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설(死生說) 性命圭旨에 있는 글인데 이윤희 님이 풀어 옮겼다.
태어나는 것은 여덟 번째 의식(意識)의 신(神)인 아뢰야(阿賴耶)]가 주장하고,
죽음도 역시 여덟 번째의 신(神)인 아뢰야(阿賴耶)가 주장한다.
경속풍즉오식(境屬風卽五識): 1.안식(眼識). 2.이식(耳識). 3.비식(鼻識). 4.설식(舌識). 5.신식(身識).
6. 의식(六意識). 육식속파(六識屬派). 7. 전송식(七傳送識). 칠식속랑(七識屬浪)
8. 아뢰야식(八阿賴耶識). 집지함장(執持含藏). 팔식심해(八識心海). 9. 자정식(九自淨識).구식속담성(九識屬湛性).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 갈 때는 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이 먼저오고,
몸을 버리고 떠날 때에는 이 여덟 번째 의식(意識)이 뒤에 떠난다.
그럼으로, &. 혼(魂)[바람]. 신(神)[불]. 백(魄)[물]. 정(精)[땅]. 망(妄). 진(眞).
갈 때는 뒤에 가고,
올 때는 먼저 와서 주인(主人)어른 노릇 한다.는 말이 있다.
경송(經頌)에서는
착한 업(業)은 밑에서부터 차가워지고,
나쁜 업(業)은 위에서부터 차가워지는데,
둘 다 심장(心臟)에 이르러 그 한 곳으로부터 같은 때에 몸을 버린다, 라고 하였다.
이때가 되면 마치
산 거북이의 등껍질을 벗기듯,
산 자라를 끓은 국에 던져 넣듯,
몸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인 흙[지(地)]과 물[수(水)]과 불[화(火)]과 바람[풍(風)]이 각각 나뉘어 흩어지며,
그러기 전(前)에 신(神)이 먼저 몸을 떠나 버린다.
다만 온 세상이 화선지에 먹물을 뿌려놓은 듯,
하여 동(東)인지 서(西)인지 알아차릴 수 없고,
위인지 아래인지 모르는 가운데 인연(因緣) 있는 곳에서 오직 한 점(點) 헛된 밝음만이 보이게 된다.
밝음이 보이면 색(色)이 나오게 되고,
밝음이 나타나면 생각을 이루니,
애욕(愛慾)의 흐름은 씨앗이 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생각은 태(胎)가 되어,
어머니의 몸 가운데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기(氣)를 받고,
바탕 되는 재료(材料)를 얻게 된다.
기(氣)를 받으면 단박 몸을 이루는 네 가지[지수화풍(地水火風)]요소를 갖추게 되어 차차로 몸의 기관(器官)들을 이루어가게 된다.
마음은 단박 마음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갖추게 되어 차차로 여러 의식(意識)을 이루어 가게 된다.
마음은 단박 마음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要所)란?
1. 불(佛): (1). 육단심(肉團心). 연려심(緣慮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 있다.
(2). 지혜심(智慧心). 방편심(方便心). 무장심(無障心). 승진심(勝眞心)이 네 가지 청정(淸淨)한 공덕(功德)을 얻으면 오념문(五念門)의 행(行)을 완료(完了)하여 정토(淨土)에 가서 난다 함.
(3). 직심(直心). 발행심(發行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 이것이 육도행(六度行)의 근본이 된다.[정토론(淨土論). 유마경(維摩經)].
2. 유(儒):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열 달 동안에 태(胎)가 완전해지고 자라서 때가 되면, 땅과 하늘이 뒤집어지고 사람이 놀라며 아기집이 터져서 마치 산등성이를 걷다가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는 것 같은 모습으로 머리는 공중에 매달리고 발로는 노를 젖 듯 하면서 나온다.
“으앙”하는 한 소리에 하늘이 내려준 생명(生命)의 참다운 근본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어떤 터널에 가 붙어서,
낮에는 두 눈에 살면서 이환(泥丸)에 감추어져있고,
밤에는 두 콩팥에 잠기어 있으면서 단전(丹田)에 쌓여 있다.
젖으로 그 다섯 장기(臟器)[심. 간. 비. 폐. 신(心.肝.脾.肺.腎)]를 기르니,
기운(氣運)이 여섯 부(腑)[소장(小腸). 간(肝). 위(胃). 대장(大腸. 방광(膀胱)]를 채운다.
