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인형
손 원
사람은 늘 걱정하며 살아간다. 약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 많은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무서운 전염병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감염되지는 않을까. 가족이 감염되어 낭패를 겪지 않을까." 누구나 크고 작은 희생을 치렀고, 더 큰 재앙이 닥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지혜로운 솔로몬 왕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다. 걱정은 걱정일 뿐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걱정을 잊고 오늘을 즐기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아네스 안"의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이란 책에 수록된 "걱정 인형"이란 글이다.
내 침대 머리맡에는 조그마한 인형이 하나 놓여 있다. 바로 '걱정 인형' 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룸메이트 아스카가 멕시코 여행길에 나에게 선물로 사다 주었다. 걱정 인형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한 인디언 소녀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은 엄마가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렸어요. 엄마가 내일 보시고 화를 낼 것 같아 격정스러위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는 상자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 소녀에게 주었다.
'애야, 이 인형은 걱정인형이라고 한단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인형에게 너의 걱정을 덜어달라고 말하렴. 그러고 나서 인형을 베개 밀에 넣고 자면 잠든 사이에 인형이 네 걱정을 덜어줄 거야.'
할아버지, 그게 정말이에요?
우리 인디언 부족은 누구나 이 인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단다. 살면서 걱정거리가 생기면 바로 걱정 인형에게 털어놓고 가져가라고 말하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음날이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된단다."
소녀는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걱정 인형에게 고민거리를 부탁하고 곤히 잠에 빠졌다.
이 걱정 인형에 대한 전실은 과테말라의 고산지대에 사는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떤 문제로 고민할 때나 자신의 실수가 자꾸 떠올라 괴로울 때 인디언들은 이 인형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한 뒤 베개 밑에 넣고 자는데, 잠든 사이에 인형이 주인의 고민거리와 걱정거리를 다 버려 준다고 믿는 것이다. 걱정하느라 잠 못 이루는 우리도 인디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 인형을 받고 나서 나도 당장 실천에 옮겼다. 걱정 인형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잠들기 전 온갖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어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를 하면 어쩌지. 그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확실하다면 누구도 날 욕할 사람은 없을 거야."
걱정 인형은 정말이지 효과 만점이었다. 그동안 걱정하느라 소비한 시간이 줄어든 듯했고 잠도 잘 잘 수 있었다.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문제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건 미스터리로 남겨진다. 그만큼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라며 좌절하지 말고 '까짓것 이것쯤이야'라며 통 크게 생각하자. 물레방아처럼 돌고 도는 게 걱정이고 기쁨이라면 얼른 걱정을 밀쳐내라. 그럼 바퀴가 뱅그르르 돌아서 기쁨이 당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쉬워 보이듯이 당신의 문제 또한 쉽게 풀릴 수 있다. 쓸데없는 걱정 하느라 주저하며 보낸 시간만 모아도 뭐 하나 했을 것이다. 슬픔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는 자의 것이고, 행복은 문제가 곧 해결된다고 믿는 자의 것이다.
걱정은 사람을 늙게 한다
"혹시 1년 전에 네가 어떤 걱정을 했는지 기억해? 아니, 한 달 전 걱정이라도? 몇 해 전 친구가 내게 불었다. 물론 기억이 전혀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모두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만큼 우리는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걱정들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기억도 못 할 만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걱정부터 해왔는지. 그만큼 걱정스러운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고,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껴안고 있지 말고 잠시 접어두자. 과거의 잘못 따위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라. 사람이 과거를 두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뿐이다.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오래도록 기억하는 반면 다른 이의 실수는 생각보다 빨리 잊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실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을까 싶어 걱정하지 마라. 좋은 기억은 추억이라 불리고. 나쁜 기억은 망각이라 불린다. 그만큼 나쁜 기억은 쉬 지워질 테니, 우린 좋은 것만 기억하면 된다.
인생은 너무나 짧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바쁜데 뭐 하러 마음고생하며 사는가. 기쁨, 즐거움, 행복이 당신에게 온 반가운 손님이라면 걱정, 근심, 슬픔은 허락도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다. 불청객인 만큼 잘 모실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당신에게 붙어 있고 싶지 않게 눈치도 팍팍 주고, 구박도 해대서 알아서 떠나게 하라. 간혹 여행을 가기 전부터 '길이 많이 막히면 어쩌지. 사람이 너무 붐비면 어쩌나. 저번엔 지갑까지 잃어버렸는데 괜히 가는 건 아닌가?' 라고 쏠데없는 걱정만 하는 사람들은, 막상 여행을 떠나 조금이라도 교통이 막히면 이것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냥 집에 있는 건데. 집에 갈 때도 이러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그날 하루를 망치게 된다.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여행에 대한 설렘만 있으면 된다.
항상 기억하라. 만약 우리가 오늘의 행복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무엇인가를 있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란 것을….
(2023. 6. 30)
첫댓글
울림이 전해지는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오늘 후배들을 만나러 가는데
걱정하는 후배가 있으면 , 아니 없더라도 걱정 인형 얘기를 해 주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걱정 없이 행복하게 보낼게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 기쁨, 행복, 즐거움을 반가운 손님이라 하신 표현에 공감합니다. 걱정 인형을 곁에 두는 지혜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