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의 빈살만 왕세자가 연일 뉴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빈살만은 이래저래 화제의 인물이다. 우선 정말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이다. 거의 2500조원이라는 말도 있고 그의 부는 실측이 불가능하다는 설도 있다. 중동의 맹주자리를 놓고 이란과 치열하게 샅바싸움을 하다가 요즘은 화해 분위기로 접어 들었고 그 중심에 빈살만이 있다. 이란 입장에서도 미국의 충견역할을 했던 사우디가 최근에는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니 앙숙으로 남을 이유가 없다. 순니파 시아파 이런 것은 종교적인 상징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자국에서 종교적 통치에서는 다른 시각이겠지만. 빈살만 왕세자는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아들이다. 참고로 빈살만은 살만 국왕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빈이 아랍어로 아들이다. 차기 왕권 경쟁 상대이던 사촌과 형제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아버지인 국왕을 대신해 거의 모든 행정을 도맡아 하고 있다. 탈석유화 내지는 석유이후를 겨냥해 네옴시티 건설 등 다방면으로 각종 산업을 유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스포츠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프로축구구단인 뉴캐슬의 구단주가 바로 빈살만이다. 나는 얼마전까지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예전 사우디 왕자들의 행적을 답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가 바로 사우디이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의 태종과 세종 그리고 세조를 합쳐 놓은 그런 모습이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한때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은 엄청난 동맹국이었다. 이스라엘과 이라크 그리고 이란 사이에서 중동 맹주의 자리가 위태롭던 시절 미국은 사우디에게 강한 손을 내밀었다. 과격한 이라크와 이란으로부터 사우디를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우디는 모든 석유결제를 달러화로 하겠다고 응답했다. 미국의 달러화가 그야말로 세계 기축통화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사우디와 미국은 동맹국으로서의 친밀한 행동을 거듭했다. 이라크와 이란이 감히 사우디를 넘보지 못하게 미국이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미국이 중동의 석유에 목을 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미국에서 나오는 석유와 가스만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우디는 이미 미국에게 예속될만큼 예속된 상태여서 그냥 가만히 놔두어도 된다는 인식이 미 정가에 널리 펴졌다.
그러는 동안 사우디에서는 정치적 급변기를 맞는다. 국왕이 차기 왕세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빈살만은 형제와 사촌들을 좋은 말로는 정리했고 나쁜 의미에서는 모조리 축출해 버렸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유혈극을 두고 미국이 날카롭게 지적하기 시작하자 사우디와 미국은 점차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우디를 별볼일 없게 바라보니 미국에게 보라는 듯이 사우디 빈살만은 광폭 외교를 펼친다.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외교를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틈새를 중국이 놓칠 리 없다. 중국은 급히 사우디로 날아가 빈살만을 만나고 설득해서 이란과 관계 개선을 이루도록 했다. 그리고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를 만들어 중동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그가운데 으뜸은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이다. 자연스럽게 중국의 시진핑과 사우디의 빈살만은 자주 만나게 된다. 안그래도 미중갈등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중국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잡아둔 월척을 놓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사우디에게 여러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자국의 석유값 안정을 위해 석유 증산을 해줄 것을 사우디에 간곡히 요청했으나 사우디 빈살만은 연달아 보란 듯이 거절해 버린다. 오히려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드리는 모양새까지 띠고 있다. 요즘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사우디에 연패를 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를 과소평가했다. 아니 빈살만을 잘 몰랐다. 그냥 졸부집안에서 태어나 무엇도 모르고 까부는 금수저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빈살만은 자신의 조국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로지 석유로 부흥했지만 세계에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 그래서 미국 등 강대국들에게 깔보임을 당하는 나라. 38살 빈살만은 이를 깨문다. 중동 그리고 사우디가 살아남기 위해 영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행동한다.소탐대실의 누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판단한 것이다. 사우디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결코 졸부의 나라로 마감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우디의 젊은 리더인 빈살만은 영악하게 지금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미국의 국무장관이 이번에( 2023.6.7) 사우디로 급히 날아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세계를 향해 미국은 중동을 떠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은 미국은 중동에 남아 있으며 중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장관의 모습에서 초조함이 묻어난다. 블링컨과 사우디의 빈살만과의 회담도 있었는데 블링컨 장관은 인권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고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고 외신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불편한 지적 즉 인권문제에 대해 또 다시 언급이 되니 속이 편하겠는가. 사실 사우디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뿐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인권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사우디의 빈살만은 왜 모르겠는가. 자국인 사우디가 인권문제에서 전세계에서 북한 아프간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빈살만은 종교를 중시한다. 종교만은 노타치해주기를 너무 바라고 있다. 각국에 아킬레스건이 있듯이 사우디의 종교적인 문제는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이슬람의 원천인 코란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화는 세계화이지만 자신들의 국가가 존립하게 하는 그 종교적인 원천을 바꾸라는 것은 결코 용납 아니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고 사우디는 판단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입장에서도 중동 그 가운데 사우디가 유독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 문제를 포함한 인간의 삶을 학대하는 모습을 그냥 보아넘길 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대로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꾸만 인권문제 운운하는 것이 몹시 피곤하고 괴로울 수 있다. 기원후 600년대 발흥한 이후 대대 손손 종교 이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지금와서 바꾸라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상이 안된다. 미국이 생기기전 무려 1200년 이전 아닌가. 그 수많은 세월을 지내오고 자신들의 삶의 전부라고 판단하는 종교적 입장을 바꾸라...사우디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현실을 무시한채 오로지 미등 서구사회의 판단에 의해서 모든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이 고울리 가 없지 않겠는가.
미국이 화해의 제스처를 사우디에게 보내지만 미국과 사우디가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임을 전세계가 다 알게됐는데 다른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뭐라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사우디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비해 자국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이 없고 미국같이 고자세로 대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에게 더 이득이 되고 관심과 애정이 가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고 사우디의 빈살만이 미국에 적대관계를 절대로 표출하지 않는다. 그냥 미국이 지적하면 그래 하면서 자기 갈 길을 가는 곳이 사우디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 사우디를 위해 중국과도 러시아와도 편하게 외교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것이 사우디 아라비아이다. 물론 석유라는 강력한 자원이 아직 존재하니까 가능한 것이고 지금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느라 힘이 상당히 빠져 있다는 것을 사우디의 빈살만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년에 있을 미국 대선 상황도 빈살만은 아주 치밀하게 읽을 것이다. 앞으로 사우디의 빈살만이 어떤 행보를 할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외교와는 다른 차원의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 순니파의 종주국이자 이슬람의 성지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그 사우디를 세계속에 우뚝 서게 만들고 싶은 빈살만. 그가 종교적으로도 혁명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85년 생으로 아직 30대이자 전세계를 통털어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인의 한명으로 손꼽히는 그의 행보속에 외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2023년 6월 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