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30. 목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해산의 고통을 감수하는 리더!" 갈라디아서 4장
엊그제는 내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도가 응답된 어떤 자매의 글을 내 묵상에 공유했다.
오늘 글은 기도한 대로 응답은 받지 못했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의 믿음이 자라난 것에 대한 간증의 글이 어제 나에게 왔기에 공유한다.
***
할렐루야~ 임은미 목사님!
목사님께서 들으면 기뻐하실 내용인 듯하여 나눕니다.
좋은 소식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변하거나 해결된 것이 없어
마음 한켠에 있던 중에
계속 감사를 나누자는 감동이 있어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일을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생략)
그때 목사님께서 제게 대언기도로 주신 것은 큰 위로가 되었고 그중 가장 와닿았던 말씀은 제게 믿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어나는 일들이 마냥 우리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면, 이 고난과 시련을 통해 나를 제련하시는 것이라면, 내가 변해야 한다면,
이 시련을 통해 정말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는 죽고 예수만 사는 삶,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 얼른 온전히 순종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덕에
이런 일들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전에 주님께서 나를 제련하시는 과정이고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원하시는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안에 믿음(신뢰), 소망, 사랑에 대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낙담 될 때마다 다시금 후퇴했다 회복됐다 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도 일시적인 것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머리로만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그 사랑이 느껴지게 해주심이 감사하고 나는 아직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사랑을 닮아가고 있구나,
주님을 꼭 빼닮은 딸로 나를 만드시겠구나 하는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제 안에 생겼습니다.
***
우리말성경 갈라디아서 4장
19. 내 자녀들이여,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다시 여러분을 해산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내 자녀들”이라고 부른다.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예수 믿게 했기에
그는 그들을 영적으로 낳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나는 다시 너희를 해산하는 고통을 겪는다”라고 말한다.
이미 한 번 낳았는데
왜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고 말할까?
그 이유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그분의 성품이 삶 속에 드러나는 것,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는 여전히 과정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해산은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진통이 시작되면
왔다가 멈추고
다시 오고
점점 강도가 세지고
마침내 견딜 수 없는 순간을 지나
생명이 나온다.
어떤 경우에는
유도분만을 하기도 하고
조산으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해산이다.
영적인 것도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려 하기도 하고
연약함 속에 머물기도 한다.
그때 누군가는
그 사람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기도로 붙들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다리고
참아내고
포기하지 않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과연
한 사람을 위해 이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 말씀 앞에서
나의 사역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한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함께 아파하는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가?
기도로 붙들고 있는가?
말씀으로
했던 말이라도 또 하고 또 하면서
권면을 계속하는가?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새삼 바울 사도가 참 존경스러워지는 성경 말씀이네요.
저는 가끔은 바울 사도를 닮았다고 말했는데 오늘 바울 사도의 고백 앞에는
아.. 난.. 아직도 정말 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믿음의 지체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사
기도는 한다 해도
그리고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사랑의 제스츄어는 보여 줄 수 있다고 해도
"해산의 고통을 하고
다시 한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는 없네요.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자신이라서 애통해하는 마음도 사실 없습니다.
저는 나 하나 일단 잘해야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각자 알아서 잘해야지!! 이런 생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사람들이 "믿음의 진보"가 없으면 아예 만날 생각도 제가 안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해산의 고통"은 그야말로 환상 같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음.. 주님
어쩌면 바울 사도는 여자가 아니라서 정말 "해산의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앗! 주님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변명이 많네요. ㅎㅎ
못 하면 못 한다.. 잘하게 해주십사 기도하는 것이 바울 사도가 해산의 고통을 아네, 모르네, 이렇게 묻는 것보다
더 주님이 기뻐하실 기도문 같습니다.
바울 오라버니!
"넘사벽"이세요!!
주님 오늘은
많이 지쳐 있는 어느 사역자를 만나러 갑니다.
나보다 더 시간이 없는 것 같아 그분 교회 근처로 갑니다.
사람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말씀을 묵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이구나... 하는 것이 저의 답입니다.
주님이 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바울 사도가 표현하는 "해산의 수고"를 생각한다면 오늘 저의 사역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조금 육체가 피곤할 뿐입니다.
오늘은 아침에 "양천 11교구" 설교가 있습니다.
설교에 주님 기름 부음을 더하여 주시고
이후 상담 사역에도 주님의 충만한 지혜를 간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4. 30.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저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냐면 사람이
넘어졌을 때 그 사람을
일으켜 주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리고 넘어지려고
넘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굳건히 잘 서서 사역도
잘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잘 살아가고 그렇게
튼튼하게 잘 서 있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일찌감치 도와주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힘주는 것도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오늘
넘어져 있는 사람인가요?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을 꼭 만나기를
그대는 지금 비틀비틀
넘어지고 싶어 하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자리에 있나요?
그대를 건강하고 딱 잘
견고하게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는 오늘 튼튼하고
건강하고 힘이 있고
남들을 도와주는 사람인가요?
절대로 넘어지지 않도록
꼭 그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