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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남창부는 도읍 전체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팔(八月) 십사일(十四日), 원방파와 손화장에 있던 사람들은
노소(老小) 가림 없이 모두 죽고 말았다.
추석(秋夕) 전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갔던 사람들도 모두 모여들어 피해가 특히 컸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곽모천이 본색을 드러냈느니, 악마가 따로 없다느니 하는 말은
힘없는 자의 푸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곽가장을 어쩌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혹 광란의 잔치를 되풀이할까봐 전
전긍긍했다.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졌다. 모두들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기이한 행렬에 참
여했다. 간단한 봇짐을 메고 남창부를 떠나는 행렬에.
다행스럽게도 그 사건 이후로 곽가장은 조용했다.
사십칠 개 곽가장 분타가 남창으로 집결하고 있지만, 그들도
별다른 패악은 부리지 않았다.
폭풍전야(暴風前夜).
남창부는 폭풍의 핵이었고, 강서성은 폭풍전야처럼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어서 오시지요."
속발(束髮:상투머리)을 하고 일자건(一字巾)을 쓴 도인(道人)
이 반여량 일행을 정중하게 맞아 주었다.
상투는 옥으로 된 비녀로 고정시켰고, 남청색 도복(道服), 백
말자(白襪子:흰버선)와 청혜(靑鞋)를 신은 모습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무당파 도인들은 저녁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쇠로 만든 선발(仙鉢)에 밥을 지어 먹는 모습 또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일행은 가장 안쪽에 있는 장막으로 안내되었다.
"아!"
"언니!"
장막을 밀치고 들어선 곽선연과 곽소연은 뜻밖에도 곽사연을
만나자 경악성부터 내질렀다.
참으로 신출귀몰했다.
사우맹이 몰살당할 때 소리없이 사라지더니, 느닷없이 방을 써
붙이는가 하면 이제는 무당파 도인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모습
을 드러내다니.
그녀뿐이 아니었다. 호소봉왕 가심, 요와. 그녀들도 곽사연과
자리를 함께 했다. 곽가장에서 자란 장녀 곽사연은 동생들보다
더 많은 밀실을 알았다. 그런 그녀가 두 여인을 빼내오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으리라. 그랬다. 곽사연은 호소봉왕을 구출했고,
호소봉왕이 요와를 구해 도주하는 동안 그녀는 곽가장 무인들
의 이목을 흩트렸다. 곽가장을 빠져 나오면서 무인 한 명 만나
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서 와라 올 줄 알았다."
곽사연은 활짝웃었다.
"한한이 납치된 것은 참 안됐어요. 하지만 손을 쓸 수가 없었
죠. 빨리 온다고 왔는데 그만 늦고 말았네요."
곽사연은 완연히 달라졌다.
반여량은 그녀의 영혼에서 아픈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밀옥
에서 탈출시킬 때는 뚜렷하게 표출되던 상처가 흔적없이 사라
졌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일대여종사(一代女宗師)의 기품이 풍겨 나온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지금 곽사연은 그랬다. 대무당파의 장로와 담소를 나
누던 중인 모양인데 위축된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반여량은 느낌이 달랐다.
영혼의 상처라는 것은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망각
(忘却)이란 것이 있어 잊어 버리고 살 뿐이지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듣게 되면 언제든지 떠오르는 것이 영혼의 상처다.
곽사연은 그러한 상처를 드러냈기에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
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부탁도 승낙했고, 그런 패륜
을 이해했다. 물론 당시에는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
으니까.
곽사연은 무서운 여자다.
동생들에게 고의적으로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
고. 동생들이 움직이도록 끊임없이 부추겼다. 실제로 곽선연이
비수당, 비화당 무인들을 장악할 때 곽사연의 도움이 절대적이
었다,
방법은 이것이었다. 무당파와의 연수.
반여량은 곽사연과 무당파 장로들 간에 흐르는 정신적 교감을
감지했다. 그것은 극히 우호적인 교감이었다. 하루 아침에 일
어난 호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쌓아온 우정. 그녀는 아버지를
암살하려 하기 전부터 무당파와 인연을 맺어온 것이다.
혈단은 모두 죽었다. 동생들이 장악한 세력들과 싸우는 과정에
서. 그리고 그녀는 무당파를 끌어들여 곽가장을 친다. 이렇게
되어서는 곽모천의 죽음은 필연이다.
