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이 전공을 세워 큰 상을 받자 모두 축하하는 와중에 입이 댓발 나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뛰어나와 공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자룡만 이뻐하고 나는 찬밥이우? 내게 군사 3천만 주십쇼! 내가 무릉을 점령하고 태수 금선(金旋)을 잡아다 바치겠수다!”
공명은 장비의 투정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익덕 공이 가주신다면야 누가 훼방을 놓겠습니까? 다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만 하십쇼!”
“지난 번에 자룡이 계양을 취하러 갈 때 군령장을 써놓고 갔습니다. 오늘 익덕 공이 무릉을 치러 간다면 똑같이 군령장을 쓰고 가야 군법이 제대로 설 것입니다.”
“그건 어렵지 않수.”
장비는 바로 군령장을 쓴 뒤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그날 밤으로 출진했다. 무릉 태수 금선은 장비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장교들을 불러들이고 병장기를 점고하는 등 출전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 종사 공지(鞏志)가 말했다.
“유현덕은 대한의 황숙으로 인의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굳이 대항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쳐들어오는 장수인 장익덕은 효용이 비상한 인물입니다. 도저히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니 항복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금선은 공지의 말에 대노했다.
“네 놈은 적과 내통하여 변란을 꾸미고 있느냐!”
금선은 무사들을 불러 공지를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여러 관원들이 말렸다.
“신하부터 목을 베고 출전하는 것은 사기에 좋지 않습니다.”
“에이, 근신하고 있도록 해라!”
금선은 공지를 물러가게 하고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갔다. 금선이 이십여 리 쯤 갔을 때 장비와 부딪쳤다. 장비가 장팔사모를 뽑아들고 금선을 꾸짖었다. 금선은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출전하겠느냐?”
그러나 모두 두려워하며 금선과 눈조차 맞추려 하지 않았다.
“에라, 멍청한 놈들!”
금선은 욕을 한바탕 내뱉고는 큰 칼을 춤추듯이 놀리며 직접 뛰쳐나갔다. 장비도 말을 달려나오며 폐부에서 우러나는 사자후를 내뱉었다. 벼락 치는 듯한 그 소리에 금선의 얼굴색이 변해 버렸다. 도저히 상대할 마음이 나지 않아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주장이 도망을 치니 다른 장졸들은 말할 것이 없었다. 일시에 둑이 무너지듯이 성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비는 그 뒤를 쫓아가며 적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금선이 간신히 성 앞에 도착했으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벽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냐! 성문을 열어라!”
금선이 큰 소리로 외치자 성루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종사 공지였다.
“너는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아 스스로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백성들과 함께 유황숙께 항복하기로 했다!”
금선은 멍하니 공지의 말을 듣느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좋은 표적을 궁수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어느 틈에 날아온 화살이 금선의 얼굴에 명중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금선이 말에서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선의 목을 잘라 장비에게 바치고 용서를 빌었다. 공지도 성문을 열고 나와 장비를 맞아들였다.
장비는 공지에게 무릉 태수의 관인을 가지고 계양으로 가 현덕에게 바치도록 했다. 현덕은 관인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 공지의 의기를 높이 사 그를 무릉 태수로 임명했다. 현덕은 공지와 함께 무릉으로 와 민심을 어루만졌다.
무릉에서 현덕은 파죽지세로 두 군을 얻은 사실을 양양의 관우에게 알렸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관우에게서 금방 답신이 왔다.
- 듣기에 장사(長沙)는 아직 얻지 못하셨다 하는군요. 이 아우의 재주를 믿고 맡겨 주시면 제가 장사를 형님께 바쳐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현덕은 관우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장비를 보내 관우와 교대하게 했다. 관우는 밤을 새워 무릉으로 달려왔다. 금방이라도 출전하려고 하는 관우에게 공명이 말했다.
“자룡이 계양을 취하고 익덕 공이 무릉을 취할 때 모두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갔습니다만 이번 장사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장사 태수 한현(韓玄)은 별 볼 일없는 인물이지만 그 밑에는 큰 장수가 하나 있습니다. 남양 사람으로 이름은 황충(黃忠), 자는 한승(漢升)이라 합니다. 본래 유표 밑에서 중랑장을 지냈으며 유표의 조카 유반(劉磐)과 함께 장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조조가 한현을 장사 태수로 삼자 지금은 그 밑에 있습니다.”
