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서 부상한 북한군 병사 2명을 생포해 키예프(키이우)로 이송한 뒤 보안국(SBU)이 심문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그의 텔레그램 채널에는 북한군 병사 2명의 모습과 이들 중 1명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러시아 군인 신분증(군인 수첩) 등의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SBU도 사건 정황을 설명하는 대변인 성명을 담은 3분 10초짜리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영상에는 턱을 다친 한명은 필담으로, 다른 한명은 직접 심문에 응하는 장면도 담겨 있으나, 북한군 포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 텔레그램에 올라온 북한군 포로들. 사진은 북한군 포로가 수용된 수용소 411호실, 포로들의 다양한 모습, 러시아 군인 신분증/캡처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심문을 받고 있는 북한군 병사. 누군가 답변을 적고 있다/영상 캡처
턱을 다쳐 필담으로 심문에 응하는 북한군 병사/영상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의 생포가 쉽지 않았다"며 "러시아군과 북한군은 북한군의 참전을 은폐하기 위해 부상한 동료를 현장에서 죽여 증거를 없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9일 이들을 생포한 특수작전군 84전술여단과 공수부대원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우크라이나 특수전 사령부도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부상한 북한군 병사를 안전지대로 이송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영상으로는 북한군 포로 2명 중 누구인지, 북한군 병사가 맞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사령부 산하 84 전술여단 병사 여러 명이 부상한 북한군 병사를 들고 철조망을 빠져나가는 모습/텔레그램 캡처
영상에 따르면 SBU 대변인은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북한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도 12일 “우크라이나 SBU과 실시간 공조를 통해 북한군 생포를 포함한 현지 상황을 파악했다”고 확인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생포된 북한군 중 1명은 “작년 11월 러시아에 도착해 일주일간 러시아식 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장으로 이동했다”며 “전쟁이 아닌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러시아에 도착 후에야 파병온 것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SNS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북한군 포로는 또 “(부대에서) 낙오된 뒤 4∼ 5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다가 붙잡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지난 달(2024년 12월)에도 북한군 병사 한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나, 부상 악화로 하루 만에 사망했다고 확인한 바 있다.
SBU 대변인은 영상 발표에서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1999년생 포로는 2016년부터 저격병으로, 2005년생 포로는 2021년부터 소총수로 각각 북한군에서 복무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심문에서 러시아에 전투가 아니라 훈련을 받기 위해 온 것으로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텔레그램과 영상에서 공개된 러시아 '군인 신분증'이다. 1998년생 '아란친 안토닌 아야소비치'(Аранчин Антонин Аясович)의 이름으로 시베리아 남부 투바(자치)공화국에서 발급된 신분증이 도용됐는지, 소지자 본인의 것인지 여부다. 영상에서 본 이 신분증은 위조된 가짜는 절대 아니다.
지리적으로 몽골과 국경을 접하는 투바 자치공의 주민들은 한국인과 흡사한 몽골인을 닮았다. 이들의 군인 신분증이 파병 북한군의 위장 신분증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1998년생 '아란친 안토닌 아야소비치' 이름으로 발급된 러시아 군인 신분증. 본인 서명과 발급 날짜는 없다. 1999년생 북한군 포로가 지니고 있었다고 우크라이나 SBU는 밝혔다/캡처
우크라이나 측이 지난달 공개한 파병 북한군의 위장 신분증. 위의 신분증과 비교하면 2024년 10월에 발급된 새 신분증 같다. 한글 서명이 또렷하다. 그러나 중요한 발급 기관의 직인이 없다/캡처
1999년생 북한군의 군인 신분증(신분증에는 1998년 생으로 되어 있다/편집자)을 공개한 것은 '신분을 투바 주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군인 신분증을 위조할 뿐아니라 도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전에 공개된 북한군 위장 신분증과는 달리 최근에 발행된 것으로 보기에는 한눈에도 좀 낡아 보인다. 또 서명란에 한글 이름도 없고 발행 날짜도 빠져 있다. 소지자의 사진이 없는 것은 이전 것과 동일하지만, 발급 기관의 직인은 2번이나 찍혀 있다. 기록 내용이 두어차례 확인됐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1일 SBU가 쿠르스크 전선에서 처음으로 북한군 2명을 포로로 사로잡아 심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SBU는 포로 심문을 통해 북한군은 2024년 가을에 러시아 신분증을 받았으며, 1주일간 러시아 군대와 전투 훈련을 함께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인 신분증을 보면 이전에 공개된 사진과는 달리 2024년 가을에 새로 발급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신분증을 도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한(?) 주장이겠지만, 가제타와 렌타루 등 러시아 언론은 신분증이 도용된 것이 아니라, 이 포로는 실제로 북한군 병사가 아니라 투바 자치공 출신 군인이라고 반박했다.
극우 성향의 러시아 매체 차르그라드는 피-헴스키 지역(Пий-Хемским районом)에서 발급된 군인 신분증을 보면, 포로가 된 군인 1명은 투바 자치공 투란시(市) 출신으로 북한군 병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한국 언론은 이전에도 유사한 가짜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며 "서울과 키예프, 워싱턴은 지난해 말부터 쿠르스크 지역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제타루는 "프랑스 애국당의 플로리안 필립포트 대표는 평화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수천명의 북한군이 파병됐다는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금과 무기 지원을 계속 요구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이를 이용한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또 영국 BBC는 지난 달 초 우크라이나 군인의 말을 인용해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의 주둔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북한군 포로의 얼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텔레그램 캡처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전과는 달리 생포된 북한군 병사 2명의 얼굴 식별이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군인 신분증도 공개된 이상, 투바 자치공 측(주변 인물 혹은 친인척 등)의 반응이 궁금하다. 군인 신분증이 도용됐다면, 투바 자치공 출신의 원래 소지자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