한동안 반가운 인사들이 오고 갔다.
반여량은 무당파 도사들에게서 또 한가지 특이한 기운을 읽었
다. 이들은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마치 유람
이라도 나온 듯 머릿속에는 긴장이라는 말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수양이 높아서 그런가?
아니다. 그런 정도는 구분할수 있었다.
반여량이 서산에서 수련한 것은 동기감응이었다.
무공으로는 도저히 곽모천의 적수가 안 된다. 그를 이길 방법
은 적의 약점과 내 장점이 만나는 길, 동기감응이었다. 곽모천
은 학구에게 동기감응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분노를 촉발시킬 것이다. 거기에 말려 들
어가면 진다.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곽모천의 투지를 분쇄
시켜야 한다.
뇌력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동기감응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서산의 지령(地靈)
을 흡수하기로 작정했다.
여기에는 큰 난관이 하나 존재했다.
주화입마(走火入魔).
동기감응으로 지령을 흡수하여 외력을 향상시키는 경우는 부작
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부분 간단하지만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는 어려운 수련이었다.
- 최악의 경우 주화입마(走火入魔)가 일어난다.
주화입마는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주화와 입마.
주화는 진기가 순행하지 않고 역행하는 현상으로 하단전에 머
물러야 할 화(火)가 상단전으로 치솟을 때 생긴다. 본시 진기
를 운행할 때는 욕망이나 욕화(慾火)를 버리고 굳센 의념(意
念)으로 무화(無火)를 만들어야 한다. 욕망이나 욕심을 가진
상태에서 진기를 운행하면 화(火)가 상단전으로 치솟거나 이탈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입마(入魔)는 주화(走火)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이다.
주화가 일었을 때, 진기운행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운행하면
화기(火氣)를 품은 진기가 상단전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마(魔)
를 일으키니 이를 입마라 한다.
입마의 경우도 경중(輕重)이 있으니, 진기가 독맥을 따라 상승
하여 풍부혈(風府穴)을 지나는 순간 졸립거나 피곤해진다면 입
마로 보아야 한다. 무화 상태에서 일으킨 진기는 독맥을 따라
흐르면서 점차 식어 풍부혈을 지날 때는 청량한 느낌을 주
니...
태극도해에 기재된 내공심법(內功心法)이었다.
반여량은 지령을 흡수하는 진기운행 방법으로 태극도해를 본격
적으로 응용했다. 사부님이나 남저명은 무화라는 것을 몰랐다.
욕념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기감응을 사용했고, 결국은
미치거나 중풍으로 쓰러졌다.
동기감응과 내공의 접목.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의 접목. 뇌
력과 진기의 일체. 욕심이라면 주화입마를 당할 것이다. 순리
라면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리라.
목숨을 건 수련에서 반여량은 일체(一體)를 얻었다.
수련에 앞서 청량한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명당을 찾은 것이
주효했다.
굳이 동기감응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상
태.
지금의 반여량은 그런 상태였다.
무당파 도인들에게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구월(九月) 일일(一日).
무당파 도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남창부에 들어섰다.
이변은 그때 발생했다.
제일 먼저 밀옥 무인들이 걸어와 무당파 쪽으로 변신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곽사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변은 계속
되었다. 곽가장 분타주들이 문도를 이끌고 합류했다.
이유는 한결같았다.
'곽가장은 영원해야 합니다. 장주가 패륜적인 행위를 저질렀지
만 저희들은 정도를 수호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대공녀를 모시
고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무당파는 이들의 반심(反心)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이 아니라 곽사연 휘하로 재기하는 것
을 인정해 주었다.
"언니가...무서워요."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곽소연이 나직하게 속삭였
다.
'무당 도인들은 싸울 필요가 없었어. 정말 무서운 여자...'
곽사연을 밀옥에 가둔 곽모천. 그러나 곽사연을 그녀의 세력에
게 돌려 보낸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반여량 또한 밀옥에서 그
녀를 구출할 필요가 없었다.
밀옥에서 나오지 않으려 했던 두 사람 조중과 곽사연은 각기
내용이 달랐다. 조중은 세상을 비관하여 자포자기적인 심정으
로 밀옥에서 죽으려 했고, 곽사연은 자신의 세력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무당파 도인들은 읍민(邑民)들의 환호를 받으며 걸어 들어갔
다.
