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부루나 칼럼 Ⅰ
명상 #179
2023. 5. 31
마음의 귀
우리는 잠에서 깨어 있는 동안은 거의 어느 순간에나 무슨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잠결에서도 무슨 소리가 들려 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깥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로는 눈으로 보거나 보이는 것이 가장 많겠지만 그 다음이 소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냄새, 맛, 닿음이 있겠지요.
눈, 귀, 코, 혀, 몸으로 들어오는 이 다섯 가지 정보에다가 우리 뜻[意]의 대상인 법(法)을 더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육경(六境)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우리 귀에 들려 오는 소리에는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즐거운 소리도 있고 괴로운 소리, 그저 그런 소리도 있겠지요.
그 가운데 중생이 괴로워하는 소리도 엄청날 것입니다.
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자세히 듣고 내 안의 눈, 지혜의 눈으로 보고 살피는 것을 ‘관(觀)한다’ 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 세상 중생들의 괴로워하는 소리를 빠뜨리지 않고 관하시는 분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이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중생의 소리를 다 듣기는 커녕 내 바로 이웃의 소리도 흘려 듣기 일쑤입니다.
그 뿐인가요? 때로는 내 안의 소리, 양심의 소리, 생생한 기억의 소리에도 애써 귀를 막고 딴전을 폅니다.
어린 시절, 재미있는 만화를 보느라 홀딱 정신이 빠져 있었을 때의 생각이 납니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두 번 세 번 불렀건만 아무 소리도 아예 귓구멍에 들어오지를 않았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한층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의 내 귀에는 무슨 소리가 이들에 묻히고 뒤섞여 숨고 지워져 들리지를 않는 것일까요? 나는 시방 어디에 눈이 팔려 있는 것일까요?
무슨 소리를 놓치고 무슨 소리를 관하지 못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눈 감고 조용히 앉아, 마음의 귀를 조금씩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상 #187
2025. 7. 26
탑돌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그 사리를 여덟 나라에 나누어 탑 속에 모시니, 그곳은 사람들이 그 둘레를 돌며 우러러 예경하며 소원을 비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탑돌이가 비롯된 것입니다.
이윽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불교가 전해지자 탑돌이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인도에서는 고귀한 분에 대한 가장 높은 예경법으로 두 손을 모으고 오른쪽으로 그분의 둘레를 세 번 도는 우요삼잡(右遶三匝)의 예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신라시대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밤새도록 탑을 돌기에 이르렀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탑돌이는 이러한 종교적 엄숙성이나 간절함과 함께 남녀노소, 마을사람들의 사교와 흥겨움이 넘치는 일종의 민속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물론 청춘남녀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일연 스님이 쓰신 삼국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서라벌[경주] 흥륜사에서는 해마다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전탑[벽돌탑]을 도는 탑돌이가 있었는데, 어느 해 김현이란 젊은이가 밤이 이슥해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록 탑돌이를 이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서 탑을 도는 어느 처녀와 눈이 마주쳐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처녀는 집에 가겠다고 하고 김현은 바래다 주겠다고 하니 처녀는 한사코 말렸지만 김현은 억지로 처녀의 집까지 따라갔습니다.
작은 초가집에 이르니 처녀의 할머니가 누가 따라왔느냐고 물어 말씀을 드렸더니, 좋은 일이지만 차라리 없는 일만 못하다며 곧 네 오라비들이 올테니 얼른 그 사람을 숨기라고 일렀습니다.
김현이 숨자말자 곧 호랑이 세 마리가 들이닥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면서 잡아먹겠다고 설쳐대었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오기를, ‘함부로 사람을 잡아먹은 죄로 너희 중에 하나를 죽이겠다’고 하니, 처녀는 호랑이들을 다 도망 시키고는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처녀는 자신이 둔갑한 호랑이임을 고백하며, 그대를 만나 너무 행복하지만 자신은 호랑이들의 죄값을 받아 죽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날이 밝으면 저잣거리로 가 사람들을 해칠 테니 당신은 벼슬을 받아 자신을 잡아 죽이는 공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김현이 아무리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으며, 자신을 불쌍히 여긴다면 나중에 절을 하나 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날이 밝자 서라벌 거리에는 커다란 범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했으며, 원성왕은 이 범을 잡는 이에게 큰 벼슬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였고, 김현은 이 범을 해치우겠다고 맹세하여 벼슬을 받았습니다.
