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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은 내세를 의식하며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마5:21-24)
2026, 10/4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5:21-24절 말씀으로“신앙인은 내세를 의식하며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선량하고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은 길거리 CCTV가 아무리 많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범죄자들로부터 보호받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반대하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범죄자와 잠정 범죄자들, 힘 있는 자들로 이들은 인권침해를 앞세워 반대합니다. 그런데 이 CCTV와 같은 검찰이 범죄자들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 가지려는 자들에 의해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범죄를 해도 안되고 당해도 안 됩니다. 경찰은 조사받는 단계부터 변호사 대동을 바란답니다. 앞으로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검찰이 경찰에 넘긴 사건만도 몇십만 건이라 사건처리가 불가능해 권력자들 말고 일반인은 법의 보호받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권력자 수사가 불가능해져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국회의원이 되고, 이 검찰을 없앤 대가는 힘 없는 백성만 받게 될 것입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지 않고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단세포적으로 국가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여러분이 기도하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음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22절)
둘째로, 신앙인은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23-24절)
셋째로, 신앙인은 하나님과 관계만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23-24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내세를 의식한다면 하나님과 형제들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음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아멘.
오늘 본문에 형제에게 분노하면 심판받고, 형제에 대해 바보 멍청이라 하면 공회에 잡혀가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면 지옥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진짜 이 말씀대로 형제를 욕하고 분노하면 지옥 가느냐? 이 문제는 다음에 논하고,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주께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지옥이 실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셨다는 말씀을 말씀드립니다. 사도들 또한 지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수없이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지옥은 유황불이 세세토록 타는 곳이며(막9:43), 냉수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극한 갈증의 곳이요(눅16:24), 천국을 뻔히 보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절대 불행과 고통의 세계라고 말씀합니다(눅16:25-26).
천주교는 영혼이 지옥에 가더라도 가족들이 헌금을 많이 하면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말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고, 일단 지옥으로 가면 그 어떤 경우에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옥은 그 어떤 희망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절망의 곳입니다.
사람이 희망이 있을 때 고통과 어려움을 견딥니다. 지금은 희망이 안 보여도 상황이 변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견디는데, 그런 희망이 사라지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극한의 절망과 고통만 있어서 그 누구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도 한 백년 고통당하다 하루쯤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영원토록 나오지 못하고 불이 이글거리는 곳에서 고통만 당하니 정말 안 됐습니다.
불가마 한증탕에 들어가면 5분, 10분도 못 견디고 나오는데, 어떤 이는 참 오래도 있어서 하나님이 놀라 지옥을 더 뜨겁게 리모델링 공사한다는 풍문이 있었는데 지금쯤은 공사가 다 끝났겠지요?
그럼에도 지옥과 천국 등 영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3초만 손을 올려놓으면 잠깐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아주 조금은 맛볼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실제 지옥은 가스레인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이 겪을 수 없는 가장 큰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죽지도 않고 영원토록 받는 무서운 곳입니다.
요즈음 공황장애 환자가 많다는데, 여러 가지 정신적 스트레스가 과중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이 공황장애는 본인만 큰 공포를 느끼는 것이라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인들은 지옥을 알고 있어서 공포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는데, 주님도 사도들도 수없이 이 지옥을 언급하셨으니 이 지옥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지옥의 존재는 나를 돌아보며 신앙에 경각심을 갖게 해줍니다.
또한 잘못된 행실을 바로 잡아주고 주님께 붙어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동차라면 천국은 자동차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지옥은 자동차를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가 됩니다.
이처럼 지옥의 존재는 우리가 더욱 죄를 경계하고 경각심을 갖게 해줍니다.
또 이런 지옥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관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악인은 누가 심판합니까? 이런 사실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의식하여 절제하고 겸손하게 신앙생활 잘해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23-24절)
본문 23-3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아멘.
본문 말씀은 불화한 형제와 이웃과의 관계를 먼저 화목 하라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이 가르침은 당시로서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교해서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예배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마15:4-6). 오죽하면‘고르반 제도’가 나왔겠습니까? 부모 공양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으로 공양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겼습니다.(막7:11)
유대인들이 만든 이 고르반 제도가 오늘 주님 말씀에 비추어봤을 때 완전 잘못됐음을 알 수 있는데, 저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우선할 것으로 형제와 이웃과의 화목을 말씀합니다. 사실 오늘 주님의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뜻이자, 율법의 본래 의도입니다.