곽가장 대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문도들은 양옆으로 도열해 무당파 도인들을 맞이했다. 검을 밑
으로 내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모두가... 모두가 곽모천에게 동을 돌렸다.
대문을 들어서고 중문을 지날때까지 같은 상황은 계속되었다.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화원.
곽모천은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꽃을 다듬던 중이었다. 그는
화원으로 들어서는 군웅들을 보며 눈에 기광(奇光)을 발산했
다. 약간은 어이없다는 웃음도 띠었다.
"허허허! 그렇군. 내 사람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허허허!"
"장주... 지나치셨습니다."
무문생이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표시했다.
"장주 무당파와는 싸울수 없습니다."
고장탁이 울먹였다.
그들의 배신은 확실히 의외였다. 보름 전만 하더라도 원방파와
손화장에서 살검을 휘두르던 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곽모천을
배신하고 곽사연 쪽으로 돌아섰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모두들 장주의 본색을 안 것이 얼마 전이지 않은가. 그 전까지
는 절대 성인이었다. 하는 일은 모두 정도를 위한 것이었고,
죽인 사람은 무고한 사람을 숱하게 죽인 흑도인들뿐이었다. 그
런데 이게...
그들은 분통한 심정을 억누르고 장주의 명을 들었다. 원방파와
손화장은 어차피 멸겁을 피하지 못한다. 그들은 억장이 무너지
는 심정을 추스르고 살검을 휘둘렀다. 오늘을 대비해서.
"허허허! 나는 말일세."
곽모천은 전도(剪刀)로 썩은 국화가지를 잘라냈다.
"항상 만일을 대비하는 사람일세. 허허허! 자네들은 원방파와
손화장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는
가? 허허허!"
곽모천은 과연 악마인가? 그는 마지막까지 깊은 심계를 펼쳤
다.
"혈영일검, 데려 나오시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원 한가운데 위치한 전각문이 열리며
혈영일검이 나타났다. 그는 검을 들었고, 검 끝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다.
"한... 한!"
반여량은 거센 충격에 손을 잘게 떨었다.
"허허허! 전에 말했을 텐데. 아들 잃은 충격과 비등한 충격을
받은 다음에야 죽이겠다고. 허허허!"
곽소연에게는 아버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허전함과 상실감을 가눌 길이 없었다. 입술은 하얘지
고 고개는 밑으로 떨궈졌다.
한한에 대한 그의 감정은 죽지 않았단 말인가. 깊고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 소멸되었다 여겼는데 아직까지 살아 숨쉰단 말인
가.
"이하극륜! 시작하지."
아버지가 무슨 말인가 한 것 같았다.
"헛!"
누군가 헛바람을 토해냈다.
무슨 일일까? 곽소연은 이미 관심밖으로 멀어져버린 장내 상황
을 알아보기 위해 들리지 않는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쐐에엑...!
지복(地覆), 땅이 뒤집혀지며 한 인형이 튀어 나왔다. 그의 신
법은 무척 쾌속했고, 곽소연과는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그리
고 검날은 날카로웠다.
"타앗!"
바로 곁에 있던 무당파 장로 녹양(綠陽) 진인(眞人)이 번개같
이 검을 뽑아 태극혜검(太極慧劍)을 출수했다.
까앙!
날카로운 검명(劍鳴)이 울려 나왔다. 그것도 일순, 곽소연을
노리고 지쳐든 검날은 곽소연의 어깨를 찔러 버렸다.
"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하극륜은 무당 장로를 일검에 물리치고 곽소연을 제압해버렸
다. 그리고 곽소연의 목에 검을 들이대 군웅들을 위협한 다음,
천천히 곽모천 쪽으로 걸어갔다.
놀랄 만한 무공이었다. 곽가장의 무공이 구파일방에 비해 조금
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검으로 증명한 것이다. 물론 급
습이었다.
하지만 이하극륜이나 녹양진인 같은 고수에게는 급습이란 말이
용납되지 않았다. 녹양진인은 밀렸다.
"이하극륜, 당장 풀어 주지 않으면... 죽인다!"
반여량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어쩌면 가장 먼저 손을 썼어야 할 사람은 반여량이었다. 하지
만 한한에게 정신이 팔려 이하극륜이 지둔술(地遁術)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정신이 한한에게로 집중되자
동기감응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허허허! 이것도 전에 말했는데? 네 아내를 죽이겠다고."
