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고 했던가요?
하늘은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청승스럽게도 아침까지 계속돼 잿빛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풍광은 운치 있다고 좋아하지만, 잔뜩 찡그린 모습을 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씨는 별로인듯하다.
늘 그랬듯이 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일찍 목욕탕에 출근 도장을 찍기 위해 나가는 아내를 배웅하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아피스토의 식물 에세이 <처음 식물>을 읽으면서 집에 있는 관음죽 화분을 보니 목마르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숨을 헐떡이고 있어 잠깐 멈추고 욕실로 옮겨 물을 잔뜩 주고 나니 식물 집사는 아니지만, 함께 사는 그 녀석한테 면이 서는 느낌이다.
우리 집에는 오직 관음죽 분 세 개와 러브체인 분 한 개가 전부다.
기르던 난은 올해 들어 살기가 싫어졌는지 생명이 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노란 떡잎으로 변하더니 죽었다.
난은 예전에도 여러 번 사다 키웠지만 한 번도 영생하지 못하고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말라 죽어 참 까탈스러운 식물이라며 애정을 거뒀다.
관음죽은 우리와 산 지 30년쯤 되었다.
어머니가 이사했다고 와서 준 돈으로 화분 두 개를 샀는데 하나는 죽고 여태까지 살아남은 왕성한 번식력이 있는 멋진 녀석이다.
분갈이하면서 여럿에게 분양을 해줬다.
그 녀석들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잘 자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각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여서 서로 왕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소식은 알 수 없지만 내가 키우는 이 나무를 보면 아마 몰라도 잘 자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위안으로 삼는다.
하나의 화분이 세 개를 증식되었지만, 분갈이를 잘 하지 않는다.
새로운 화분이 생긴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와 성격이 달라 화분에 관한 관심이 적어 나무가 축 처져 갈증을 얘기해도 행동하지 않아 늘 그것에 관한 관심은 내가 가져야 하는 부담이다.
이 관음죽이 소중한 이유는 나와는 특별한 사연이 있으므로 항상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앞서 얘기했듯이 어머님이 이사기념으로 사주신 화분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두 개의 화분은 거실에 있고 하나는 베란다에 있는데 관심은 거실에 있는 분이 많이 받는데 건강상태는 베란다에 있는 녀석이 훨씬 건강하다.
아마 몰라도 지나친 관심이 식물도 짜증이 나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목마름을 호소하는 화분에 물을 주고 다시 책을 펼쳐 읽으려는 순간 아내가 목욕탕 가면서 한 얘기가 생각난다.
“밥이 없으니 좀 해놓으세요.”
무심코 본 시계가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으니 얼른 밥을 해야 한다.
쌀을 씻고 물을 적당량 부어 전기밥솥에 전기를 공급 해두고 또 책을 붙들고 이 작은 도서 한 권을 통달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잠시 후 전화가 울린다.
불길한 예감이다.
내가 앉힌 전기밥솥에서는 밥이 거의 다 되어 김이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즈음 울린 전화는 언제나 불길했다.
“여보 나 점심 먹고 갈게요”
서멀서멀 머리통에 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약속이 있을 것 같으면 굳이 밥을 하라는 얘기는 않으면 안 되나 하고 심사가 틀리니 기분이 나빠져서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웃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하며 멍하니 앉아 전기밥솥에서 품어내는 김을 멍청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머릿속에 운명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이건 내 운명인가! 그래 그럴 거야.
혼자 중얼거리다 말고 그래도 밥은 혼자라도 먹어야 한다며 일어서는 순간 혼자 먹어려고 한 밥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 싫어져서 간편식 국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인스탄트 멸치국수를 준비하기 위해 물을 냄비에 넣고 끓인다.
세상은 괜찮다.
요리법이 적혀있으니 그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은 제로고 맛도 그런대로 보장되니 얼마나 좋냐며 열심히 조리를 하다말고 김치라도 곁들이면 더욱 맛이 난다는 포장에 적힌 친절한 얘기가 생각나서 냉장고에 김치가 있나 하고 찾았더니 꺼내놓은 김치는 없다.
이 또한 먹지 말라는 운명이다.
쉽게 생각하니 참 쉽다.
불평불만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감정인지 모를 일이다.
곁들이지 않아도 먹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으니 굳이 김치가 없다고 불평을 해서 머리통에 열을 채울 필요가 없음을 난 이미 알고 있다.
며칠 전 피부과에 간 적이 있다.
갑자기 머리에 비듬이 번창하여 피부과를 들렀더니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몸을 너무 혹사하지 말란다.
쉽게 말하면 열 받아서 아니 머리에 열이 많아서 생기는 게 비듬이니 머리를 열나지 않게 관리하라는 얘기다.
그 생각이 불쑥 머릿속을 채우니 김치 타령하면서 열을 머리통에 채울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일은 늘 불행과 행복은 같이 다니면서 인간을 실험한다.
적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데 이익을 봐서 재미가 쏠쏠하다며 희희낙락하였는데 금년 들어 어찌 된 일인지 그동안 벌어놓은 돈은 아낌없이 빠지고 원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아직 벌어놓은 돈이 있다며 위안으로 삼았는데 이게 웬일 내가 가진 주식만 골라서 빠지는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운수소관이라며 헛웃음 짓지만, 속이 부글거리는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먹었던 국수가 갑자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웃어야 한다면 억지로 거울 보며 웃고 있는데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감정은 참 버겁다.
사람들은 그래서 운명이라는 단어에 감사하며 살게 되나 보다.
아침부터 꼬이기 시작한 감정 곡선이 자꾸만 하향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단념하면 부글거리던 속도 편안함으로 돌아서고 숨쉬기가 수월하니 얼마나 신통방통하냐며 웃을 수 있어 좋다.
인생 어느 하나 내 맘대로 된 적이 있던가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보면 늘 그랬다.
오늘은 좋은 일만 일어나길 기도하면서 시작한 그 날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던 적이 없듯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어느 날은 온종일 즐겁고 유쾌한 일로 웃고 지낸 적이 있다.
그것이 운명이 아니면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흘러가는 세월에 의지하여 살다 보면 오늘 같은 날도 있고 또 다른 하루도 생기는 게 삶이니 누굴 탓하고 원망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한다.
하루하루가 그저 흘러가고 새로운 하루는 그날들에 섞였다는 얘기다.
다양한 하루지만 내가 보내고 맞이하는 수많은 그 날들에 섞여 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건 운명이다.
그러니 오늘도 잘 지나갈거라는 운명론에 목숨을 걸고 그냥 신나게 웃어 재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