뼈는 솜처럼 약(弱)하고,
살은 엿처럼 매끄럽고,
정(精)이 지극(至極)한 상태이라서,
아무리 보아도 눈 깜박거리지 않고,
아무리 큰 소리로 울어도 목쉬지 않으니,
기(氣)의 조화(調和)로 움이 지극한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갓난아기의 태초(太初)의 소용돌이 상태이며,
순수하게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어서 알음알이가 없는 상태이다.
순전히 음(陰)으로 된 곤괘(坤卦)에 속한다.
... 이와 같이
1. 텅 빔으로부터 신(神)으로 변화(變化)되고,
2. 신(神)에서 기(氣)로 변화되고,
3. 기(氣)에서 피[혈(血)]로 변화되고,
4. 피에서 생김새가 있는 몸으로 변화되고,
5. 생김새가 있는 몸에서 갓난아기로 변화되고,
6. 갓난아기에서 어린이로 변화되고,
7. 어린이에서 젊은이로 변화되고,
8. 젊은이에서 어른으로 변화되고,
9. 어른에서 늙은이로 변화되고,
10. 늙은이에서 죽음으로 변화되고,
11. 죽음에서 다시 텅 빔으로 변화(變化)되었다가,
다시
12. 텅 빔에서 신(神)으로 변화되고,
13. 신(神)에서 다시 기(氣)로 변화되고,
14. 기(氣)에서 다시 물질(物質)로 변화되어,
15. 마치 굴렁쇠가 끝없이 굴러가듯 변화와 변화사이에 틈이 없다.
만물(萬物)은 태아나려고 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태어나는 것이고,
죽으려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어서,
되는 대로 티끌처럼 생겼다가 티끌처럼 사라지곤 한다.
수(數)없이 태어나고,
수(數)없이 죽어도,
괴로움의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겁(劫)에 겁(劫)을 더하도록 태어나고 태어나서,
윤회(輪廻)를 그치지 않아 끝도 없고,
처음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것이다.
길을 잃고 윤회(輪廻)하는 세계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은 이에 빠지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태어났는지 모르면서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세계에 들어 있게 되는데,
죽음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오는 것을 알아야 태어나는 곳을 알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지도 않고
얼[혼(魂)]이 떠돌고
넋[백(魄)]이 내려가 버린 뒤의 세계에 들어 있게 되는데,
태어남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가는 곳을 알아야 죽는 곳을 알 것이다.
죽음의 기(機)틀은 태어남에 말미암고,
태어남의 기(機)틀은 죽음에 근원(根原)을 두니,
죽음의 기(機)틀이 없으면 죽지를 않고,
태어남의 기(機)틀이 없으면 태어나지를 않을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의 기(機)틀은 서로 관문(關門)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과 태어남이 있는가 하면,
그 사이에는 가로막는 아무런 관문(關門)도 없는 까닭에,
지극(至極)한 사람들이 죽음과 태어남을 뛰어 넘는 것이다.
죽음과 태어남이 있는 것은 몸이고,
그것이 없는 것은 마음이다.
양(陽)한 상태로 돌아가기에 착실하면 마음이 살고,
그것을 하지 못하여 길 잃고 헤매면 마음이 죽는다.
그러므로 신선(神仙)과 부처께서는
그러함을 어여삐 여겨 모든 태어난 것은 본래부터 있었고 하나이며
신령(神靈)한 참된 깨달음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다만 어두움 속에서 눈이 어두워 보지를 못하여,
하늘이 맡겨준 본성(本性)으로 하여금 아니 가는 곳 없이,
흘러 다니게 하면서 굽이굽이마다에서도 깨치지 못하고
세계를 거칠수록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니
몸은 다른 종류(種類)들이 빼앗아가 버리고,
영혼(靈魂)은 다른 껍질 속으로 던져져서
지극(至極)히 참되었던 본성(本性)의 뿌리가 다시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만다.
이에 내가 성인(聖人)이 가르친 진리(眞理)의 길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永遠)히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하여 스스로를
신선들께서 오래 산 것과 같고
부처께서 죽지 않는 것 같은 경계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