"반여량! 반공, 저 좀... 저 좀 구해 주세요. 이 사람들이 남
편을, 아니 그 자식을 죽여 버렸어요. 저도 죽일 거예요. 제발
저 좀 구해 주세요. 그러며 다시는 떠나지 않을게요. 반공 옆
에서 평생 수발을 들어드릴게요."
곽모천과 한한의 말이 동시에 튀어 나왔다.
한한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
을 해도 아름다웠다. 배운 것이 없고 사치가 심해 눈살을 찌푸
리게 만들지만 그래도 그녀가 하는 행동이기에 모든 사람이 이
해했다. 지금도 그랬다. 뻔뻔스런 말이지만 애처롭게 울먹이며
토해 내는 절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저미게 만들었
다.
"허허허! 이거 재미있군. 옛연인과 아내라... 허허! 좋아, 좋
아. 선심을 베풀지. 반여량 두 여자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라.
살려주지. 단, 죽어가는 여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 봐라. 이
게 조건이야. 허허!"
"미친놈...!"
"셋을 세겠다. 하나!"
한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면에 곽소연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둘!"
반여량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하극륜과 혈영일검은 전력을 다
해야 할 상대였다. 그런 자가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는데 어떻
게 움직인단 말인가.
"셋!"
"소연!"
셋이라는 소리가 터지자마자 곽소연을 부르는 절박한 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상... 공..."
곽소연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졌다. 그러나 입가에는 행복한 미
소가 어른거렸다. 그녀는 사랑을 얻었다. 그녀의 순수한 마음
은 어떤 미모보다도 강한 무기였다.
"개새끼... 사랑을 구걸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한한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허허! 아내인가? 나 같으면 한한이라는 여자를 택하겠는데.
물론 우리 사랑스런 딸아이도 예쁘지만 저 여자에 비하면 반딧
불 아닌가? 그런데 말야. 자식을 잃은 심정과 비슷한 아픔을
느끼려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야 되겠지?"
곽모천은 이하극륜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쉬익!
날카로운 검풍이 곽소연의 목젖을 베고 지나갔다}.
"컥!"
"소연!"
반여량은 한달음에 달려가 꽃밭 속에 몸을 뉘는 소연의 동체를
부둥켜안았다.
"커... 컥...!"
곽소연은 반여량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도
행복한 눈물이 아롱거렸다.
"소, 소연 미안하다. 미안하다. 소연."
"해... 행... 복... 컥!"
곽소연의 고개가 푹 꺾였다.
"소연!"
처절한 울음소리는 군웅들의 마음까지 적셔 들었다.
이미 화원은 무수한 꽃망울들이 검풍에 휘말려 생명을 잃는 중
이었다. 곽모천의 잔인한 행동에 분노한 군웅들이 한한이 인질
로 잡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아악!"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은 한한이었다.
혈영일검을 죽음을 각오한 듯 한한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고 무
당장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하극륜은 검을 버리고 성명병
기 날륜을 꺼내 들었다. 그가 상대하는 사람은 역시 무당 장로
와 조중.
곽모천은 싸우지 않았다. 그는 태연히 전도를 들어 또 한 개의
썩은 가지를 잘라 냈다. 군웅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지만 감히
덤벼드는 사람이 없었다.
"죽인닷!"
하늘을 향해 통곡을 터뜨린 반여량은 단숨에 이하극륜을 향해
날아갔다.
쉬익, 쒜에엑...!
막 조중의 목봉을 흘려 보내고 날륜을 쳐내려던 이하극륜은 등
뒤에서 들리는 섬뜩한 파공음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흐흐흐! 네 놈이 건방... 컥!"
날륜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손이 굳어 버렸다. 이런 일은 육
십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처음이었다. 그리고 실같이 가느다란
금빛 줄이 목젖을 훑고 지나갔다. 곽소연을 죽였던 상처와 똑
같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반여량은 쓰러지는 이하극륜을 발로 차 넘어트린 후 곽모천을
향해 신형을 띄웠다.
"삼혼(三魂)! 아무리 동기감응 감여가라 하지만 삼혼을 깨달았
다니! 놀라운 놈!"
곽모천은 더 이상 태연하지 못했다.
