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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내가 사는 곳,
마산 집에서 멀지 않은 다소 외진, 구산면 석곡의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솔베이지`란 상호를 내건 경양식집이 있었다
당시 인터넷 검색도 원활하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난 이 솔베이지란 상호의 유래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궁금해했었다
이후 근 30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솔베이지가 노르웨이의 국민음악가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1843-1907)가 작곡한 `페르귄트`에 나오는,
한 남자를 평생 기다렸던 순정의 여자 이름이란 사실을 알았다
2017년 노르웨이 트레킹을 끝내고
에드바르드 그리그가 22년 동안 살았던 베르겐의 집, 트롤하우겐(Troldhaugen)을 찾았다
베르겐은 멕시코난류의 영향으로 1년중 300일이 비오는 날씨이다
그날도 역시 비는 내리고 혼자 찾아가며 노르웨이어로만 씌여진 전차 무인승차권자판기 앞에서 당황했던 일부터,
전차를 내려서 1시간 남짓 추위에 떨며 찾아헤매야했던 일 등 꽤 어려움을 격었었는데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_’은
페르귄트(Peer Gynt)의 모음곡 제2번, 제4곡에 수록된 노래이다
`인형의 집`을 쓴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의뢰에 의해
에드바르드 그리그가 입센의 페르귄트 시극의 부수음악으로 1875년 만들었다.
즉 입센의 페르귄트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반주곡으로 만들어 187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초연되었다.
‘솔베이지의 노래’의 배경은 이러하다
노르웨이의 작은 산골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가 살았는데
한 동네에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있었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했지만 생활은 너무나 가난했다
페르귄트는 가난으로 고생하는 아내 솔베이지를 위해 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페르귄트는 부둣가에서 온갖 막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하며 돈을 모으던 중 오파상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파상을 개업했다
가게는 번창하고 많은 돈을 벌게 된 페르귄트는 10년만에 모든 재산을 정리해 솔베이지가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갖은 고생 끝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바다 한가운데서 해적을 만나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만 가까스로 건진다
고향까지 되돌아왔지만 그렇게도 그리워한 아내 솔베이지를 차마 만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이국땅으로 떠나 길거리 노숙자로 평생을 살다가 늙고 지치고 병마저 들었지만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죽는게 소원이었던 페르귄트는 몇 달 며칠만에 그리운 고향으로 겨우 돌아온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옛날 젊은 시절 아내 솔베이지와 살았던 오두막집이 다 쓰러져가는 채로 있었고 그 안에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오두막 안에는 한 노파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 노파는 다름아닌 사랑하는 아내 솔베이지였다
솔베이지는 긴긴 세월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변함없이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백발의 두 노인은 서로 마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렸다.
그날 밤 페르귄트는 아내 솔베이지의 무릎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차갑게 식어가는 남편을 위해 마지막으로 솔베이지는 노래를 부른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당신을 기다리겠노라"고...
그리고 그녀도 페르귄트를 따라간다
이렇듯 `솔베이지의 노래`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더니
여름내 그토록 싱그럽고 짙푸르기만 하던 앞산의 나무들도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변해
어느덧 하나둘씩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가을도 깊을만큼 깊어졌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던가...
매년 이맘때쯤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는게 내 가슴 속에도 휑하니 스산한 바람이 이는 것만 같다
젊었을 땐 결코 느껴보지 못한, 잠깐일망정 우수의 감정에 휩싸이기곤 한다
추정컨데
한해의 막바지로 들어서는 가을이 찾아오면 내 인생도 영원할 수 없다는 자각이
보다 현실감있게 마음에 와닿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럴 때면 난 으레 `솔베이지의 노래`가 괜스레 듣고싶어진다
솔베이지와 페르귄트, 두 연인의 사랑의 애달픔과 처연함이 이맘때 내가 느끼는 서글픔과 공조되어
공허한 내 가슴속에 더 진한 공명의 떨림으로 와닿기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가을이면 찾아드는 공허한 서글픔이 느껴질 때 이를 떨쳐내기 위해 난 언제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은 언제나 새롭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유행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마저 떠날 수 없으니
돌아오는 일요일엔 골프를 쳐야겠다
공허함과 서글픔을 골프공에 담아 남김없이 날려보내야겠다
골프 스코어가 뭔 대수란 말인가
OB를 낼망정 양껏 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