김현이 범을 쫓아 숲속으로 들어가자 그 범은 처녀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처녀는 자신에게 상처입은 사람들은 흥륜사의 간장을 다친 곳에 바르고 절의 나팔소리를 들으면 깨끗이 나으리라고 말하더니 잽싸게 김현의 칼을 낚아채 자신의 목을 찔렀습니다.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은 처녀의 몸은 다시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김현은 죽은 호랑이를 감싸안고 슬피 운 뒤 피 묻은 칼을 들고 숲을 나와 ‘내가 호랑이를 잡았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처녀의 말 대로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올라 서쪽 냇가에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김현이 사랑한 호랑이[김현감호 金現感虎]’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호랑이도 없고 이런 탑돌이 잔치도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합니다.
생각해 보니 탑돌이는 우리 번뇌를 갈아 소망의 가루를 소복이 담아 내는 맷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그 빻은 가루로 국수를 삶고 떡을 찌게 하는 흥겨운 삶의 연모였던 것도 같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탑돌이가 기억에만 남을 것인지, 그 기억마저 아스라이 바래 갈 것인지도 모릅니다.
휘영청 달빛 아래, 사람들과 함께 돌고 돌며 탑돌이를 하고픈 저녁입니다.
명상 #184
2025. 7. 5
시선고정
제가 오래 전에 한국에서 군대 갔을 때 얘깁니다.
어쩌다 저는 논산훈련소에서 바로 뽑혀서 한밤중에 경기도 가평에 있는 하사관 학교로 실려 갔는데, 여섯 달 동안이나 빡세게 훈련을 받으면서 우리는 거의 늘 배가 고팠습니다.
당시 수준으로는 반찬이 아주 부실하거나 밥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워낙 눈코 뜰새 없이 뺑뺑이를 돌려 운동량은 많은데다가 돌아서면 배가 고파지는 한창 나이였기 때문이겠지요.
드디어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 되어 식판을 들고 식당의 배식구 앞에 줄을 서면, 거기서도 교관이 우리더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입을 다물며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게시리 군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차례가 되어 배식구 앞으로 다가가면 배식병이 정신없이 밥과 반찬을 퍼서 식판에 담아 주는데, 그 밥 나오는 구멍 위에는 <시선고정>이라는 검은 글씨의 흰 팻말이 세로로 걸려 있었습니다.
혹시 다른 훈련병이 밥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지나 않았는지, 내것과 비교하여 눈을 흘끔거리면 바로 교관의 막대기가 등짝을 후려치는 것입니다.
많든 적든 고개 돌리지 말고 주는 대로 받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일생 동안 이렇게 시선고정을 강요 받으며 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딴짓 하면 안된다, 공부만 해라, 책만 읽어라, 문제만 풀어라, 시험만 잘 쳐라, 상만 받아라, 일등만 해라, 일만 해라, 돈만 벌어라, 출세만 해라, 기회만 잡아라, 남보다 올라서기만 해라, 이것만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 눈 돌리지 마라..... 하지만 우리의 눈은 본래 아래위가 아니라 옆으로 찢어져 흘끔흘끔 눈알을 돌리기에 편하게 생겨 먹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은 짐승과는 달리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서로 뚜렷하여 다른 사람들의 미세한 눈동자 움직임에도 아주 민감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과 기분을 금방 읽고, 신호를 바로 챙기며, 전체의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특출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두 눈이란 바로 내 마음과 느낌, 생각과 의지를 비춰 주는 창이니까요.