그는 장검을 뽑아 들고 마주쳐 갔다.
"헛! 저건 투월채법!"
호소봉왕 가심은 깜짝놀랐다.
자신의 절기가 반여량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위력은
천양지차였다. 놀라운 무공을 선보이던 이하극륜을 단 일검에
격살하고, 장주 곽모천과도 비등한 결투를 벌이고 있으니.
고오오오...!
곽모천은 상단전을 열어 뇌력을 쏘아 냈다. 그가 펼치는 감응
은 상대의 분노를 격발시키는 것. 흥분한 상대는 허점을 드러
내고, 그런 상대라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
파르르르...!
반여량도 인당을 열었다.
그는 상대의 투지를 말살시켰다.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
공이 아닌 뇌력에 약간의 차이라도 있다면 거미줄에 걸린 사람
처럼 움직이지 못하리라.
곽모천은 움직이지 못했다.
"커억!"
언제나 여유가 많던 장주, 그러나 죽음만은 여유있게 받아들이
지 못했다.
무당 장로 두 명, 조중, 곽사연, 곽소연...
무수한 군웅들의 협공 속에 혈영일검은 난도분시(亂刀分屍) 당
하고 말았다.
곽가장은 정명검파(正明劍派)로 개문(開門)했다.
문파가 존속하는 한 죽어간 영령들을 잊지 않고, 정도무림을
위해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초대문주로는 곽사연이 올랐고, 무당 도인들은 개문식까지 지
켜본 후 돌아갔다.
무당파 도인들을 이끌었던 녹어(綠 ) 진인(眞人)은 놀라운 사
실을 공표했다.
곽모천이 제일 처음으로 아내 남의봉과 교접을 시킨 사내가 무
당파 속가제자(俗家弟子)인 유성비도(流星飛刀) 학사( 四)라
고 밝혔다. 진인은 증거로 학사의 독문병기인 비도 아홉 자루
를 제시했다.
무당파 제자들은 태극(太極) 문양을 병기에 새겨 다녔고, 비도
에도 분명히 태극 문양이 있었다.
재질은 곤오철(崑烏鐵).
창병가의 후인인 동목이 감정한 결과 확실히 무당파에서 제조
한 비도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곽사연의 이름은 학사연이 되었다.
무당파와 학사연이 왜 밀접한 관계를 가졌는지 충분히 이해되
었다.
* * *
- 애처(愛妻) 곽소연(郭素娟) 지묘(之墓).
반여량은 곽소연의 시신을 무공수련에 몰두하던 서산 혈처에
안장했다.
학사연은 한사코 가족장(假足葬)을 말했다.
반여량은 듣지 않았다. 숱한 나날을 같이 보냈지만 살 한 번
섞어보지 않은 아내. 한한이 마음에 걸렸다. 곽소연과 살을 섞
으면 한한에게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야 알았다. 자신이 얼마나 곽소연을 사랑하고 있었는
지.
"허허! 좋은 자리에 묻혔으니 행복할 걸세. 그만 내려가세."
산귀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원방파가 받은 타격은 컸다. 가장 소중한 보물인 후지(後紙)가
모두 불타 버렸고, 감여에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하지만 강서성 전역에는 아직도 구천여 명에 이르는 감여가들
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모두 남창부로 몰려 왔고, 불타버린 원방파 총단을 재
건하는 중이었다.
"그래요. 소연이는 행복을 안고 갔어요. 저승에서도... 흑!"
곽선연은 반여량을 달래 준다는 것이 스스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러움이 치받아 올랐기에.
"아직 죽일 사람이 한사람 더 남았습니다."
무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도 죽일
사람이 남아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반여량은 사검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쉬이익...!
깊은 밤을 뚫고 인형 하나가 비조처럼 날아올랐다.
인형은 부지런히 신법을 놀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곽가장 뒤
에 움츠리고 앉아 있는 가산이었다.
가산에 이른 인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산중턱을 향해 치달
렸다.
인형이 가는 최종 목적지는 탈명화검의 시신이 누워 있던 연공
실, 교교가 모진 고문을 당한 연공실이었다.
동혈에 다다른 인형은 지리를 잘 아는지 날렵하게 움직여 안으
로 파고들었다.
연공실은 조용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숨소리 한 올 들려오지 않았다.
인형은 품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 순간,
화아악!
어둠 한구석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엇! 너는!"
