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에피소드를 겪은 K의 노가다 생활도 이제 30년에 이르렀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노가다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여 K는 소위 기술노동자(거푸집 대목 혹은 형틀목수)가 되었다. 따라서 임금도 일반 잡역부보다 곱절을 더 받는다고 하였다. 숙소도 독서실에서 TV를 설치한 원룸으로 이사하고 퇴근하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도 가끔 사다가 삶아 먹는 등 생활이 대폭 개선되었다. K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노동을 한다. 추운 겨울에는 제주도나 여수 등 남쪽 지방에서 일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K는 원래부터 노동일을 하지 않은 까닭에 하루 일하면 다음 하루는 쉬어야만 한다. 일하고 난 뒤에는 온 몸이 쑤신다고 하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화이트칼라 출신인 K는 노동판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드문 기인이다.
그는 겨울에는 노동판에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아, 주유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주의하여, 휘발유를 넣을 차에 경유를 넣어 엔진이 망가지게 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는 변상을 하고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한번은 노동판에서 일을 하다가 대못에 발바닥이 크게 찔려 산재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병실에서 간혹 음료수 등을 사먹기 위해 복도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그 때 소매치기나 병실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인간이 비밀번호를 뒤에서 눈여겨보다가 종이에 적어놓고, K가 없는 틈을 타서 K의 카드를 훔쳐 현금을 전액 인출해 버렸다. 그 돈은 정말 K가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한 소중한 대가였고, K에게는 몇 달 동안 살아갈 큰돈이었다.
K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K의 서울고교 동기인 서울대 법의학전문 교수 모씨가 소식을 듣고 병실을 찾기도 했다.
K는 은행 다닐 때도 상관 및 직원들과 싸움이 많았다. K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신앙과는 무관한 그의 성질이 노가다 판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옮겨 다니는 공사판마다 마찰이 일어났다. 그래서 K는 공사판 동료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줄 의자를 타고 건물외벽을 오르내리며 혼자 작업하는 일을 자원하기도 했다. 또한 험한 노동판 일을 하다보면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K는 나에게 정말 죽을 뻔한 일을 3번 겪었다고 했다. 그는 그 때 기적적으로 위험을 피해 갔는데, 그 것은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특별히 구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자그마한 경상은 하루에도 두세 번 정도 다친다고 하였다. 그런 저런 힘든 노가다 인생 속에 K도 나이가 들어 공사판에서 채용을 꺼리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K가 공사 일을 못하는 나이에 대비해서 65세 이상, 부양해 줄 가족이 없고,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정부가 주는 기초수급제도를 K에게 설명하고, 그가 65세가 되기 전, 부산에 있을 때 인근 주민자치센터에서 신청을 하게 했다. 그는 그 후 노가다판에서 완전 은퇴를 하고 그 때 신청한 기초수급금 매달 60여만 원을 받아 월세 단칸방에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 생활했었다. 최근에는 몇 달 동안 전화를 안 받아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전화가 되어 알아보니 그동안 몸(소화기 계통 병과 탈장)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기초수급자는 입원비가 무료라고 했다. K는 항상 내게, 내가 소개해준 기초수급 덕분에 노가다를 안 해도 살아간다고 고마워했다. 몇 십 년 동안 부모형제도 없이 험하기 짝이 없는 노동판 일을 하다 보니 그는 몸이 성한 데가 없는 것 같았다. 치아도 거의 다 빠져 남은 치아 가 겨우 반개이다. 그는 그래서 찌개에 밥을 말아먹거나 죽 위주로 식사를 한다고 했다. 반개 남은 치아마저 없어지면 틀니를 하겠다고 했다
K는 지금도 나와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지금은 은평구 역촌동에서 LH공사의 방2개짜리 전세임대 집에서 정부의 지원으로 무상(임대료 70만원상당)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기초수급비(생활비)도 월 80만원을 지급받음으로써 외로움을 제외하면 편안하게 혼자서 노후를 잘 보내고 있다.
첫댓글
늦게라도 정부의 복지정책 수혜자로,
한 몸 뉘일 곳이 있고,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아프면 병원 갈 수 있게 되었다니
참말로 다행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인생이네요.
이 분의 경우를 보면 삶의 성패는 학력이 아니고 성품에 달려있음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제 이종사촌 오빠도 연대 출신인데 남의 밑에서 일을 못하는 성품 탓에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못하고 사업을 하다가 부모 재산 다 말아먹고 이혼하고 신용불량자 되어 우리 이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어요.
그 오빠의 여동생은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지방대 출신 신랑에게 시집갔는데,
그 남편이 평생 성실한 애처가에다가 돈도 잘 벌어서 엄청 호강하고 있고요.
친구분 이야기 너무나 안되셨습니다..
다저스님 덕분에
기초수급자 혜택으로
병원치료도 무료로 받으시고..
나라에서 집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살아 가는데엔 걱정이 없네요...
인정이 많으신 다저스님께서 살펴주셔서 그분은 정말 기사회생 삶을 사시네요.
감사한 글월입니다ㅡ
그때는 인서울이 아니었기에 부산대 경북대도
어마어마하게 쎘어요
동네형 부산대 영문과 합격해서
동네잔치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대 영문과 나와서 환은까지 갔다가
그런 인생을 사는거 보면 타고난 팔자가 있나봅니다 이런 사연 재밌다 하면 안되는데
두편다 재미나게 순삭했어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되세요
K가 노가다를 시작하지 않았고 거의 노숙인이 되어 거리를 헤메고 있을 때 제가 K가 너무 안쓰러워 제가 아는 미군장교와 같이 K를 불러내어 미8군 영내 장교클럽에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최고급 뉴욕스테이크를 양주와 같이 대접했는데 마치 사흘을 굶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먹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만약 이 모습을 돌아가신 K의 부모님이 봤으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ㅡ
그리스도는 네가 고통받는( THE LEAST MAN) 네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면 결단코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마태복음 25장 31절이하에 말씀하셨습니다.
S대 나오고 좋은 직장생활 하다
노가다를 전전하기 까지 사연이 있겠지만
이세상 혼자 살아가는것이 아니기에 좀더 온화한 성품으로
어우러져 살았더라면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살진 않았을텐데
안타깝네요..
그래도 다저스선배님께서 도움주셔서 정부의
지원도 받고 참 감사한 일입니다~^^
보라님의 따뜻한 마음 가숨에 꽃힙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