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시간
『여호와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1-6. 570장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과거 한국교회에는 ‘조사’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선교사나 혹은 목사와 같은 성직자가 부족하던 시절, 그들을 대신해서 예배를 인도하고 성경을 봉독하던 이들을 ‘조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야 교회와 목회자도 많고 글을 모르는 성도가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글을 읽을 줄 알아 성경을 봉독하고 예배를 인도하시던 ‘조사’는 교회마다 굉장히 중요한 사명자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각 속회를 맡고 계신 속장 혹은 인도자들께서 조사들의 일을 하고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속장님들, 인도자님들에게 그 당시 조사들과 같은 은혜를 허락하시길 소망합니다.
경상도 한 시골교회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한 조사께서 마침 예배 시간에 성경을 봉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본문은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23편 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절 말씀을 그만 실수로
“여호와 나의 목 자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읽으신 겁니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여호와 나의 목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여기저기에서
“아멘입니다.”
“저도 아멘입니다.” 이런 고백들이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성도들께서 얼마나 순수한 믿음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순수하게 예수를 믿으며 따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떻게 예수를 믿고 어떻게 따르고 있습니까? 이제는 글을 다 알기 때문에 ‘여호와 나의 목자시니’를 ‘여호와 나의 목 자르시니’로 잘못 읽지는 않습니다. 잘못 읽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만큼 순수하게 예수를 믿고 있는지요?
어쩌면 너무나 순수하게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 당시 성도들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순수한 만큼 행복합니다. 행복한 만큼 따를 수 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순수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마무리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수한 믿음으로 예수를 따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