"그렇습니다. 처형. 반여량입니다."
인형은 곽사연이었다. 그리고 동혈에서 기다린 사람은 반여량
이었다. 반여량은 혼자가 아니었다. 조중, 곽선연, 동목, 호소
봉왕, 거동이 불편하거나 무공이 약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였다.
곽사연은 동혈 입구를 흘낏 쳐다보았지만 조중이 가로막아선
것을 보고는 오히려 차분해진 듯했다.
"언니...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닥Ф! 누가 네 언니야!"
곽사연의 일갈은 매서웠다.
"그럼 여기는 왜 왔소?"
조중은 마음이 무척 답답한지 긴 한숨을 불어 쉬며 말했다.
"호호호! 내 문파야. 내가 문주야. 문주가 제 문파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나?"
"언니, 사실대로 말해 줘. 제발..."
"..."
곽사연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았
다.
"처형, 나는 장인을 닮을 작정이오. 철저한 무정."
반여량은 사검을 끌어 냈다.
"사람에게는 아픔이란 것이 있소. 아픔은 영혼에 각인 되지.
얼마전에야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았소. 양심의 가책도 영혼에
각인된다는 사실을.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슬픔과 달라서 원인
이 제거되면 영혼에서도 제거되지. 첫 번째 처형을 봤을 때는
무척 슬펐는데, 얼마 전에는 위풍당당했소."
"호호! 또 동기감응인가? 지겹군."
"나도 지겹소. 하지만 그 동기감응으로 장인을 죽인 패륜아가
되고 말았소."
곽사연의 신형이 바르르 떨렸다.
호소봉왕이 말했다.
"장주는 성불구자가 아니에요. 일부러 회음혈을 잘라 버려 양
물이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었죠. 당시에는 너무 겁에 질려 깨
닫지 못했는데..."
"어... 어떻게 알았느냐?"
곽사연은 부들부들 떠는 몸만큼 음성도 떨려 나왔다.
"장주의 시신을 내가 직접 염했으니까. 이상했소. 장주는 검에
맞으면서 오히려 평안을 찾은 듯했소. 후훗! 동기감응 감여가
가 나쁜 점은 죽는 상대의 감정까지도 읽을 수 있다는 거지.
지금에 와서는."
"..."
"장주를 염하면서 회음혈에 난 상처를 봤소. 의문이 두 번째
일어나던 순간이었지."
"호호호! 역시 네 놈이 변수였어. 호호호!"
곽사연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일행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
려주는 신호였다.
"언니!"
곽선연은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소리를 빽 지르고는 혼절하
고 말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서.
- 회한(悔恨).
안철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든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안철주로 인해 감여계가 시끄러울 때, 나는 안철주를 찾아가
무공을 연마하기에 적합한 지형을 선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
는 동기감응을 믿었고, 부탁 또한 간절했다.
외톨이가 되어 버린 안철주는 나의 정성에 감복하여 남가일족
이 사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동기감응 감여가끼리는 서로 교
감이 통하는 법. 명당을 찾아 산을 뒤지다 우연히 찾아온 감응
에 이끌려 한 마을에 들어갔다가 남가일족을 만난 것이다.
'남가일족은 감응으로 살 터전을 찾는 사람들. 그들이 머문 곳
이 바로 정기(精氣)가 가장 맑은 땅이오.'
나는 당장 남가일족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한 귀퉁이에서 무공수련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남가
일족의 애환(哀歡)을 듣게 되었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감응으로 무공수련을 도와 달라. 그러면 곽가장의 재력으로 가
장 편안한, 떠돌지 않아도 될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겠다.
남가일족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무공을 새롭게 탄생시켰
다.
감응이 가미된 무공, 삼혼검법이었다.
나는 장으로 돌아와 일부 흑도인을 상대로 무공을 시험해 보았
다. 결과는 뛰어났다. 그 누구하고도 승부를 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럴 즈음, 기다리다 지친 남가일족은 사람을 보내 왔다. 빨리
약속을 지켜 달라는 전갈을 가지고.
약속은 지켜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무공을 지닌 사람
이 또 나타난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게다가 당시 나는 명문세
가가 지닌 이점에 눌려 실력이 있으면서도 문도를 확충하지 못
하는 실정이었다.