“황충이란 이름은 들은 바 있습니다. 이제 예순 셋이나 된 노인네 아닙니까?”
“황충이 비록 육순이 넘었지만 만부당의 용맹을 지닌 장수입니다.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운장 공께서는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셔야 합니다.”
관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출전은 화용도의 빚을 갚는 출전이 되어야 했다. 장비나 조운보다 큰 공을 세우면 세웠지. 그들보다 못한 장수가 될 수는 없었다.
“군사는 왜 적을 추켜세우며 우리의 위풍을 깎아내리시는 겁니까? 황충이라는 늙은 졸자를 염두에 둘 일이 뭐 있겠습니까? 이 관우, 3천의 병력도 필요없습니다. 본부의 정예 교도수(校刀手) 오백만 데리고 가 황충과 한현의 목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현덕이 놀라서 관우를 말렸다.
“그런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군사의 말을 듣도록 해라.”
“형님도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관우는 끝내 교도수 오백 명만을 거느리고 장사로 떠났다. 공명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운장 공이 황충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습니다. 행여 실수가 있을까 걱정됩니다. 주공께서 뒤를 받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현덕은 공명의 말을 받아들여 군사를 이끌고 관우의 뒤를 따라갔다.
장사 태수 한현은 성미가 매우 급한 사람이었다. 앞뒤를 따지기보다는 사람을 절단내는 것을 더 즐기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증오했다. 관우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자 당장 황충을 불러들였다.
“관우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주공께선 우려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이 칼이 있고 이 장궁이 있는 한, 천 명이 와서 천 명이 죽을 뿐입니다!”
황충은 이석(二石)의 활을 당겨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명사수였다. 석(石)이란 활의 강도를 표시하는 단위로 2석이라면 약 200근(약 40킬로그램)에 달하는 힘이 필요한 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82근이니 황충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노장군께서 출전할 것을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나가서 관우를 잡아오겠습니다.”
한현이 살펴보니 관군교위 양령(楊齡)이었다. 한현은 양령에게 일천 군마를 주어 출전시켰다. 양령은 자신을 믿어주는 것에 감격하여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성문을 나섰다.
양령은 오십여 리를 달려간 뒤에야 관우가 달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령은 늠름한 모습으로 말을 달려 진 앞으로 나와 관우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분수도 모르는 놈이 이곳이 어디라고 왔느냐!”
관우는 아무 대꾸도 없이 청룡언월도를 앞세우며 달려나갔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내려치자 양령은 창을 들어 막았다. 그순간 양령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꼈다. 관우는 같은 위치로 다시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양령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다시 막아냈다. 그러나 세 번째 타격에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청룡언월도는 창의 중둥이를 부러뜨린 뒤 양령의 머리까지 날려버렸다.
양령을 따라나온 병사들은 관우의 역신같은 기세에 놀라 성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우는 그들을 쫓아 성 아래까지 진군했다. 놀란 한현은 황충에게 출전하게 하고 자신은 성루에 올라 관우를 살폈다.
황충이 기병 오백을 거느리고 적교를 건너자 성 아래 있던 관우는 앞서 달려오는 장수가 황충임을 알아보았다. 관우는 교도수들을 일렬 횡대로 세우고 청룡언월도를 가로로 든 채 황충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거기 오는 장수는 황충이 아니냐?”
관우의 질문에 황충도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이름을 알고도 여기를 왔단 말이냐!”
“네 목을 가지러 왔다!”
황충이 대로해서 장도를 휘두르며 관우를 내리쳤다. 관우도 청룡언월도를 들어 황충의 칼을 막았다. 손목에 전해오는 충격이 장비나 조운에 못지않은 것을 알고 관우는 황충을 다시 보게 되었다. 관우의 마음에 호승심이 크게 일어났다.
