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상인 비밀노트] '부평통닭' 최영주 사장
"치킨 맛 배우려고 다른 가게 쓰레기통 뒤져"
이자영 기자 다른기사보기
2014-04-21 [09:16:23]
▲ 부산 중구 부평시장 '부평통닭' 최영주 사장(오른쪽)과 아내 배정미 씨가 1980년대 시장에서 팔던 '옛날통닭' 식으로 닭을 푸짐하게 튀겨내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여기가 옛날 '거인통닭' 자리거든요. 6년 전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그 집인 줄 알고 들어왔던 손님들이 '치킨 맛이 왜 이러냐', '이게 닭이냐'고 화를 내고 돌아가셨어요. 초기엔 욕 엄청 먹었습니다." 레시피 개발에만 4년 걸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KBS 강연 100℃ <102회> 황안나/ 최영주/ 이성종 2014/07/27
황안나 (75세, 女 국토종단부터 전국해안일주까지! 75세 도보여행가)
“왜 걸어요?”
환갑을 훌쩍 넘긴 65살에 혼자 도보 여행을 시작한 황안나 할머니. 6남매 중 첫째였던 그녀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됐다. 간경화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며 가장역할을 했다. 결혼 후, 남편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빚을 갚으며 자신보다 가정을 위해 살아온 그녀. 50대에 남편의 사업이 자리 잡아가며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산악회 활동과 해외여행도 다니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TV프로그램에서 양파밭을 보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65살 때 무작정 홀로 도보 여행을 떠난 그녀. 때로는 사탕 17개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종일 걷다보니 발이 붓고 심한 통증도 느꼈지만 멈추지 않았고, 23일 만에 땅 끝 마을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에 성공했다. 길 위에서 자유를 느끼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그녀는 67세 때 135일 만에 전국해안을 일주했다. 이제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의 거리는 무려 약 2만여 km. 무작정 떠난 길 위에서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영주 (39세, 男 사업 실패를 딛고 시장 통닭으로 재기한 가장)
“딱 한 달만”
시장에서 통닭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영주씨.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일찌감치 냉장고 조립 기술을 배워 공장에 취직했다. 결혼 후에도 10년 넘게 기술자로 일했던 그. 큰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에 직장을 그만두고 호두파이 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의욕만 앞선 탓인지 잘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빚만 지게 됐다. 절망에 빠져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가장으로서 일어서기 위해 다시 냉장고 공장에 취직했고, 실력을 인정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다시 장사를 해보라는 어머니의 제안에 고심 끝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통닭 가게를 시작한 그. 하지만 통닭 맛은 커녕 닭 튀기는 법도 몰랐기에 하루에 고작 한, 두 마리 파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다른 통닭집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온 재료들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하루에 고작 2~3 시간씩 자고, 수십 마리의 닭을 튀기며 노력한 끝에 2년여 만에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한 그. 이 후 가게는 입소문을 타 손님들이 늘어났고, 빚도 모두 갚게 됐다. 절망의 끝에서 포기하지 않고 칠전팔기 정신으로 다시 일어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성종 (18세, 男 할아버지와 함께 10년 째 봉사하는 고등학생)
“4039시간”
할아버지와 함께 10년 째 봉사하는 고등학생 이성종군. 그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세 살 무렵부터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성종군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이 남달랐던 할아버지는 공부뿐만 아니라 봉사의 중요성도 몸소 가르치셨다. 꾸준히 봉사를 해 오던 할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 양로원 어르신들의 목욕 도와드리기를 시작으로 어른들도 참기 힘든 악취를 견디며 길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분리수거도 하며 할아버지를 도운 그. 또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의 가정을 일일이 찾아 도시락을 전달하는 방문봉사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 어르신들을 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매일 찾아가 손자노릇을 하며 어르신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그. 처음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봉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앞으로도 계속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이웃을 돕고 싶다는 성종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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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