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의 생각도 믿는 자의 생각인데 내가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것. 기복의 전제는 내가 강화돼야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인데 생각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팔복은 내가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대로 나의 길을 이끌어 가신다. 이끄심과 섭리와 주권을 강조한다. 내 뜻과는 별 관계가 없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면 훨씬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온유를 성격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대가 세지 않은 사람, 그래서 온유를 온순함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온유한 자'는 헬라어로 ‘호이 프라에이스’(οἱ πραεῖς). 태생적인 DNA는 관계없고 야생말이나 다른 짐승을 길들였을 때를 온유라 한다. 영어로 Controled power. 또는 power under control. 통제된 힘이라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온유란 광야와 고난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을 붙드는 것이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온유다.
제일 먼저 온유하다고 표현된 사람 사람이 모세다(민수기 12:3). 모세의 온유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온유함은 아니다. 성격이 대쪽 같았고 불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이 된다. 그래서 온유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다룬다.
전처인 십보라가 죽은 것 같다. 그래서 새 아내를 얻었는데 구스 여인이었다. 그때 누나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였으므로 아론과 더불어 모세를 비방한다. 결혼을 빌미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하나님이 너하고만 이야기하시냐. 우리는 선지자가 아니냐” 이게 본심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정상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누가 적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약해졌을 때 공격하는 사람 사람들이 있다. 고난도 힘든데. 믿었던 사람들이 공격한다.
모세의 본래적인 성격을 놓고 보면 분노하고 극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모세가 그때 미리암과 싸우지 않고 자기 사명을 감당한다. 분노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기 사명을 다한 것, 이것이 온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셨다. 우리 인생에도 up and down이 있다. 사업이 안 된다거나 돈이 바닥나거나 직장에서 잘리면, 고난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때. 사명을 내팽개치고 멱살 잡고 싸우면 온유함이 없는 것. 온유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까지 참는 것. 하나님이 분노하시니까 미리암이 문동병에 걸렸다. 나중엔 고쳐 주셨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참는 것이 온유다. 기준도 하나님이다.
골리앗과 싸워야 할 다윗도 형 엘리압과 싸우지 않았다. 형이 ‘전쟁을 구경하러 왔냐’고 욕한다. 그때 형과 싸웠다면 욕만 먹었겠지만, 다윗은 신경 쓰지 않고 골리앗과 싸웠다. 그러니 엘리압은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고 있을 때 그것이 다윗의 온유함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꼭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럴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이 기준이 돼서 사명을 이루고 나가는 것이 온유한 사람의 특징이다. 온유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준을 지켰더니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니까 다 끝난 것.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시면 이렇게 될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기준이 되면 사람들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부부 생활도 쉽지 않다. 남편에게 순종하라 했는데 예수를 안 믿는 남편이다(벧전3:1-4). 아내는 믿는데 남편이 안 믿으면 기준이 다르니까 평안할 리가 없다. 아예 말을 안 해 버리던지 무엇을 결정할 때도 다른 기준으로 하니까 힘들다. 그때마다 충돌하고 부딪히지 말라.
가정에서도 다른 기준으로 살 수 있다. 그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을 가지고 살라는 것.
말씀은 썩지 않는다(벧전1:23). 그런데 말씀 외에는 다 썩어질 것이다. 썩지 않을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나게 된 것, 또 썩지 않을 것이 금보다 귀한 믿음이다. 온유함은 인내와 비슷한데 온유로 계속하면 나쁜 것은 다 없어지고 좋은 것은 남는다. 가정도 처음에는 남편과 충돌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 행실로 말미암아 남편을 구원하게 된다. 남편뿐만 아니라 주변 가까이 있는 사람들까지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온유함은 복중의 복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 온유함을 구하라.
이걸 이사야는 심지가 견고한 자로 표현한다(사26:3). 환경에 따라서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별하면 맨날 감사와 원망으로 산다. 그런데 온유한 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심지가 견고하다, 그러니 마음에 평강이 있다. 외부적인 상황들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 사람들은 견고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다. 온유는 모든 불안과 공황 장애를 다 이기는 힘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아라.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을 말한다(요14:1-2).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셔서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있다. 그런데 물질이 더 있고 덜 있다고 해도 별 차이 없다. 우리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는 것은 천국이다. 그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
이 땅을 많이 얻겠다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코미디다. 더 줄 수도 있고 덜 줄 수도 있는데 그것은 게임일 뿐이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다.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을 이루는 일은 땅이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갈 곳이 있다. 이 땅에서 너무 유능하거나 편해지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기준으로 사는 것이 우리에겐 너무나 귀한 일이다. 인생은 모레 시계다. 무조건 온유함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럼 이 땅뿐 아니라 천국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