관우는 전력을 다해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황충 역시 장도를 옆으로 돌려 청룡언월도를 막아내긴 했으나 어깨까지 충격이 전해져와 가슴이 뜨끔했다. 황충은 다음부터는 정면으로 관우의 칼을 받아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관우의 공세가 돋보였지만 노련한 황충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사이 황충의 날카로운 공격이 오히려 관우를 위협하기도 했다. 어느 틈에 백여 합이 넘어서자 한현은 더 이상 가다가는 황충이 실수를 범할까 걱정이 되었다. 황충을 이렇게 고전시킬 상대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기에 한현은 관우를 근심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징을 울려 황충을 성으로 불러들였다.
황충이 빈틈을 보이지 않고 절도있게 후퇴를 하자 관우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관우는 십 리를 물러나 진영을 구축했다. 관우는 밤새 황충과의 결전을 되새기며 전술을 궁리했다. 이 상태라면 다음날이 되어도 황충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더니 황충, 대단하기 대단하구나. 내일은 타도계(拖刀計)를 써서 등판을 두 조각 내버리리라.”
다음날 관우는 병사들에게 아침을 든든하게 먹인 후 성문 아래로 가 싸움을 걸었다. 이번에도 황충이 기병들을 거느리고 달려나왔다. 순식간에 오륙십 합을 싸웠으나 어제와 같이 결판이 나지 않았다. 양쪽 군사들은 모두 자기 장수를 응원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양측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전황이 긴박해지는 것을 따라 점점 더 빨리 울리기 시작했다. 관우는 그 북소리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황충이 드디어 승기를 잡았다고 기뻐하며 관우의 뒤를 바짝 쫓았다. 관우는 황충이 자기 예상대로 계략에 빠진 것을 보고 기뻐했다. 곧 몸을 뒤로 돌리며 청룡언월도를 회전시켜 황충을 일격에 죽여버릴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오지 않았다. 황충의 말이 발을 헛디디며 쓰러지는 바람에 황충이 안장에서 튕겨 땅바닥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번쩍 들어올렸다. 황충이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쳐라!”
그러나 관우는 칼을 내리치지 않았다. 관우의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다. 자기 기량과 관계없이 쓰러진 장수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관우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널 죽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가서 말을 바꿔 타고 다시 와라!”
황충은 말을 일으켜 세우고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탔다. 부끄러웠지만 그 말로는 다시 싸울 수가 없었다. 성 안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한현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꼼짝없이 황충이 죽는 줄 알았던 그는 황충이 성문으로 들어서자 성루에서 내려와 황충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이 놈의 말은 전쟁에 나간 지 오래 되어 실수가 있었습니다.”
“네 활은 백발백중이지 않느냐? 왜 활을 쏘지 않느냐?”
“내일 다시 싸울 때는 일부러 패한 척하고 활을 쏘아 관우를 쓰러뜨리겠습니다.”
“좋다. 내 말을 내려줄테니 내일은 꼭 이기도록 해라.”
한현은 자신이 아끼는 푸른 색의 말을 황충에게 주며 격려를 했다. 황충은 한현에게 감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운장과 같은 의기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겠다. 그자는 나를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양보를 했는데 나는 그자를 죽일 수 있을까? 아, 하지만 내가 활을 쏘지 않는다면 군령을 어기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황충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밤새 고민을 했으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관우가 다시 도전을 했다. 관우도 이틀을 싸웠으나 황충을 꺾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반드시 황충을 잡고 장사성을 함락시킬 각오를 세웠다. 관우는 전력을 다해 성난 파도처럼 공세를 펼쳤다. 30여 합을 싸운 황충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드디어 황충이 기력이 다한 것으로 믿은 관우는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황충의 뒤를 쫓았다. 관우의 말은 천하의 명마인 적토마였으나 황충의 말도 그에 못지 않아 둘 사이의 거리는 쉬 좁혀지지 않았다.
황충은 관우를 유인하면서 활을 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선뜻 활을 당길 수 없었다. 그러나 관우가 점점 더 속력을 내어 거리를 좁혀오자 일단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황충은 말 위에서 몸을 돌려 활을 당겼다.
