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강인철(한신대 교수)은 무려 800여쪽에 달하는 ‘경합하는 시민종교들’(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을 통하여 대한민국 형성 과정에서 민족주의, 애국주의, 반공주의 등이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저자의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식 개념인 ‘시민종교’로 꿰맞춘듯한 점이 거슬린다.
일단 대한민국에서는 시민사회의 출현이 늦었다. 4.19 이후 잠깐, 박정희 사망이후 잠깐 시민사회가 들썩하다가 군부의 폭압에 의해 그냥 국민으로 남고 말았다. 한국에서 시민의 본격적 출현은 1987년 이후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든든한 후원에서 출범한 ‘한겨레 신문’도 민족주의적 색채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 한겨레는 하나의 민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인철은 시민종교가 아니라 국민종교라 불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방대한 사료는 모든 분야에서 유익한 자료들이다. 특히 요즘같이 ‘건국’과 ‘국적’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그 자료들은 더욱 빛을 발한다.
예컨데 화폐의 독립도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1945년 8월과 10월에는 은행권에 급히 무궁화 바탕무니를 넣는 정도로 대체했다. 1946년 7월 1일 조선은행은 드디어 일본색을 일소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인쇄방식을 옵셋 인쇄에서 활판 인쇄로 변경한 조선은행 정(丁)백원권을 발행하였다. 즉 앞면의 일본 정부 휘장인 오동꽃을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로 바꾸고…강인철, '경합하는 시민 종교들'
미군정과 협약이 있었겠지만 발빠르게 화폐의 독립을 이루어 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방되자마자 삼일절과 개천절이 국경일로 선포되었고 한글날은 법정공휴일이 되었다. 1945년 한글날 행사 이후 주요 도로명이 한국의 위인 이름으로 대치되었다. 해방 바로 다음날인 8월 16일조선 중앙방송국은 애국가를 조선의 공식 국가로서 선포했다.
1946년 8.15 1주년 기념식에는 대한제국의 인장 옥쇄 반환 행사가 열렸다. 하지 중장(군정사령관)이 일본 도쿄의 맥아더사령부로부터 반송해 온 한일 병합 조약문과 한국정부의 인장, 옥새, 8개 기타 국치 서류 등이었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안재홍이 미군정청 민정 장관으로 있으면서 기획한 일이다. 때문에 행정의 원할한 이행을 위해서 친일관료가 필요했다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는 ‘일제 부역자들의 상식과 반상식’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그러므로 모든 센스, 모든 판단, 모든 의견이 다 존중받을 수는 없다. 몸을 파괴하는 암세포도 암세포로서 의견이 있다. 그러나 암세포의 의견을 그대로 두면 몸 전체가 암세포에 잡아먹힌다. 그 암세포 같은 반상식이 권력의 위세를 업고 발호한다. 일제 부역자의 후예들이 선조들을 대신해 제2의 반역에 나선 꼴이다. 반상식이 상식 노릇을 하면 공동체의 윤리성은 존립의 토대를 잃는다. 윤리가 죽은 공동체는 공동체로서도 죽는다. 상식을 희롱하고 공동체를 모욕하는 반공동체 세력을 공적 공간에서 퇴출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식이다.
이러한 반상식이 2024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반상식파가 ‘숭앙’하는 이승만 조차도 1948년 광복 3주년 행사에서 정부 수립이 아니라 40여년만의 ‘정부회복’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는데도 말이다.
1945년 9월 9일 총독부 건물로 사용되던 중앙청에 미군성조기가 게양되었다. 그러면 미군정기 우리의 국적은 미국이 되는가? 미국과는 국권을 넘겨주는 조약이 없었으니 헛소리 말라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모든 조약은 무효가 되었는데 일본 국적이었다는건 말이 되고?
미군이 중앙청에 걸었던 1946년 1월 4일이 되어서야 태극기로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