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월요일, [마르6,53-56]
-류해욱 신부-
성 바오로 미키 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은 일본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축일입니다. 우리 103위 성인들의 순교 축일의 명칭이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 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듯이 일본의 26위 순교성인들 대표의 이름으로 성 바오로 미키가 축일 명칭 앞에 붙은 것이지요. 성 바오로 미키는 예수회원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을 밑거름으로 이루어졌듯이 일본에도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숫자로만 말하면, 일본이 훨씬 많지요. 그들의 신앙이 더 깊었다기보다는 정치적인 요인과 민족성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물론 교회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지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 이냐시오의 동료인 예수회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이미 16세기에 일본에 선교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기에는 일본은 너무나 척박한 땅이었어요. 막부시대에 정치적인 투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있던 지방의 주민을 몰살하는 일본인의 잔인한 성향들이 더 많은 순교자들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요. 일본의 순교자들을 대략 3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우리 순교자들 수는 학자들마다 조금 다릅니다. 가장 순교자 숫자를 많이 보는 학자의 견해도 일만 명 정도로 보는 것에 견주어보면 30만은 엄청난 숫자이지요.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은 나가사키의 성인들이라고도 불립니다. 나가사키 해안 근처 나가사키 언덕에서 마치 주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순교한 분들이랍니다. 나가사키는 일본 지역교회에서 가장 신자수가 많은 교구이기도 하지요. 나가사키 언덕에 세운 순교비 안쪽의 기념관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관음보살상 모습으로 만든 성모상과 ‘후미에’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가보고 싶지만 아직 못 갔습니다. 훗날 가보게 되리라 믿으며... ‘후미에’는 ‘침묵’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졌지요. 오늘 그 영화 ‘침묵’을 용산 영화관에서 합니다. 박해자들이 사람들 중에서 천주교 신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만든 예수님 모습을 그려 넣은 동판을 말합니다. 예수님 모습의 동판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단순히 그 이미지이지만 차마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것을 못 밟으면 신자라는 증거이니까 순교를 당했던 것입니다. 후미에는 말하자면 천주교 신자들을 잡기 위한 일종의 덫이었습니다. ‘후미에’의 상징적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밟기보다는 기꺼이 순교를 택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26명의 천주교인들을 사형시키기 위한 나가사키 언덕의 형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란치스꼬 회원 6명과 예수회원 3명, 일본인 신자 17명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모두 흔들림 없이 평화 안에서 당당하게 십자가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마르티노 수사는 “주님,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고 주님처럼 ‘시편’을 읊었고, 프란치스코 블랑코 수사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말을 했고, 곤살보 수사도 큰소리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쳤다고 합니다. 바오로 미키는 예수회원답게 그 극적인 순간에도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강론을 합니다. 제가 그 일부를 나누어 드립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판결문은 ‘이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진정한 일본 사람입니다. 나는 일본인이자 그리스도인이고 예수회원입니다. 내가 죽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가 이 이유 때문에 죽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순간을 맞아 내가 진리를 거스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분 중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내 말을 믿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행복해지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청한다고 여러분 모두에게 한 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순명합니다. 그것이 나의 길입니다. 이 길은 나의 원수들과 나에게 폭력을 가한 모든 이들을 용서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도 용서하고 나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합니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도록 청하며 나의 피가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는 비처럼 나의 동포에게 내리기를 바랍니다. 놀랍지요. 우리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사형을 받기 직전에 했던 말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서 외쳤던 스테파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요. 정말 끌려갔을 때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실감나게 합니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말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대신 말씀해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말씀 일부도 함께 보기로 해요. 장안의 구경꾼들이 모인 새남터 형장에서 김대건 신부는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며 신앙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귀를 기울려 내 말을 들어주시오. 내가 외국인과 만난 것은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그 천주를 위해서 나는 죽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원한 생명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영생을 얻으려거든 천주를 믿으십시오. 천주는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바오로 미키와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사형장 주위에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주님을 증거 하면서 전교를 하고는 함께 주님의 품으로 향하는 동료 순교자들을 격려했습니다. 함께 순교를 당하는 동료들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골고타 언덕에 어둠이 내렸던 것처럼 나가사키 언덕에 어둠이 내리고 26명의 아름다운 영혼들은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됩니다. 눈이 내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며 그 장면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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