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먹으면서
안 영 신
아침부터 익숙한 냄새가 코에 스며든다. 아들이 라면을 먹고 있다. 인스턴트식품 특유의 냄새가 가끔 비위에 거슬리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라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먹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라면을 먹고 나서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평소 라면을 먹는 횟수는 일주일에 평균 한 번이고, 많아야 4주에 다섯 번 정도니깐, 안 그래도 이제 다시 라면의 미각이 생각날 때가 되었다.
아들은 젓가락으로 곱슬곱슬한 면발이 길게 늘어지도록 집어 들고 입김을 후후, 분 다음,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면발을 짧고 세게 빨아들여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참, 맛있게도 먹고 있다. 아들이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번, 많으면 네댓 번 정도 라면 먹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떨 때는 쌀이 아니고 라면이 아들의 주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내가 밥이나 빵으로 조반을 챙겨주는데도, 굳이 마다하고 직접 라면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은근히 못마땅할 때가 있다. 인스턴트식품은 몸에 안 좋으니 너무 자주 먹지 말라는 말도 몇 번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물론 그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더는 말리지도 않는다. 하긴 나도 그 나이 땐 라면을 무던히도 많이 먹었으니, 따지고 보면 뭐라고 말 할 입장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사정이 판이했다. 원래 내 입맛에 잘 맞아서 라면을 많이 먹기도 했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본의 아니게 자취생활을 많이 했던 터라, 값싸고 조리하기 편리한 라면을 자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인스턴트식품의 유해성이란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생각날 때마다 라면을 먹곤 했다.
내가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였다. 그보다 육칠 년 전부터 국내에서 라면이 생산되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라면을 먹어보기는커녕 가게에 상품으로 진열된 봉지 라면조차 본 기억이 안 난다.**
라면을 처음 먹던 날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전까지는 국수나 우동의 그것처럼 일직선으로 긴 면발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내게, 라면 봉지에서 나온 사각형의 구불구불한 면발 덩어리는 여간 낯설고 신기해 보이지 않았다. 물에 끓여서 익힌 후에도 여전히 석고상 줄리앙의 머리카락처럼 곱슬곱슬한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나는 아주 새롭고 이국적인 느낌의 면발을 처음 맞이하는 기쁨으로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서 말리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구부러진 면발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귀엽고 앙증맞은 모양새의 면발은 내게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조리의 편의성까지 제공해 주었다.*** 조금 덜 끓이면 쫄깃하고 조금 더 끓이면 부드러운 면발의 식감은 물론이거니와, 구수하고 매콤한 화학 스프의 국물 맛 또한 그 시절의 내 입맛에 기대 이상 부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라면 마니아가 되었다.
비단 그 시절의 나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라면을 좋아한다.**** 애초에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만들어진 대체식품인 라면이 인스턴트식품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현재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잘 팔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가격이 저렴하고 조리법이 간단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꾸준히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라면은 끝없이 변신과 진화를 거듭하면서 질을 높여온 결과, 한국 고유의 매운맛으로 이제 아시아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몇 해 전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그곳의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나라의 매운 컵라면을 사서 먹던***** 날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직도 한국인의 평균치 만큼 라면을 먹고 있는 나는 우리 집 주방과 농장의 작업실 한구석에 몇 가지 종류의 라면을 늘 준비해 두고 있다. 언제라도 구미가 당기거나 먹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바로 조리해 먹기 위해서다. 오래 보관하고 즐겨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점은 물론, 식자재와 나 사이의 공간적 거리나 조리 시간의 단축이란 측면에서도 라면을 따라올 만한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최소한 하루 전이나 반나절 전에 미리 연락하고 만나곤 하지만, 내가 주로 거주하는 공간에 늘 함께 있는 라면은, 나와 생활을 함께 하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들이 외출하자마자 나도 바로 라면을 끓여서 먹기 시작했다. 오늘 먹는 라면은 70년대식 원조 라면이라지만 아무래도 그 당시의 라면 맛과는 상당히 다르지 싶다. 직접 대조해 보지 않은 이상 면발의 차이는 크게 모르겠지만, 국물에 자디잔 닭고기 기름 덩이가 무수히 떠 있던 옛날의 그 라면 국물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의 재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스프의 내용물이나 첨가물을 현대인의 미각에 맞춰서 전과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먹어온 라면인지라, 내게 라면에 얽힌 에피소드나 추억 또한 적지 않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라면을 먹을 땐 국수를 먹을 때처럼 나도 모르는 새 옛날 추억이 소환되거나 그 시절의 아련한 정서에 사로잡히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즐겨 먹는 국수는, 예전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예전의 재료와 방식으로 조리한 것이라서, 그것을 먹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정서를 환기해 주곤 하지만, 현재 먹고 있는 라면은 청소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에 먹었던 그 라면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라면은 국내 수요자만이 아니라 국제시장을 겨냥해서 옛날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상품이지만, 지금도 시중의 국숫집에서 파는 국수는 주변에 한정된 일부 한국인 손님들의 기호와 음식 가격에 맞춰서 만든 까닭에 옛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라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내 주변에 라면 같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날이 갈수록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계속 만나면서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그런 친구, 나와 취향과 정서와 욕구가 비슷하거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언제라도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오래된 친구 말이다.
