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용을 잊고(忘龍)
두피(頭皮)는 뜯겨지고 가래톳 선 용이여
개울에 놀고 있기 생이 조차 놀려대네
애들아 양동이 가져와 왕미꾸리 잡아오게
* 망룡산(望龍山 442m); 경남 의령 진주, 남강기맥. 길게 누운 용이 의령군 칠곡면 쪽으로 머리를 쳐든 형국이다. 정상은 001, 012 기지국이 있는데다, 배밭, 감밭이 조성돼 농약과 비료 냄새가 진동해 기분을 잡쳐버렸다. 계곡 윗물을 호스로 끌어 쓰기에 그나마 얕은 계류는 겨우 물이 흐를 정도여서, 당찬 용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 용유천수조하희(龍遊淺水遭蝦戱) 호락평양피견기(虎落平陽被犬欺); 용도 얕은 물에서 놀다가는 새우에게 조롱을 당할 수 있고, 호랑이도 평지 드러난 곳에 떨어지면 개의 속임을 당한다(증광현문 92면).
* 용은 봄이면 구름 위서 놀고, 가을이면 물속으로 숨는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제 168면.
22. 산쟁이의 탐욕
청솔 순(荀) 마다하고 갈잎 보고 껄떡거린
혼자만 군자(君子)인 체 인두겁 쓴 송충이
그 질긴 산줄기까지 야금야금 파먹네
* 산성산(山城山 741m); 경남 의령 합천, 남강기맥. 정상부는 한 길이 넘는 억새밭으로 마루금 찾기가 힘들다. 봄 진달래 군락도 좋고,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이름도 고운 ‘꾀꼬리등‘ 송림에 활엽수 떡갈나무가 잠식(蠶食)해 들어오니, 기상 고온화(高溫化)에 따른 수목의 천이(遷移)현상이 우려된다.
* 송충이가 갈잎 먹어도 될까? 탐욕으로 눈이 어두운 질긴 송충이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 념일방일((拈一放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북송 사마 광(司馬 光)의 자치통감에서)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제 248면.
23. 억새의 패덕(悖德)-선시
왕등이 죽은 벽계(碧溪) 비마저 차가운데
파리한 음부에다 윤간(輪姦)하는 패륜아(悖倫兒)
취모검(吹毛劍) 슬 들이대자 고니 떼로 난 억새
* 한우산(寒雨山 835m); 경남 의령 합천, 남강기맥. 찰비산이라 부름. 찬비가 많이 내린다는 찰비골 위쪽은 정상 근처까지 임도가 꾸불꾸불 나있다. 산을 덮은 억새숲이 일대 장관을 이루며, 봄에는 철쭉이 아름답다. 맑은 개천 벽계입구(저수지)는 유원지가 들어섰다.
* 왕등이; 피라미의 수컷, 생식 때가 되면 몸 양편에 붉은 무늬가 나타남.
* 취모검; 털에 대 훅 불면 단번에 두 동강 난다는 명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닌 반야의 지혜를 비유한 말(벽암록 제100칙 ‘파릉의 취모검’ 본칙 주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山詠 제 1-595(43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4. 솥 훔치려는 자
언양성(彦陽城) 삼십 리 밖 화강암 우뚝 솟아
종묘(宗廟)의 보기(寶器) 마냥 번쩍번쩍 빛나는 솥
똥 묻은 도둑고양이 차마 범접(犯接) 못할 걸
* 정족산(鼎足山 748m); 경남 울산 양산, 낙남정맥. 풀이하면 솥발산임. 옛날 영남 방어를 맡았던 언양읍성은 약 12km 떨어져 있다. 정상은 흰 화강암이 솥발처럼 근엄하게 버티고 있다. 정족이란 발이 셋 있는 솥을 말하는데, 흔히 세 곳에 할거(割據)하여 삼자(三者)가 대립함을 비유한다.
* 지금 우리 정치판을 보라! 영남, 호남, 충청 세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망국적인 지역 할거주의(割據主義)가 언제 쯤 사라질는지? 선동(煽動)정치, 붕당(朋黨)정치, 가신(家臣)정치 등 구시대의 폐습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제 369면.
25. 석비(石碑)가 된 산
나라의 스승일까 저 솔은 한 푸르고
가파른 오르막은 순교자의 길이기에
흩어진 산뼈를 모아 석비 하나 세우리
* 국사봉(國師峰 488.7m); 충남 예산, 금북정맥. 날등의 솔숲이 좋고 가파르다. 정상은 폐묘(廢墓)가 있고, 능선이 산만해 위엄을 갖추지 못했다. 개화기에 외국인 선교사가 몸을 숨겼다가 들켜 순교한 사연이 있는 천주교 성지로, 신자들이 많이 찾는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68(90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6. 甲山 르뽀
이름이 아주 멋져 테러를 당했구나
뇌수는 파헤쳐져 낙엽 위에 뒹굴고
흩날린 석회가루는 탄저(炭疽) 마냥 역겨워
* 갑산(775m); 충북 단양. 정상부는 시멘트 원석 채취로 높이 50m 정도 사라졌고, 희뿌연 석회석 찌꺼기와 흰 가루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다. 산 서쪽도 수송로 건설로 보기 흉하게 파괴된 데다, 현대시멘트 단양공장이 들어서 산의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편 ‘제천시 시계(市界) 등산’ 이란 낡은 리번이 하나 달린 걸 보면, 예전에는 꽤나 괜찮은 산이었나 보다! 이름이 하도 좋아 갔다가 실망한다. 현대시멘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이런 산 하나를 살 수 있을까? 우문우답(愚問愚答) 해본다.
* 묘하게도 이 시절 탄저병을 옮기는 백색가루로 테러를 가한 일이 종종 있었고, 어떤 경우는 밀가루로 판명된 일도 있었다.(2001. 11. 28) 식물의 탄저병은 석회가루로 만든 브로드 액으로 예방한다 함.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제 55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