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 편___박선희
천칭자리 여자 외 1편
박선희
그 여자
길주로 난간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방에 들어가기
위해
9층까지 네 발로 긴다
가끔 공중으로
들어올려지는 두 발
접힌 허공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른 웃음이
피는 방
아침이면 깃털을
털어내며 숨을 고르고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내장을 말리고
계단에서 미끄러져
지하주차장에 이른다
몸으로 깎아낸
모서리에
줄 끊어진 라켓이
걸려있고
낡은 묵주가
걸려 있고
병원마크가 찍힌
매달이 걸려 있고
바닥에서 건져
올린 웃음이 바래가는 동안
앰뷸런스 소리를
귀에 달고 살았다
찬바람이 등뼈를
관통하면
천정 네 귀퉁이를
돌던 거미 한 마리
접혔던 등을
파르르 떤다
슬어낸 알을
지켜내는 밤마다
여자의 베갯잇이
젖었다
길주로 9층 난간이 흔들리면
오래된 목발을
짚고 일어서서 균형 잡는
천칭자리 여자
복제된 시간
시계는 제 발부리에
걸리는 법이 없다
한 번쯤 넘어질
법도 한데
쉬었다 갈 법도
한데
긴 바늘을 들어
발자국을 찍고 있다
짧은 바늘을
들어 더딘 시간을 찍고 있다
길고 짧은 다리에
배긴 굳은살
한 치도 흩어지지
않고 외줄 위를 걷는다
달력에 갇힌
시간을 벗어나려
365일 등에 업힌 초침은
지구본을 들고
달린다
종착지는 어딘가
시흥리 소금밭
수차를 밟고
오르며
바큇살을 돌리는
바람이
발 헛디뎌 비명을
지른다
저벅저벅 복제된
하루가
마른 바람소리를
낸다
심장으로 건너야
하는 밤
빈 벽에 못을
박고 건 슬픈 목덜미
빗장 건 울음소리는
바닥에 흥건히 고여있고
방바닥을 기는
초침소리는 깊어간다
제 울음소리만
커지는 밤
귓바퀴를 타고
건너보지만
짧은 다리로는
건널 수 없는 수렁의 깊이
어둠의 등 위에서
복제된 시간이 다시 넘어진다
박선희 /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2002년 『수필과 비평』에 수필, 2014년 『월간문학』에 시로
등단했다. 수필집 『아름다운 결핍』 『울콩』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