아동기부터 시작해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 어느 한 시기의 추억이라도 공유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언제부턴가 크나큰 정서적 손실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사는 곳을 너무 자주 또 멀리 옮겨 다니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그것이 이젠 나 자신에게도 더는 변명거리가 되지 않으니 딱할 뿐이다. 인제 와서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엇하리.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여기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본다.
라면 먹다가 뜬금없이 떠오른 우울한 상념 탓에 식욕이 떨어졌는가. 오늘은 라면 한 그릇도 다 못 비우고 남겨야 할까 보다. 그때, 뒤늦게 라면 냄새를 맡고 방에서 나온 딸이 젓가락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온다. 우리 집에선 아빠가 끓인 라면이 제일 맛있어!, 라고 하면서. 그래도 내 라면이 맛있다고 하는 딸이라도 한 명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한국인의 일 인당 연간 라면 평균 소비량은 75개(2015년 통계)로, 주당 평균 1.4개 먹는다고 보면 되겠다.
** 1963년 라면이 처음 시판되었을 당시엔 밀가루 음식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편이었고, 국물도 느끼한 데다가 가격도 비싼 편이어서(식당에서 파는 백반 가격이 30원, 짜장면은 20원, 라면은 10원이었다), 라면은 쉽게 대중화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과 함께 우리 입맛에 맞고 값도 싼 상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라면은 급속도로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 라면의 구부러진 면발은 국수의 직선 면발보다 면발 가락 사이로 뜨거운 물이 더 잘 스며 들어가서 골고루 익게 되고, 조리 시간도 단축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 세계 최대의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한 사람당 일 년 라면 소비량은 단연 한국이 압도적으로 세계 제1위다.
***** 당시 일반 신라면은 한화로 약 10,000원이었고, 신라면 블랙은 13,000원이었다.
첫댓글 저는 일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일 정도로 멀리하는 편인데요.
그 냄새는 마약처럼 강한 유혹이죠.
가능하면 안 먹는 게 좋죠. 언제부턴가 그 냄새가 싫어져서 많이 안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TV나 주변에서 라면 먹는 장면을 보면 꼭 먹고 싶어 진다니까요.
요즘 삼시세끼를 내가 하는데 점심 때는 무조건 라면으로 때우죠.
평소 면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벌써 한 달 이상을 라면이 점심이네요.
직접 조리를 하신다니 아무래도 라면을 많이 드시겠네요.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셔서 햇반이라도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점심도 라면 먹었어요. 너구리 ㅎㅎ
어제는 짜파구리 ㅋㅋ 어찌보면 난 라면 마니아가 아닌가 싶어요. ㅎㅎ
이틀 연속 라면을 드신다면 거의 라면 마니아 급인데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개 이상은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면은 가끔 진리죠ㆍ요즘 코로나19 관련 학원 휴원하고 자주 먹게 되네요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배달 음식이나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빨리 종식되어서 모든 활동이 정상화돼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70년대식 원조 라면- 보기만 해도 반갑네요.
군대 시절엔 커피포트에다 라면 끓여서 소주 안주로 먹기도 했는데, 그것도 고참들만의 특권이었죠.
우리집에 있는 원조 삼양라면은 주황색 봉진데.... 노란색 봉지 삼양라면 사러 마트에 가야 하겠어요.
박인주 시인 댓글이 사라졌네요. 미안해요.....!!
실수로 댓글이 사라졌네요.
긴 댓글 다시 쓰느니...
저는 라면돌이랍니다
소주 안주로도 딱으로 여깁니다.
신상품 라면은 간?을 다 보구요.
포장지 얼굴이 바뀌어도
간을 볼 정도로
라면돌이 입니다.
최근 얼굴이 바뀐
윈조라면 사진 보내 드립니다
대단한 라면 마니아군요.
전에 면 종류 좋아한다는 내용의 시도 본 기억이 나요.
이젠 좀 줄여야 할 때가 된 것도 같은에..... 건강 유의하세요!
@화원 안영신 네..항상, 긴장하고 염려도 하는데,
이 놈의 눈길과 손길,입길이...
병원 의사도
면종류 삼가하라고 했거든요.😌
읽다보니 군침돌고 침 넘어가네요. 고교 1학년이던 1968년 여름방학 때 친구 네 명과 지리산 쌍계사 놀러가서 처음 라면 끓여먹었는데, 약간 노란 냄새가 났던 기억입니다. 요즘 나온 70년대 원조라면에서는 그 그리운 노랑냄새가 안 나더군요. ㅎ
1972년 원주시내에서 이등병 복무할 때, 밤중에 고참이 라면 먹고싶다면, 내무반 돌담장에 가서 기대어 5미터 아래에 있는 민간 구멍가게에 주문하고 밧줄로 끌어올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내무반에서 끓여먹지 못 했어요.
군생활 때 제일 맛있었던 급식 메뉴가 라면이었습니다. 간식으로도 자주 먹었죠. 졸병 땐 라면 심부름하며 고생한 적도 있었지만, 나중엔 고참들 끼리 몰래 모여 앉아 술안주로 끓여 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