관우는 활 시위 소리를 듣고 얼른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 사이에 황충은 다시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황충이 두 번째 활을 당겼다. 이번에도 빈 시위였다. 관우는 황충이 화살을 가지지 못했거나 활 솜씨가 형편없어서 엉뚱한 곳으로 활을 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거칠 것이 없었다. 관우는 더 빨리 말을 몰아 황충을 쫓았다. 황충은 어느 새 적교에 이르렀다. 황충도 이제는 관우에게 빈 시위를 당겨서는 위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황충은 세 번째로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빈 활이 아니었다. 아무 걱정없이 다가가던 관우의 투구끈에 화살이 명중했다. 황충의 군사들은 관우에게 활이 명중한 것으로 여기고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관우도 깜짝 놀라 말을 돌려 달아났다. 미처 투구끈에 꽂힌 화살을 뽑을 틈도 없었다. 황충은 그 뒤를 쫓지 않았다. 그때서야 관우도 황충이 활솜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은혜를 갚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관우도 그날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
관우가 물러나자 황충도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들어가 한현 앞으로 나아갔다. 한현은 얼굴에 노기를 하나 가득 담고 있다가 황충을 보더니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말했다.
“저 역적 놈을 당장 포박해라!”
시위들이 달려들어 황충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내가 사흘 동안 네 놈이 행한 일을 다 보았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속이고 있었다! 너는 첫날에는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말에서 떨어졌는데 관우가 너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 놈이 관우와 내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두 번이나 빈 시위를 당긴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세 번째 화살은 관우를 죽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네 놈이 내통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를 이렇게 기만할 수 있겠느냐! 내가 지금 너를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생길 게 분명하다!”
한현은 도부수들을 불러 황충의 목을 당장 치라고 방방 뛰었다. 황충은 형주의 오래된 신하라 다른 장수들이 모두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한현의 노기에 부채질만 한 꼴이 되었다.
“황충을 살려달라고 하는 놈들도 황충과 같이 목을 베어버릴테다! 다들 입 다물어라!”
도부수들이 황충을 문밖으로 끌어내 목을 치려 했다. 바로 그때 한 장수가 뛰어들어 도부수들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황충을 일으켰다.
“황 장군은 우리 장사의 방벽이시다! 황 장군을 죽이려는 것은 장사의 백성들을 죽이는 것과 똑같다! 한현은 폭군에 잔인무도한 놈이 아니냐! 어진 선비는 모멸하고 백성들은 어육을 만드는 일로 세월을 보낸 놈이다! 이 자를 나와 같이 죽일 자는 내 뒤를 따르라!”
대체 누가 이런 대담한 말과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이 모두 놀라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잘익은 대추빛 얼굴에 눈이 초롱초롱한 사내로 남양 사람 위연이었다. 바로 전에 양양에서 현덕의 편을 들다 자취를 감췄던 바로 그자였다. 한현은 위연이 오만하고 예의를 갖출 줄 모른다고 중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위연은 평소에 그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문장(文長=위연의 자), 이래서는 안 돼.”
황충이 위연을 말렸지만 이미 위연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모여 들었다.
“황 장군께서는 아무 걱정 마십시오!”
위연은 곧장 성루로 뛰어올라가 한현을 한 칼에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위연은 한현의 머리를 베어들고 성 밖으로 나가 관우에게 그 머리를 바쳤다. 관우는 크게 기뻐하며 위연을 격려한 뒤 성 안으로 들어갔다. 백성들을 안심시킨 뒤 황충을 불러오게 했으나 황충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나타나지 않았다. 관우는 현덕에게 장사성 함락을 알리는 전령을 보냈다.
현덕은 본래 공명의 말을 따라 후군을 이끌고 관우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진군 중에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진의 선두에 있던 푸른 깃발이 돌풍에 휘날리더니 까치 한 마리가 북에서 남으로 날아가며 세 번 울었던 것이다. 현덕은 이것이 불길한 징조인가 싶어 공명에게 물었다.
“이것은 화와 복 중 어느 것을 의미합니까?”
공명은 소매 속에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장사는 이미 우리 수중에 들어왔군요. 더구나 주공께서는 대장감을 얻으셨습니다. 오시(午時=낮 11시~1시)가 지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덕은 관우가 보낸 전령을 만났다.
