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부터 일생 언젠가 한번은 가 보았어야 할 곳...보길도...
문학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
고산 윤선도의 탁월한 예술적 안목과 그의 詩情을 만나볼 수 있는 곳.
참 뜸을 오래도 들인 셈이었죠.
대학땐 그 많은 방학기간동안 아마 남편과 연애중....
그리곤 늘 꿈꾸며 다음으로 미뤄 두었던 곳이었습니다.
남편은 빚진 마음이었을까?
얘기중에
"여보, 요번에 우리 보길도에 한번 가 보자.. 얼마전 TV에 소개된 청산도도 가 보고..."
"그러지 뭐.."
언제나 처럼 흔쾌히 응해 그렇게 우리는 철 늦은 휴가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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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까지 가려면 해남을 경유해야 해서 가는 길에 아버지도 뵙고
추석명절 제수비용도 조금 챙겼습니다.
그리곤 작년에 갔던 游仙莊 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1박2일 촬영 이후 그곳은 사람으로 넘쳐 났는지 서비스는 엉망이었습니다.
밤 늦도록 술 취한 사람이 高聲放歌였고
심부름 하는 종업원은 조선족이었는데
방이 차다는 말에 담배를 문채로 안춥다고 우겼습니다.
작년엔 절절 끓어 찜질방인 줄 알았는데....
그러나 여행에 지친 우리는 일단 잠이 들기로 했죠.
장작불로 불을 때고 옛정취를 즐기러 들른 객에겐 실망스러웠습니다.
옆방에선 항의 중이었지만 주인은 콧배기도 내밀지 않았고...
해남에 가면 늘 그곳에서 자고 싶었는데, 이제 다시는 안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유선장 아래 산책길은 서산대사가 유물이 있는 대흥사의 역사만큼 굵은 나무들이 울창했습니다.
땅끝을 가기 전 산책 삼아 우린 숲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이제 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갈 예정이니
우린 두 손 잡고 여행 일정 이야길 하며 호젓한 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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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을 지나 제철을 맞은 무화과를 곳곳에서 파는 길을 달려 땅끝 선착장에 들르니
10시 40분 배가 우릴 기다립니다.
아침도 안먹은 우리는 밥먹을 시간이 부족해 구멍가게에서 두유 한 병과 작은 과자빵을 한 입 물고
약 40분가니 노화도 신양항이었습니다.
두 섬은 다리로 이어져 차를 싣고 간 우리는 보길도에서 전복을 먹을래다
너무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죠.
결국 바가지같아 완도에서 전복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전 날 목포에서 낙지와 전복, 그리고 갈치조림을 넉넉히 시켜 동창이랑 먹었는데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산지에선 좀 싸게 팔면 의미있고 좋을텐데 아쉬웠습니다.
아침이고 해서 우린 가볍게 해물 된장 찌개를 6000원에 사 먹었습니다.
주인은 후덕해서 참게장에 풍성한 반찬으로 우릴 접대했습니다.
'보길도의 아침'이라니 제법 이름이 시적이라 들렀는데 방송에 나왔다고 써 있었습니다.
괜히 위로가 되고 신뢰심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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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그곳..제가 그토록 기대했던 윤선도가 만들어서 일본인들의 정원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세연정에 갔습니다.
들어 서자마자 감탄만 연발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
자연과 너무 잘 어울려 걸터 앉은 마루조차 꽃같고 나무같았습니다.
앞마당에 펼쳐진 연못엔 연꽃이 피고 그리고 큰 돌들이 여기저기 꼭 있어야할 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각기 제 이름을 지닌채로.. 그게 일곱개의 바위라던가....
바위돌 하나 소나무 하나도 제멋대로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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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라도 좋았고, 시가라도 좋았습니다.
문학인이라도. 화도인이라도 그곳은 별천지였다는 뜻입니다.
확실한 교실이었던 거였죠.
"지국총지국총 어사화.." 라는 어부사시가의 후렴이 나직히 들리는 뜰을 걸어 다니며 고산을 만나는 시간..
그는 거기에 영원히 살아 있었습니다.
유배지에서조차 그의 예술혼은 살아 있는 것이었죠.
자유로운 영혼은 가둘 수도 묶을 수도 없는 법..
그는 수도 한양에서 가장 먼 완도 보길도라는 유배지에서도
영혼만 살아 있다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저처럼 한가한 인생에게는 자성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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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 꼭대기에 작은 암자, 동천석실을 짓고
그 꼭대기 정자곁에 놀랍게도 정자와 잘 어울리는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길렀습니다.
예쁘게 핀 연꽃, 날이 더웠는데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거기에 꼭 합당한 크기의 연꽃이 하얗게 피었더군요...
오르는 길이 나무 동굴 같아서 기분 좋게 걸었습니다.
여름 휴가기간도 지났고 단풍철이 오기 전이니 오르는 사람은 우리 둘...
남편은 덥다며 복근을 자랑하기도 했지요..
우린 마치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처럼 자연과 하나가 된 듯했습니다.
참 좋은 시기에 여행을 떠났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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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따라 송시열의 글씐바위를 찾아 바닷길을 걷다 보니
전복산지답게 바다는 온통 양식장으로 가득입니다.
조금 아쉽더군요....
배를 타고 오면서 보던 푸른 바닷물 넘실대는 건 마음뿐...
그렇게 눈에 보이지 읺을 때는 비로소 마음을 떠야 할 때...
눈을 감고 心眼을 열어 바다를 듣고 봅니다.
몽돌 해수욕장에서 오다가 바닷가 방풍림 숲길에서 들고 온 무화과를 껍질 벗겨 먹으니 꿀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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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뜨거워지니 우산을 들고 걷기도 하며 몽돌 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자갈을 바다를 향해 던지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잠잘 곳을 찾아보며
할머니들이 다듬고 있던 마른 톳과 다시마를 좀 샀습니다.
그리곤 피곤에 겨워 느긋하게 길가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보고 있는데 앞에 펼쳐진 섬들 사이로 산들 바람이 불자 졸음이 쏟아집니다.
"난 좀 누울래!..."
눕다가 하늘을 보니 푸르기가 바다같아 마치 데칼코마니 작품 같습니다.
금새 잠든 내 곁에 있던 남편도 피곤했는지 먼저 잠이 들었습니다.
힘들면 자고, 깨면 구경하고...
정말 휴가다운 휴가를 모처럼 즐겨 봅니다.
황토팬션에 투숙하려다 하루면 충분한 구경이어서 ...
차라리 다른 곳도 돌아 보자며 갑자기 마음을 바꿔
그곳의 마지막 배인 동천항의 6시 40분 농협배로 보성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녹차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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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을 싣고 다니는 배는 참 컸습니다.
선실에 누워 뜨거운 바닥에서 몸도 녹이고 바람부는 난간에서 보길도와 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뱃길.. 석양빛이 너무 고왔습니다.
요즘 들어 자주 고운 노을이 가슴 안에 깊이 들어 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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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가을에 아름다운 여행을 하셨군요 요즘 날씨 정말 좋습니다~~
그죠? 여행 내내 감사, 또 감사 했습니다. 하늘이 너무나 그림 같고 벌레소리 새소리가 온세상에 가득했죠.. ^^ 잘 지내시죠?
네! 잘지냅니다 이런 계절이면 용인을 추억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