그러니 이런 천부의 자질을 억누르고, 딴 생각 하지 말고 늘 시선고정만 하라는 것은 사실 이만저만한 무리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려면 흐트러짐 없이 시선고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러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집중에 따라 시선은 저절로 고정되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만약에 우리가 운전을 할 때에, 긴장한 초보 운전자처럼 너무 운전대를 힘 주어 잡고 시선을 바로 앞차에만 고정한다면, 임기응변에 서툴러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능숙한 운전자란, 좀 멀리 앞쪽에 눈을 던지되 앞뒤 주위의 전체 상황이 수시로 파악되도록, 옆거울 뒷거울도 슬쩍슬쩍 흘끔거리며 훑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도 이렇지만 제 생각에 재가불자들의 수행에도 이런 점이 있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로는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성과가 있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만 한다면 무리가 와서 지레 지쳐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누구의 뒤꼭지를 나도 모르게 3초만 바라보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봅니다. 이러니 알고 보면 내 시선 하나 단속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참선을 할 때는 눈을 반쯤 게슴츠레 뜨고, 넌지시 방바닥에 눈길을 던지라고 하지요.
한참 그러고 있으면 눈으로 보고 있어도 보지 않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 이윽고 마음만 남게 되지요. 우리의 삶도 이렇듯 <시선고정>과 <시선놓음>을 알맞게 두루 갖추면 좋겠습니다.
명상 #182
2025. 6. 21
발레 파킹
중심가에서 식사 약속이 있거나 하여 차를 몰고 가면 늘 신경 쓰이는 것이 주차 문제이지요.
나성의 한인촌도 해가 갈수록 비좁아지고 차와 사람이 붐벼서, 특히 주말인 경우 웬만한 식당에서는 발레 파킹으로 차를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식사비는 물론이고 이런 주차비도 이제는 만만치만은 않은데, 이런 대리주차에는 신경을 쓰자면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차에 두고 내리는 것은 없나? 그냥 두면 혹시 없어질 물건은 없나? 티켓은 잘 챙겼나? 그 뿐입니까? 혹시 차를 긁어 놓지는 않을까에서부터 심지어는 차가 없어지지나 않을까, 제대로 보험을 든 계약된 요원일까, 혹시 저 사람이 가짜는 아닐까, 믿을 만한가? 내 차가 오늘 바로 뺀 고급차이든 이른바 폐차 직전의 똥차이든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귀찮고 불편해지긴 매한가지입니다.
번뇌를 일으키자면 끝이 없지만, 아무튼 슬쩍 뒤돌아보고는 생각을 끊고 다시금 모임 자리를 떠올리며 밝은 얼굴로 서둘러 찾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까진 걱정하지 않고 버릇처럼 열쇠를 넘기고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진 하지 않고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길러서 제 갈 길로 떠나 보내고, 그리고 하루 하루...,
다가올 다음 생을 기다리며 늙어 갑니다. 이왕 어쩔 수 없으면 남들처럼 그저 그리 믿어 맡기고 저지르는 것이지요.
즐거운 식사자리에는 시간 맞춰 참여해야 하니까요.
저는 처음에 발레 파킹이라고 하니까 발레(balet) 춤꾼하고 주차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했었는데 스펠링이 다르더군요.
발레(valet)라는 말이 본래 하인이나 시종이란 뜻의 프랑스말에서 왔다니까 조금 봉건주의의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냥 충직한 서비스맨으로 여기고 서비스를 받으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오늘 어떤 분을 만났는데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 주시더군요.
자기는 이민 초기에 사타구니에 불이 나도록 하루에 세 잡을 뛰면서, 그 중에 낮에는 식당 손님의 발레 피킹으로 돈을 벌었답니다.
그런데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차가 들어오면 손님이 파킹 요금도 듬뿍 얹어 주는데, 다 찌그러진 헌차라든지 어디서 일 하다 털털거리며 타고 온 차는 요금을 더 주기는 커녕 심지어 잔돈 모자란다며 깎자는 사람까지 있었답니다.
그런 저런 경험이 좀 쌓이자, 그 다음부터 자기는 고급차가 들어오면 없는 자리도 얼른 만들어 주고, 찌그러지거나 형편 별로인 차는 자리 없다며 쫓아 버리곤 했답니다.
허허, 그리 차별하면 되나 하고 서로 웃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중생이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면 이치니 그런 줄은 알고 있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이제부터는 무슨 차든, 비록 아주 헌 차를 가지고 식당에 가더라도 1불씩은 더 얹어 줘야겠다 속으로 생각이 스치던데, 이 약속 지킬 수 있을랑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