“관 장군이 장사를 함락시키고 황충, 위연의 두 장수도 항복을 했습니다. 모두들 주공께서 어서 오기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덕은 뛸 듯이 기뻐하고 행군 속도를 높여 장사로 들어갔다. 현덕이 오자 관우가 마중을 나와 그동안의 전역을 자세히 설명하고 황충에 대해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다. 현덕은 황충의 집으로 몸소 찾아가 황충을 만났다.
"패군지장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황충이 현덕을 외면하자 현덕은 간곡한 어투로 말했다.
"공은 본래 한실 종친을 섬기던 몸이 아닙니까? 지금 역적 조조가 천자를 핍박하여 중원을 농락하고 있는데, 작은 의리에 얽매여 재주를 초야에 묻힐 생각입니까?"
황충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현덕이 다시 말했다.
"천하는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재주가 있건 없건 국은에 몸을 바쳐 한조각 붉은 마음을 보일 때입니다. 이 유비를 따라주십시오. 반드시 난세를 평정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 말이 늙은 황충의 마음을 움직였다. 황충은 마당으로 내려와 현덕에게 절을 올리고 주군으로 섬길 것을 맹세했다. 그런 후에 황충은 두가지 청을 올렸다.
첫번째는 전 주군이었던 한현을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내 달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신임 장사 태수로 본래 태수였던 유반을 앉혀달라는 것이었다. 현덕은 두가지 청을 모두 들어주었다. 유반은 유종이 항복한 후에 시골로 내려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현덕이 부르자 기꺼이 달려왔다. 그는 본래 대단히 용맹한 사람이어서 여러차례 강동의 군현을 침공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바 있었다. 동오의 장수 중 태사자만이 유반을 막을 수 있었다.
현덕이 황충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관우가 위연을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현덕 곁에 있던 공명은 위연을 보더니 불호령을 내렸다.
“도부수들은 당장 저 놈을 데려다 목을 쳐라!”
위연보다도 현덕이 놀라서 물었다.
“문장은 이번에 큰 공을 세웠는데 군사는 무슨 이유로 문장을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저 자는 주인을 배반한 자입니다. 주인의 녹을 받아먹으면서 오히려 자기 주인을 죽인 불충한 자를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주인을 죽인 뒤에 그 땅을 적군에게 내어준 것은 불의한 일이니 저자는 바로 불충불의한 자입니다. 저 자의 뒤통수를 보건대 반골(反骨)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저런 관상을 지닌 자는 반드시 주인을 배반하는 법이니 지금 죽여서 후환을 없애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현덕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문장을 죽이면 항복한 사람들이 모두 불안에 떨게 됩니다. 모쪼록 군사는 노여움을 거두기 바랍니다.”
현덕이 이렇게 말하면 공명이 더 우길 수 없는 법이었다. 공명은 위연을 똑바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네 목숨을 붙여놓으마. 너는 주공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절대 배반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른 마음을 먹지 마라. 만에 하나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네 머리를 부숴놓을 테다!”
위연은 혼비백산해서 연신 네네 소리만 되풀이하며 물러났다. 위연이 물러난 뒤 현덕이 공명에게 물었다.
"나를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인데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문장은 남양 사람이라 제가 그 사람됨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재주는 있는 사람이나 공을 세워 입신양명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합니다. 이번에도 한현을 굳이 죽일 것까지는 없었는데도 공을 세우기 위해 그를 일부러 죽인 것입니다. 이런 자를 그냥 받아들이시면 크게는 세상의 인심에서 멀어지게 되어 간사한 자들이 모여들게 되며, 작게는 문장을 올곧게 기를 수가 없게 됩니다."
"과연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현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덕은 영릉, 계양, 무릉, 장사의 네 군을 모두 평정하여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었다. 각 군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공안으로 돌아갔다. 양양은 조조 군과 너무 가깝고 지키기에 어려운 성이라 현덕은 공안을 근거지로 삼고 강릉과 강하를 축으로 삼아 영토를 지켰다. 양양에는 유기를 보내놓았다.
현덕과 공명의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자 군량과 군사가 착착 늘어났고 천하의 현사들이 모여들었다. 험로마다 장수들이 배치되었고 형주는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근거지로 변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