하나님도 이사야 1:10-17절 말씀을 통해서 불의한 상태로 당신께 제사 드리는 걸 역겹다고 말씀하셨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도 당신 뜻에 순종하지 않고 드린 제물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삼상15:22).
여러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섬기는 신도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돈을 좋아해 많이 바치면 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바치는 자의 마음과 행실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헌물이나 헌금보다 그걸 드리는 자의 마음과 삶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가인의 제물을 열납지 않으셨고, 타락한 이스라엘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데(암5:21-24), 이렇게 악인의 소산은 거절하신 것입니다.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듯이 나를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곧 자신을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드리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히13: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과의 화목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가장 기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형제와 이웃과의 화목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신앙인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하고, 가능한 분쟁 유발자가 아니라 이삭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가뭄 때문에 잠시 블레셋에 내려가 우물을 파고 터를 잡으려 할 때마다 현지인들이 우물을 메우며 방해했지만, 그럼에도 이삭은 무려 5번이나 이사 다니며 그들과 분쟁을 피합니다. 만약 이 같은 일이 우리에게 똑같이 일어난다면 아마 참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회개합시다.)
여러분!!! 오늘 주님은 화목을 말씀하십니다. 화목은 추운 겨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가 봅니다. 이렇게 형제와 이웃과의 화목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웃과의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다면 예배에 문제가 생기니 화목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관계도 좋아지고 복도 따라오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니 이런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신앙인은 하나님과 관계만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23-24절)
본문 23-2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아멘.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듯이 형제와의 관계도 중요함을 알았을 겁니다. 오늘 주님은 예배드리려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씀으로 당시 제단에 예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중요한 신앙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예물 드리는 것, 예배드리는 것을 멈추라 하셨는데, 그러면 주님은 하나님께 예물과 예배드리는 걸 싫어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고,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 하나님께 상달되길 원한다면 형제와의 관계도 돌아보아야 한다는 걸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좋은 예가 야곱과 에서인데,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채 도망갔다가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때 가장 두려운 사람이 형이었습니다. 형이 두려운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고, 그 결과 형 에서가 달려와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화해가 이뤄집니다. 형과 먼저 화해한 야곱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창33:20)로 명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은 야곱이 먼저 깨어진 형제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는‘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도 좋지만, 네 형제와의 관계도 먼저 돌아보라.’는 오늘 본문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어떤 사람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놓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싸웠습니다. 손님이 오자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지만, 음식을 준비할 때 싸웠던 일이 생각나 기쁨으로 손님을 환영할 수 없는 마음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이와 비슷합니다. 찬양도 기도도 헌금도 하고, 말씀도 듣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내가 먼저 사과 못해.’‘저 사람이 먼저 찾아와야 해.’이런 마음이라면 예배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을 예수님이 건드리신 것입니다.
롬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표현은“할 수 있거든”입니다. 모든 관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먼저 사과해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화목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엡4:26절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이 말씀도 분노가 생기는 것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분노를 마음속에 오래 붙잡고 있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상처를 계속 묵혀두면 작은 병이 큰 병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용서가 필요한데, 골3: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용서는 그 기준이 어디까지일까요?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요? 골3:13절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용서받을 자격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해 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누가 먼저 화해하러 가야 할까요? 여기에서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나오는데, 예수님은‘형제가 먼저 와서 사과하면 가라’가 아니라,‘네가 먼저 가서’입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용서고, 사랑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합니다.‘저 사람이 잘못했으니 저 사람이 먼저 와서 용서를 구해야 해’인데, 그러나 주님은‘네가 먼저 가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화해는 누가 옳으냐를 따지기보다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으냐를 따지면 화해는 절대 안 됩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해가 급하다면 정의를 따지고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예수님이‘예물을 버려라’가 아니라 "예물을 두고 먼저 화목하고 다시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한 부분입니다. 예배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예배와 함께 형제 화목은 같이 가는 동전의 양면이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삶을 완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요일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이 말씀도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이 같다는 걸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드리면서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요? 얼굴이 떠오르거나, 이름이 떠오를 수 있고, 오래된 상처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먼저 연락할 수도 있고, 사과할 수도 있으며, 용서해 주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도 돌아봄으로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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