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질의서>
4) ‘야마기시 마을’이 자본주의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무소유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요? 야마기시마을의 구체적 일상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야마기시즘이 마음과 현상의 세계를 하나로 보는 사회적 실천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야마기시즘이 무엇인지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답) 야마기시라는 분은 인도의 간디와 거의 같은 해에 태어나서 1961년 경에 사망한 일본 사람입니다.
그는 그 동안의 여러 사상적 편력을 거쳐 ‘전인행복(全人幸福) 친애사회(親愛社會)’를 목표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를 조립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됩니다.
즉 ‘무아집(無我執), 무소유(無所有), 일체(一體)’를 이념으로 한 무소유(無所有)공용(共用)의 일체사회를 자본주의와 종교를 넘어선 사회 모습으로 제시합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어려운 시기라 처음에는 사람들 사회에는 적용하기 힘들어 그의 특유한 양계법(養鷄法)을 창안하여 성공함으로서 그것으로 세상에 알려집니다.
그 후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야마기시회를 만들고, 그가 제안한 사상을 야마기시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무아집, 무소유, 일체(一體)는 고등종교라면 이야기하는 것인데 뭐 특별할 것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종교가 주로 마음의 세계의 이야기라면 야마기시즘은 이를 사회화하고 구체적 사회운영의 원리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 즉 마음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통합하려고 한 점에서 야마기시즘이 20세기에 출현한 선구적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무아집을 소통과 탐구의 사회운영원리로 체계화한 것이 ‘연찬(硏鑽)’인데, 이것이 가장 핵심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바탕은 앞에 이야기한 공자의 사상과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제가 야마기시 마을에 살 때는 공자를 몰랐습니다)
이 핵심원리를 바탕으로 무소유공용의 사회를 조직해서 실제로 실현을 해보자고 해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야마기시실현지(야마기시마을)인데, 야마기시 생전에는 아마 실험적 차원에서 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그의 사후(死後) 이것이 야마기시즘 운동의 본류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마침 이 실현지운동이 피크일 때 참여했는데, 일본에 40여 곳 그리고 한국에 한 곳 그리고 몇 개 나라에 있는 실현지들이 하나로 연계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가장 큰 실현지는 1700명 정도나 되는 곳으로 명실상부하게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족했습니다.
당시 나는 그러한 모습에 감동하여 이것이 자본주의 이후에 나타날 사회의 모습이구나 하고 생각하였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하였습니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사회’를 현실에서 만들 수 있다니!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해를 위해서 당시 제 하루 생활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본의 큰 실현지와는 달라서 한국 실현지는 하나의 사회를 나타내기에는 적은 규모였지만(일종의 가족 연합 같은 규모) 그 운영 원리는 같은 것입니다.
<아침에 방에서 나와 로비에 들려 간단한 차 한잔을 합니다. 때로는 아침 전원이 참석하는 출발 연찬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일터로 향합니다. 작업복으로 갈아 입는 방에 들려서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직장인 양계부로 갑니다. 부원들과 함께 그 날 할 일이라든가 때로는 테마를 가지고 연찬을 합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저는 주로 사료주기나 알 꺼내는 일을 했는데,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합니다. 옷을 갈아 입고 샤워를 한 다음 11시경에 일체 식당인 애화관(愛和館)에서 식(食)생활부에서 준비한 식사를 합니다. 당시 야마기시 마을에서는 하루 두 번 식사를 하는 이른바 이식(二食)을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세 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 됩니다. 그리고 로비에서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담소한 후 자신의 방에 가서 낮잠을 잡니다. 오후 두 시경 다시 양계부에 가서 작업을 합니다. 오후 네 시경 부원들이 모여 중간 연찬을 합니다. 오후 작업을 마친 다음 의(衣)생활부에 가서 세탁해 놓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목욕실에 갑니다. 목욕을 마친 후 세탁할 옷을 내 놓고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해당하는 연찬회가 있으면 참가하고 그 이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썼지만, 이것이 보통의 생활 모습입니다.
좀 특별한 경우를 보겠습니다.
<며칠 있다가 자동차를 가지고 가족끼리 외출을 하고 싶을 때는 경비를 포함하여 조정소에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직장일이라던가 같은 날 자동차 사용가능여부 등 여러 가지를 제안자와 조정소가 연찬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급료나 분배가 없는 <한 지갑> 생활입니다. 요즘은 적은 액수에 대한 제안 조정이 번거롭게 생각되어 소액의 용돈을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토요사토 같은 곳은 숙소나 아이들의 학육사동이 아파트 규모이며, 목욕탕도 대단히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고, 식당 또한 규모나 설비가 뛰어납니다.
토요사토 실현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이른바 애화관 사이좋음연찬이라는 전원이 참가하는 대회식(大會食)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공연을 포함해서 무소유사회의 문화를 함께 나누는 감동을 경험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마기시마을을 나오게 된 것은 이런 실현지 운동이 보편화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아직 진실한 연찬을 하기에는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 모여 시스템으로 무아집, 무소유 사회를 조직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 정도로 이야기 해두겠습니다.
지금 실현지 안 팎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으로부터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5)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공자가 70세에 도달한 의식의 성숙 단계에 인류 다수가 도달해야 한다는 게 ‘무소유 사회’의 전제조건이 되는 듯한데, 그게 과연 가능할지요?
(답)그렇게 말씀하시면 대단히 어려워 보이지만, 저는 그런 방향으로 보편적 인간의 자유욕구가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그 사회의 성격과 관계없이 공자와 같은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한다고 생각해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상태는 누구나 원할만한 것이지만, 종심소욕(從心所慾)의 상태만 하더라도 쉽지 않거든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도 잘 안되요. 저만 하더라도 지금도 잘 안되거든요. 마음 속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라도 체면이나 인습에 묶여 못하는 일이 많아요.
마음 속에 ‘부자유’가 있는 것이지요.
아마 저와 같은 세대의 보통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신세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라는 점에서는 엄청난 진화를 했거든요.
과거에 그 나이에 우리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이것은 대단한 것이에요.
그럴만한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갖춰진 것이지요. 이것이 보편적인 진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경우 어렵다고 생각해요.
야마기시 마을의 경우, 근래의 변화가 사실 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못 누리는 ‘부자유’를 자각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른바 ‘본능대로 살자’며 이 자유를 만끽해 보려 하지만, 곧 그것이 근원적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세상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근원적 부자유에 봉착하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에고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보편적 자유욕구라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하여 과거 세대가 지레 그 한계를 느끼고 부자유를 감수하는 것과는 질이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는 것 같지만 저는 신세대의 자유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류의 보편의식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생각해요. 에고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아마 머지않아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진화하는 것 같은 속도로 보통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시점이 오리라 생각해요.
물론 선구자들의 노력이 그 환경이 되겠지요.
저는 신세대의 텃밭이 과거의 도덕주의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