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감(悲感)
계절을 재촉하려는지 겨울비가 추적대
는 음산한 날씨다. 단톡방에 올라온 모
임 공지를 다시 확인하고 시간 계산을
해보니 나서야 할 시간이다. 12시 맞추
려면 10,30분엔 출발해야 지난번처럼
가다 오지 않을 것 같다. 모임장소 부천
소재 까치울역 중국집이다. 전철로 가는
노선 인터넷으로 찾아 숙지하고 부슬비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11,40분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도봉구 사는 ㅇㅇ씨만
도착 전이었다.
모처럼 전철로 여행하니 마음이 편했다.
환승역이 구로 디지털역이라서 내려 지
하 수십 미터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갔다.
어찌나 곳곳을 편리하고 깨끗하게 만들
있는지 과연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맞구
나 하는 자부심이 절로 들었다. 나도
현역 시절 이런 선진국 만드는데 한몫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타고 내리
는 승객들의 차림새며 표정을 보면서
대한민국서 태어난 게 감사하단 마음
이 들었다.
식사 메뉴는 해물짬뽕이다. 짬뽕 한 그
릇 먹자고 구리에서 도봉구에서 인천
에서 비속을 뚫고 왔구나 생각하며 회
장의 건배사에 따라 건강한 노후 위하
여를 외치며 소주잔을 부딪쳤다. 27년
전에 11명 고항 선배님들 모임에 가입
하여 줄 곳 총무 맡아보는데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부인이 죽어 삶의 의욕을
잃고 힘없어 하던 회원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아직까지 회원으로 등록되여 있는 사람
이 8명인데 그중에서 또 한 명이 지난
가을부터 못 나왔다. 회장과 오늘 불참
한 회원이 최고령자신데 86세다.
내가 막내로 만년 총무를 보는데 한때
는 회비 적립금이 2천만 원도 넘었지만
지금은 4십여만 원으로 줄었다. 되도록
맛집에서 식사하고 회비는 2만 원으로
낮추어 살림하니 5~6년 만에 줄었다.
나이도 많은데 더 모아 뮐하냔 회원들
뜻 따른 결과다. 하기야 자식들 결혼에
부모님 상사 칠순잔치에 100만 원씩
부조하고 화환 조화 등 회칙대로 운영
하다 보니 적립금이 눈 녹듯 녹았다.
오나가나 화제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놀던 얘기에 가난하여 고생하던 추억
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당숙들이 두 분이
회원인데 ㅇㅇ화공에서 근무할 때 얘
기하며 자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회사를 IMF 때 환차손으로 40여년된
회사를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 사연을
각자의 처지 본 각도에 따라 실패 원인
을 진단했다. 나는 듣고만 있었지만
속으로 짐작을 하고 있었다. 내가 94년
7월 22일까지 근무하고 23일부터
내 사업을 시작했다고 몇 회에선가 썼
는데 내가 분석한 실패의 원인은 돈을
벌어드리는 창구가 막혀서 문을 닫아야
했다고 본다. 자랑이 아니라 나와 권ㅇ
ㅇ 차장 빠진 게 결정적 타격으로 본다.
권 차장은 영업관리 차장으로 안살림을
물샐틈없이. 하던 친구였다. 본사에는
1부. 2부. 부산사무소. 대구사무소. 4개
부서로 운영했는데 종합상사와 경쟁
해야 하는 영업환경에서 내가 맡은 영
업 2부가 돈을 버는 유일한 창구였다.
왜냐? 컴퓨터가 전 부서에 지급되고
부터 부서 간 실적을 따지고 고과를 메
기는 제도가 도입되여 마진 많이 나는
부서에 점수를 주는 게. 아니라 매출액
순위에 따라 고과를 메기는 정책에
대기업이나. 대량 판매처 맡은 부서가
늘 유리한 께임였다. 난 원래 자산관리
가 주 업무였는데 90년도에 충무로
극동빌딩 2002호로 이사 오면서 본격
무역회사로 업태가 바뀌면서 나도
영업 2부 맡으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1부 부서장인 유ㅇㅇ 부장이 쓸만한
대기업 자기 부서로 돌리고 내게 맡겨
진 거래처는 중소기업에 반월공단. 남
동공단 등을 떼어줘서 죽으라고 뛰어
도 대기업. 맡은 1부 이길수가 없었다.
