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번째 편지 - 검찰 정권은 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데 실패하고 있는가?
지난주 대학 선배인 연수원 동기 변호사가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조 변호사, 시절이 하수상한데 우리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을 월요편지로 써주면 어떨까요?' 저는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월요편지가 정치평론의 장으로 바뀌는 것도 원치 않고, 그것으로 인해 독자의 절반이 저를 욕하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차례 카톡만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검사들이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왜 이리 총선에서 비참한 패배를 하고 말았을까? 무엇이 잘못된 일일까?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혼자 넋두리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은 원래 국민의 사랑을 받는데 서툰 조직입니다. 제가 검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사랑>이란 단어가 검찰총장의 업무 방침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검찰>.
그 사랑을 받기 위해 검찰 본연의 업무와 전혀 관계도 없는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같은 것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여전히 바닥권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국민이 검찰에 대해 환호할 때는 검찰이 사랑받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순간이 아니라 검찰이 자신의 업무를 잘할 때였습니다. 5공 비리 수사, 대선자금 수사, 국정 농단 수사 등 그런 대형 비리 사건을 잘 처리할 때 국민은 검찰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즉, 검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수사만 잘하면 되었습니다. 수사를 잘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수사를 잘하면 정치를 잘하는 것일까요?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무렵, 어느 원로 정치인이 윤 대통령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검사와 정치인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윤 대통령이 머뭇거리자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검사는 공감 능력이 없어도 되지만, 정치인은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공감 능력을 기르셔야 합니다." 지금의 정치 형국을 보면 그 공감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총선 전략을 놓고 끝나고 나니 말들이 많습니다.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조심판(이재명과 조국 심판)만 이야기했다고 말입니다.
근데 검사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남의 잘못을 찾아 단죄하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검사는 항상 타인의 과거에 시선이 가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면 '목이 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검사가 미래를 꿈꾸려면 뒤로 굳어져 있던 '목을 앞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 목은 쉽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잘못 돌리다가는 목을 다칠 지도 모릅니다. 제가 검찰에서 혁신추진단장이 되어 미래를 이야기할 때 다른 뜬금없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검사가 누군가의 과거 잘못을 이야기할 때는 신바람이나고 말이 술술 나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남의 쓴 원고를 읽는 것처럼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들이 검사라는 존재들입니다.
검사는 무채색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장관께서 취임을 하고 검사들에게 끈이 있는 검정 구두만 신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검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에 검정과 흰색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범죄자와 피해자로 세상을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빨간, 파란, 노란 등 아름다운 색깔이 많습니다. 한 사람을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어느 부분은 검은색이지만 다른 부분은 빨간색도 노란색도 있을 것입니다. 검사들은, 아니 저는 오랫동안 그것을 몰랐습니다.
검사들은 보수적일까요? 진보적일까요? 검사는 검찰 조직을 운영할 때는 지극히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혁신이나 미래에 대해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수사를 할 때는 보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수는 국가와 사회의 잘못을 보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집단입니다. 진보는 국가와 사회의 잘못을 보면 <축적된 이론>을 바탕으로 급진적으로 혁신하려는 집단입니다.
검사들은 타인의 잘못을 집요하게 찾아내 그 잘못을 단죄하는 집단입니다. 단죄보다 급진적인 혁신은 없습니다. 처벌을 통해 사람이나 조직은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검사들은 백지 위에 수사 대상을 올려놓고 모순과 잘못을 낱낱이 찾아내 수사를 할 때는 혁명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검찰은 타인에 대해 진보적이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검사는 보수, 진보에 관계없이 그 집단의 잘못을 찾아내는데 능수능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진보정권과 충돌하고, 보수정권의 구성원들과도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사는 수사를 오래 하면 자신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검사는 전혀 모르던 분야를 수개월간 수사해서 그 분야의 모순과 잘못도 찾아내 관계자들을 구속까지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느 분야의 잘못을 찾는 능력과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 능력은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간혹 이를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축구 명해설자나 야구 명해설자가 감독이 되어 고전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맥킨지나 보스턴 컨설팅 등의 유명 컨설턴트들이 대기업 CEO가 되어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오히려 실패한 사례가 더 많습니다.
컨설턴트가 CEO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컨설팅할 때의 성공 방정식과 다른 방정식을 찾아야 합니다. 검사는 컨설턴트가 컨설팅을 통해 기업을 이해하듯, 정치인 수사를 통해 정치를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200년쯤 후, 그때도 검찰 조직이 존속해 있다면, 검찰 후배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200년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5년간 이끈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실패해 대한민국은 후퇴하였다고 이야기할지, 아니면 처음 2년간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지만, 남은 3년 동안 심기일전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이야기할까요.
그것은 오로지 지금부터 정권에 담당하고 있는 검사 집단의 할 탓입니다. 어떻게 하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것은 많은 정치평론가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기왕에 이야기하는 김에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첫째,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집단은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전문가입니다. 그 실력으로 시선만 돌려 자신을 바라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둘째, 기업 역사상 컨설턴트 출신이 기업의 CEO가 되어 성공한 사례를 분석하고 그들은 어떻게 성공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이 성공 방정식을 연구한다면 자기 객관화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남은 3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검찰 후배들이 이끄는 정권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해 주기를 선배 검찰인의 한 사람으로, 아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넋두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제 생각이 여러분 생각과 다르더라도 검사를 30년 한 사람의 간절한 안타까움이라고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4.22.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공감능력을 발휘 한다면 성공한 정부로 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