나는 무골(無骨)이 탁월한 문도 다섯 명을 선발해 삼혼검법을
전수했다. 동시에 앞으로 곽가장을 이끌 무인과 없어도 상관없
을 무인을 분류했다.
혈조수의 시작은 미미했다. 그러나 흑도인들이 가입하면서부터
는 들불 타오르듯 성장해 곽가장보다도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
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이었다.
옥순산 전투가 벌어지고, 계획한 대로 남가일족은 몰살했다.
곽가장은 강서성 명문으로 발돋움했고, 문도수는 하루가 다르
게 늘었다.
일석이조의 계가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대의 위명이 너무 알려져, 무당파가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
다. 강서성 전 문파가 정대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던 시기였으
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당파는 처음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정대의 탄생부터 옥순산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당시 무당파에 잠입해 있던 정대원은 놀랄 만한 사실을 보고해
왔다.
무당파가 옥순산 전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
고 영원히 덮어질 줄 알았던 비밀이 속속 밝혀졌다. 가만히 앉
아 있다가는 꼼짝없이 당할 찰나였다.
나는 혈조수의 세력, 혈단을 지속시키기로 결정했다. 무당파의
이목을 돌려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속셈이었다. 옥순산 전투에
서 살아남은 다섯 명 중 두 명이 바로 은거한 동기이기도 했
다.
혈단도 문제였다. 살인에 맛을 들린 혈단 문도들은 점점 마성
(魔性) 젖어 들었다. 그들은 풀어줄 수 없었다. 살인귀(殺人
鬼)... 살인귀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그들은 죽음과 익숙
해졌다.
무엇보다 당시의 오정검사는 혈단 폐쇄를 반대했고, 그들이 반
심(反心)을 품을 경우 나는 제지할 힘이 없었다. 혈단은 곽가
장보다 더욱 힘이 커진 것이다.
신무귀부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강남무림을 일통하려는 야욕이 아니라, 혈단을 제어하기 위해
서.
진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할 수는 없었다. 당시, 신무귀부 또한
다른 삼정검사와 마찬가지로 강남무림을 일통하려는 생각에 흠
뻑 젖어 있었으니까. 대왕부와 연환궁을 달라는 이유로 그를
고립시켰다. 혈단에 그런 기병까지 들어가면 그야말로 호랑이
가 날개를 다는 격. 나는 강서성 패자로 만족하지 않고 강남무
림을 일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혈단 양성에 삼정검사 전원을 투입했다. 창피하게도 그러지 않
고 그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만일의 경우, 딸자식들만이라도 살릴 각오로 모종의 결심
을 했다. 음갈마희 초초를 납치하여 자식을 낳는다는 생각이었
다. 물론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 나는 음갈마희와 관계를 가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탈명화검이 내 역할을 대신했다. 곽
혼, 그는 탈명화검의 자식이다. 나와 탈명화검만이 아는 비밀.
삼정검사들 조차도 혼이를 내 자식으로 알고 있으니.
혈단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무당파는 혈단의 꼬리를 잡았고, 곽가장을 의심하던 마음이 사
라졌다. 무당 도인들은 혈조수의 후인이 살아 남았다는 생각에
곽가장으로 전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너무 급작스런 팽창이 무당파의 주목을 끌었다.
무당파는 다시 잠잠해졌다. 암암리에 조사를 시작했다는 증거
였다. 각지에 흩어진 정대원들로부터 무당도인을 봤다는 전서
가 부리나케 날아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만약에 모든 사실이 발각된다면.
나는 사연이를 불러 조근조근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친아비가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 주라고 일렀다.
사연이는 미쳐야 한다. 그 아이는 밀옥에 갇힐 것이고, 사십칠
개 곽가장 분타를 안전하게 인수받으리라. 요연이에게는 신계
각을 주었다. 선연이에게는 사당을, 무연이에게는 일심각을.
막내, 소연이는 무공을 싫어하기에 제조각을 줄 생각이었다.
만일의 경우 죽는 것은 나와 혈단이면 족하리라.
골육상쟁의 시작은 딸을 위하는 마음이었다.
자식들에게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본인 스스로 택하게 한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친아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이겨 내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겠기
에.
하지만 아이들은 내 핏줄을 이어받아 야망을 불태웠다. 본인
스스로 어느 정도 힘을 장악했다고 생각한 딸들은 엉뚱한 생각
을 하고 말았다. 곽가장을 고스란히 가지겠다는.