자연히 자잘한 중소업체 배정받았으니
마진율은 우리 부서가 월등히 많았다.
내 부서에서 년 50억을 팔아서 10억의
이익을 냈다면 1부와 부산. 대구는 매출
위주로 운영했으니 이익은 우리 부서의
50% 안되었다. 월말 영업회의 시간에
는 매출이 많은 1부와 부산사무소 칭찬
하고 실질적 이익을 가장 많이 내는 내
부서는 타깃이 되곤 했다. 우리 부서엔
중대화학과. 한양대. 동아대 출신 젊은
부서원이 나 포함 4명이 있었는데 회의
끝나면 회의실에서 남아 담배 피우며
불평을 하였다. 당시 1부 거래처 중에
선경 마그네틱이란 비디오.음악 테프
등 만드는 선경그룹 필름 공장였는데
일제 MEK라는 용제를 월 300톤 넘게
납품하였는데 매출액은 월 5~6억씩
올 랐으나 마진율 2%나 되는지 암튼
거의 수익 나지 않고 매출액만 잡혔다.
마진이 나지 않는 매출은 숫자놀이에
불과하고 부뚜막 소금도 집어먹어야
짜다고 했다. 절치부심 노력해 93년
에 1부와 부산을 제치고 2부가 1위를
달성하였다. 1부 부서장이 오늘 모임
도 나온 비정규 회원인데 자기는 다 잘
했는데 사장이 경영 미숙으로 인하여
회사 문을 닫았다고 사장을 원망했다.
내가 나온 게 94년 7월인데 유ㅇㅇ은
이사로 승진하여 영업을 총괄하다가
IMF를 맞았는데 평직원도 아니고
한 회사 이사 직함 정도면 경영의 주
요 책임자인데 자기반성은 없고 평생
함께한 회사 사장에게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영 덜 좋게 보였다.
같이 근무해 보지 않은 사랑방 모임
회원들이야 깊은 내막을 모르니까
그 사람 말을 믿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 알 수 있었다. 93년 내 부서에 뒤진
실적에 연말 회의서 사장에게 깨지
고 94년 실력으로 안되니까 조그만
꼬투리 잡아서 직급으로 물고 늘어지
며 우리 부서를 시기 질투했다.
오죽하면 중대 출신.직원이 2~3천만원
부도 맞았는데 침소봉대하여 6월 상반
기 결산보고 회의 시간에 어찌나 갈구는
지 욱하는 성질 못 이기고 사표를 썼는
데 부서 직원들 다 고만둔 다는 걸 내가
책임진다고 하고 나만 사표를 냈으니
그 후 내 가게에 와서 옛 부서원들이 내
가게 영업사원처럼 나를 도와주고 정보
를 주어 내 사업에 활용하여 창업 다음
달부터 손익분기를 넘기는 기적을
이루었다. 두고두고 부족한 부서장을
믿고 따라준 부서원들에게 감사를 한다.
요즘도 가족 행사나 상사에 서로 오가며
옛날을 회고한다. 모두 창업하거나
제법 큰 회사 월급사장이지만 사회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내가 나오고 다음 해 안살림 맡아 하던
권ㅇㅇ 차장이 간암으로 죽어서 타격이
되었다. 나는 직장에서의 경험을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실익 안 나는 장사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구술이 서 말이
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속담을 철저히
지켰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유아
무게는 대운 타고나서 잘된다고 했다.
한다는 회사. 가게 다 망하던 IMF에도
망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했다지만1%
의 운과 99%의 피나는 노력 결과로
나를 지키고 가정을 살렸다는 사실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두고두고 아쉬운 건 ㅇㅇ화공 유 사장
소유 용인 내사면에있던 농장이 당시
28억이란 헐갑에 4만평이 넘는 땅도
은행경매로 넘어가고 시골 대귈같은
절집이 단돈 오억에 넘어갔다.
요즘 용인원사면에 SK하이닉스와 삼성
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고 있는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내사면 양지에 있는
땅이 싯가로 1000억 된다니 참으로
기가막힌 변화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같은 일가
친척이자.나를 키워준 모체가 공중 분해
되어 내가 다 억울하고. 서운한데 본인
유사장님이야 오죽하실까, 모든것 내려
놓고 요즘은 교회 신앙인이 되셨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오늘 여기까집니다.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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