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개항을 했을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물건중에 영국산 면직물이나 모직물이 있었다고 했다.
이 원료들은 영국에서도 획득했겠지만 인도나 미국 아니면 호주에서 대량으로 확보하여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인구가 많은 나라에 팔았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이 지역엔 공장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기 공업에서 방적과 방직공업이 차지 하는 비중이 높았고 80년대 말까지 마산이나 대구 대전 청주 안양 같은 도시에서 발달하였으나 90년대가 지나면서 다른 나라로 많은 공장들이 이전을 했다.
특히 명주실을 얻으려면 그 고생이 엄청났을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엔 군수품으로 공급이 되어야 해서 많은 이들이 농촌에서 뽕나무와 함께 누에를 많이 치고 이후에도 농촌의 소득원 중 하나 였다.
그러나 석유로 만든 레이온 (나이롱)이 나오면서 진짜 비단은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줄었다.
과거 집에서 짠 명주라며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옷감을 보면 올이나 짜임새가 정교하지 못하지만 수고로움과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정교하고 매끈한 공장의 제품과는 다른 작품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고 세월이 지나 빛이 바래져 있었고 돌아가시기 전 정리를 하셨는지 언제부터 보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에서 우리나라 광목을 쓰자는 광고가 있었고 농촌에서 수작업으로 했던 직물류들이 이젠 명맥도 끊기고 공장에서 만든 것들도 국산은 사라진 것 같다.
한때는 제국주의 국가의 주력이던 산업의 이젠 약소국이나 저임금국가의 산업이 되었다.
돈을 대신하고 돈의 척도를 정하던 옷감 한필...
단순한 천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더 다양한 소재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