무당파 도인들은 코가 예민한 엽견처럼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
그리고 구궁산을 찾아냈다. 남가일족이 끝내 문제였다. 남저명
이 구궁산 동혈 속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
랴. 혼이는 정신이 들락날락했다.
무인이 많이 실종된다는 소문이 퍼진 이상 무당파 도인이 찾아
가는 것은 당연했다. 급히 탈명화검을 급파했다. 이것이 터지
기 시작한 상처를 절단내 버릴 줄이야.
혼이는 탈명화검의 자식이다. 핏줄이 당기는 것은 정해진 이치
가 아닌가. 더군다나 혼이는 음기가 강한 터에 남저명의 농간
으로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상태. 탈명화검만이 혼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으리라.
다른 무인들은 상관없다. 그들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으니
까.
예측대로 혼이는 탈명화검의 기운을 쫓아 동혈을 나왔다. 그러
나 때마침 발작한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친아비 탈명화검을 죽
여 버렸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무당도인에게 고스란히 보이고
말았다.
도인도 죽었다. 혼이의 광란에 의해. 드디어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다.
무당파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
다. 나는 선수를 쳤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죽을 때가. 하
지만 효과적으로 죽어야 한다.
먼저 혈단을 깨끗이 죽여야 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그 강한
혈단을 죽인단 말인가. 자진(自盡)?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
약 그런 명령을 내린다면 힘이 강해진 혈단은 나의 통제 밖으
로 벗어난다.
일계(一計)를 시작했다.
비수당과 일심각을 희생양으로 삼는 계획. 혈단이 한 번에 달
려든다면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만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공
격했다. 비수당과 일심각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이때였다.
무당파 도인이 혈단 무인 한 명을 나포하여 모든 비밀을 알아
낸 것이다. 그런 일을 대비하여 혀를 자르고, 글을 익히지 못
하게 했건만 무당파 도인들 중 구화술(口話術)에 능통한 자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살을 도려내는 이계(二計)를 시작했다.
혈단을 공식화하고 자식들과 싸워야 한다. 이겨서는 안 된다.
죽어줘야 한다. 싸움이 시작된 이상 씨가 다르다고 생각한 여
식들은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자매간
에도.
나는 무공이 가장 강한 사연이를 남기기로 했다. 그녀는 삼혼
검법의 진정한 오의를 깨달은 일대기재였다. 사연이가 남는다
면 강서성 패주쯤은 무난히 지켜낼 것이다. 악마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뭇무인들에게 끝없이 추적을 당하는 것보
다는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계대, 인대, 비대는 남겨 두었다. 그들은 사연이를 도와 곽가
장을 부흥시키리라.
회음혈을 갈라 양물이 일어서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호소봉
왕을 불러 관계를 가지려 했다. 그녀는 희생자다. 평생 나를
저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내가 성불
구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줄 여인이니까. 거기에 요와까지
가세하여 모든 계획이 완벽해졌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면 산귀. 산귀 총수는 사연이의 출생을 알고 있다. 자식을 얻
은 기쁨에 제일 먼저 산귀를 불러 사주(四柱)를 보게 했으니
까. 산귀를 죽였어야 하는데.
힘들었다. 자식들은 너무 허약했다. 약한 자에게 죽어 준다는
것. 허허! 그것처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며칠 후면 무당파 도인들이 공격할 것이다.
회한은 끝났다.
내 자식을... 내 자식을 내가 죽였다.
요연이, 무연이...
자식을 죽인 아비가 무슨 말을 남기랴.
사연이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남긴다. 너를 무당파와 연결시켰
던 고리는 무당파 속가제자인 유성비도 학사가 네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그 증거를 위하여 집무실에 있는 밀실 속에 비도 아
홉 자루를 남긴다.
조중, 잘해 주었다. 녀석 덕분에 선연이가 살았다.
반여량, 그놈도 잘해 줘야 할 텐데. 진실을 모르는 이하극륜은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고, 나는 끝까지 잔인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 무당파 장로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피에 절은 자들은 모두 내가 데리고 간다. 모두...
장주가 남긴 긴 서신은 끝났다.
장주는 자신이 지은 죄를 통한으로 갚았지. 그러나 삼정검사
는...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
"아버지!"
곽선연이 통곡을 터뜨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