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개봉즈음에 보지 못하면 잘 챙겨보지 않게 되는 제 습성(?)상 못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오래된 친구와 연락하다가 같이 보게 되었네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로 치자면 몹시 후진 이 영화는 리차드 캘리의 대표작 도니 다코처럼 불균질하지만 매력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죠. 저는 그것이 민규동과 김태용의 장점이 겹쳐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후 두 사람이 각기 길을 가며 만든 영화들은 만듦새로서의 커다란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저에게 주는 인상은
데뷔작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죠. 아마 둘이 다시 공작을 해도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영화는 못만든 점까지 매력적인 희안한 영화였으니까요.
아무튼 민규동 감독은 이후 여고괴담보다 훨씬 대중적인 이야기들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내 생애... 처럼 짝퉁 기획영화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차 후 이어지는 일관된 방향으로 취향으로 인정을 받는 분위기지요.
그의 취향은 다분히 세속적이었습니다. 그건 절대 나쁜 게 아니죠.
이야기의 세속성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흥행이 아쉽긴 합니다만 근작들을 보면 확실히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뭐, 사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어진 커플이 있어요. 적당한 연애기간을 걸쳐 결혼에 골인했는데
7년차가 되면서 남편은 아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소문난 바람둥이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기묘한 부탁까지 하게 되지요.
뭐, 그 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뻔합니다.
이 영화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건 모든 상황이나 캐릭터들이 들 떠 있기 때문이죠.
연출도 굉장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어서 초반엔 이 영화의 정서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을 거에요.
앤티크를 안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유추되기론 민규동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코미디 장르문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설의 바람둥이에게 아내를 유혹시키다. 라는 소재를 풀어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이 영화는 코미디를 선택한거죠.
초지일관 모든 사람들이 커피를 스무 잔 정도 마신 사람 처럼 구는 이 영화는 초반의 우려보다 훨씬 사람들을 잘 웃기는데,
그건 영화가 초지일관 유지하는 톤이 어느정도 관객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단 의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류승룡이 연기한 카사노바 캐릭터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징그러우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진심어린 캐릭터입니다.
초반 과장된 카사노바의 클리셰를 보면 그냥 개콘 같지만 후반부 그를 보며 '반할 만 하다'라고 수긍하게 만드는 건
류승룡의 힘이죠. 저보다 어른에게 쉽게 쓸 말은 아니지만, 정말 귀여웠어요.
후반부에 갈등이 고조되면서(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그 갈등입니다.) 영화는 살짝 장르가 바뀝니다.
진지해지기 시작하는거죠. 이 과정이 어설펐다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망작이 됐을텐데
민규동감독의 섬세한 감수성이 초반부터 눈처럼 살포시 쌓였기에 그 위에 남기는 발자국은 충분히 가슴에 남기에 충분합니다.
모든 사람이 웃기다가 모든 사람이 울보가 되는 이런 진행은 사실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신파만큼 설득력을 가진 방법도 없잖아요? 이 기묘한 삼각관계의 사람들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만한
보편적인 아픔들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탁월한 민규동감독의 영화적 언어 사용과, 낭만적인 대사들이 입혀지면서
충분히 대중적인 파괴력을 가지는거죠.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해석이라던가,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회의, 고찰 등
의미에 대한 성취에 대해선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구요. 적당히 흥미로운 상황 안에서 달콤하게 마무리되는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통속극이 목표인거죠. 당연히 충분히 흐름에 따라 등장할 만한 (치명적인) 바람의 현장이나
현실적인 결말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테두리 안에서 곱게 포장된 박스 안에 놓여있어요.
결말은 따분한 수준이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이 장르, 민규동 감독이 가진 방향성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거니까요.
한마디로 조폭 코미디를 보기엔 고급취향인 대중들을 위한 스타벅스 커피같은 영화입니다.
기분 나빠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표현엔 악의가 전혀 담겨있지 않아요. 저도 밥 값 아껴서 아메리카노 먹거든요.
사실 미녀는 괴로워나 국가대표, 우생순 급 흥행은 해야 하는 영화라고 봐요.
-전혀 딴 얘기 - 임수정... 아아... 임수정의 벗은 몸을 보며 어느 남자가 이혼하자고 할 수 있습니까? 제 정신입니까?
- 김밥장면에선 정말 간만에 빵 터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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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님이 신파를 몇 년 더 파면 거의 장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양반처럼 영화 언어를 잘 쓰는 한국 감독도 드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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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정말 잘 쓰죠. 일본어로 나오는 그 대사는 정말 오금이 저리더군요.
모 소설가가 떠오르는 문체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듀나 말씀이신가요? ㅎ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네 듀나가 떠올랐었어요.ㅎㅎ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라 대박 흥행해서 기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