다.
친정에 다녀온 며느리가 청국장을 가져 왔다. 사돈댁에서 청국장을 띄워 내게도 보내주신 것이다. 겨우내 먹고도 남을 것 같다. 종이 상자를 열고 비닐주머니를 펼치자 옥천 장령산 기슭의 청정한 가을 냄새가 거실에 가득하다. 맨드라미꽃 줄지어 빨갛게 피어 있는 마당에서 콩마당질하시는 사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외가에 간 우리 손자도 만발한 백일홍 아래서 아장아장 하얀 콩 줍기를 배우는 모습이 보인다. 손수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띄워 보내오신 사부인의 정성이 따스하다.
아내와 한번 끓여 먹을 만한 크기로 한 움큼씩 나누어 뭉쳤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봄까지 먹을 요량인 것이다. 주걱으로 떠서 손바닥에 놓고 꾹꾹 주물렀다. 냄새만 좋은 것이 아니라 손가락마다 전해지는 감촉이 참 좋다. 제대로 발효된 것이다. 청국장은 정성으로 띄워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부인의 발효된 정성을 짐작할 만하다. 아들의 결혼식 때 잘 키운 맏딸을 남의 빼앗기듯 보내는 사부인의 젖어 있던 눈이 생생하다. 아무리 한평생 나누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이지만 자식을 나누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서로 자식을 나누어 가진 사이가 아닌가? 가족이든 이웃이든 사랑의 나눔을 행복으로 여기는 그 분의 잘 발효된 성품이 청국장에 배어있다. 청국장은 정성과 사랑과 인연 같은 의미 있는 삶을 한 뚝배기에 모아놓은 아름다운 세계이고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다.
뜨거워서 입안을 온통 지져버릴 것 같은 청국장찌개를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면 거기 담긴 삶의 단맛이 다 보인다. 아내는 청국장을 한 보따리 안고 어디론가 나간다. 단맛을 친지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 것이다. 식품영양전문가들은 청국장이 육신에 주는 효능을 찾는다. 비만이나 암을 예방하고 당뇨나 고혈압치료제가 된다고 한다. 변비와 설사를 막아주는 정장제 역할도 한다고 한다. 심지어 천연비아그라라는 말까지 한다. 찾아보면 육신에 좋은 거야 어느 먹거리에선들 찾지 못할까. 그러나 사돈댁에서 보내온 청국장만큼 나눔의 바이러스가 되는 먹거리도 없을 것이다. 다시 친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국장은 육신에만 영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영양이 되는 철학적인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가올 봄에는 사돈댁에서 보내오신 그윽한 청국장으로 겨울동안 잠자는 입맛도 깨우고, 구수하고 담백한 정의 맛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 한 번 온몸에서 청국장 냄새나던 40년 전 산골 교사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초겨울 저녁 산그림자 내려오듯 다가오는 어머니에 대한 잔잔한 그리움에 젖게 될 것이다. 발효된 삶의 애환이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사부인의 품격 높은 가족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에세이포레 2015 봄호(통권73호)
첫댓글 이방주 회장님께서는 계간<에세이포레> 전문지에 "음식 에세이"를 연재하고 계신데...그 맛을 참으로 잘 그리십니다. 앞으로도 어떤 음식이 등장할 지 궁금하며 기대됩니다.^^~
반갑습니다. 책임감이 막중한데 잘 될 지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회장님이 끓여낸 청국장 한 뚝배기에서 삶의 진솔한 향기가 묻어 나는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은 청국장에서 나는 오묘한 냄새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송보영 선생님 반갑습니다. 정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도 그런 맛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사돈어른의 정성이 넘쳐나고 그 사랑을 구수하게 풀어내신 회장님의 손맛에 꿀꺽 침을 삼킵니다 청국장내 온통 이곳까지 소문처럼 번집니다 충북수필카페의 아랫목에 불을지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춘희 선생님, 청국장은 뚝배기에 끓여야 맛있지요? 그래야 뚝배기 같은 한국인의 정까지 배어나오는 기분이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회장님과 청국장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깊고 그윽한 맛, 우리의 입맛에서 없앨 수 없는 그 진한 청국장의 맛처럼 회장님의 글에선 깊고 구수한 맛이 나고 맛깔스러운 손맛이 나고 편안한 정이 느껴져요.
이승애 선생님, 청국장 같은 사람이라니 저로서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청국장이라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가면 사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 삶이겠어요.
햐~~~~~~~~~~ 침이 꿀꺽 넘어 갑니다. 선생님의 음식 표현 글은 참 맛있고 감칠 맛이 납니다. 남성이신데 어찌 그리 표현도 맛나게 하시는지... 너무 맛있어서 저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퍼 돌리려고 퍼 갑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맛도 맛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가슴저미는 아픔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