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0월 1일(주일) 월삭예배
○ 갈라디아서 6장 8절.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이제 가을이 접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가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추수를 떠올립니다. 물론 개중에는 단풍을 떠올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가을에 얽힌 추억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오늘 10월을 시작하는 이 새벽에 여러분들과 함께 월삭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릴 하나님의 말씀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하우스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많은 농산물들이 계절없이 나옵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전이 눈이 무시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을 입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많이 뿌리고, 계절없이 뿌려도 그것을 다 소화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우스 농사도 짓고, 노지 농사도 짓는 것 아닙니까?
물론 예전에는 먹고 살려고 농사를 지었지만 요즘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전문 농업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해의 수확을 꿈꾸면서 씨앗을 뿌립니다. 사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햇빛을 받게 만들면 어느 정도 있다가 새싹이 돋아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잡초와 벌레와의 싸움만을 제외한다면 농사는 계속되는 기쁨이 연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산물들이 벌레와의 전쟁, 또 잡초와의 전쟁을 치룬 후에야 거두고자 하는 만큼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한 열매를 많이 거두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많이 거두길 원합니다. 그럴려면 실한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데 성경은 이것을 알곡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쭉정이를 많이 거두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알곡을 윈하십니다. 사실 쭉정이를 거두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알곡에 관심을 가지면서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알곡과 쯕정이의 비유를 하시고 또 모은 고기를 분류하는 작업에 대하여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하는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이 있음을 알게 될 때 그 부족함을 채우는 대상에게 달려가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동물들과 다른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졸리면 잡니다. 사냥하는 짐승은 자식에게 사냥법을 훈련시킵니다. 집을 지을 줄 아는 짐승은 자식에게 집을 짓는 법을 가르칩니다. 짐승들마다 가지고 있는 본능은 다릅니다.
땅에서 사는 짐승들은 땅을 달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면서 먹이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짐승들은 하늘을 나는 본능을 가집니다. 그들은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먹이를 구합니다.
반면에 땅 속에서 다니는 짐승들도 있습니다. 이런 땅 속을 기어다는 짐승들은 땅 위에보다 땅 속에 다니는 것이 훨씬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대로 행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렇듯 인간도 역시 편안함을 느끼는 본능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람마다 다양한 본능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공부하는 것이 편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하는 것이 편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싸우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연구하는 것이 편하고, 어떤 사람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다른 육체적인 본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뿐 아니라 사람은 정신적인 본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울고 웃고 슬퍼하며 기뻐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만들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거나 만들면서 편안함으로 느낍니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 본능을 따라 살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까?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본능입니다. 인간 안에는 두가지의 본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찾는 본능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본능은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반대의 본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죄의 본능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꾸만 어떤 특징을 가진 규칙을 가지고 가야하는 정해진 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외부인 자연만물에서 찾거나, 아니면 자기 안에서 찾다가도 찾지 못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형상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찾다가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함으로 인해 초월적이고 신적인 형상을 찾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상상하는 우상을 만들기도 합니디.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0-23절을 보면 이렇게 증언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또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자 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죄아래 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수도 없고 또 하나님이 앞에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미혹을 받아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들 앞에 서셔서 진리를 가르치셨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옳다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심는대로 거두게 하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것을 심고 영적인 것을 거두고자 하신다면 두 가지를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첫 번째 알아야 하는 것은 육체를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고 영혼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의 것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는 것에 따라 거두는 것도 역시 확연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셨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가시나무를 보게 되고, 소나무를 심는 자는 소나무를 보게 됩니다. 밤나무를 심으면 밤이나고 도토리 씨앗을 심으면 도토리가 나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법칙이듯이 여러분들이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심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자신을 위해 심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또 하나 심는 자들이 기억할 것은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선교헌금에 대한 교훈을 설명하다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5-8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연보는 여러분들이 드리는 모든 헌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즐겨내는 사람, 조금이 아니라 많이 드리는 사람에게는 많이 주시고, 적게 드리는 자에게는 적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드림의 적고 많음이 액수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전 문 앞에 있는 헌금궤 앞에서 가장 적은 액수의 돈을 드렸던 과부를 보시면서 제일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액수의 크기가 아닌 드리는 마음의 크기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들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하는 일에 자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넓은 세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넓은 세상에 복음의 씨앗을 많이 뿌리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많이 거둘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임무는 복음의 씨를 이 세상 곳곳에 많이 뿌리며, 땅 끝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멈추면 안됩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몸인 여러분들이 씨앗을 뿌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방해한다고 해서 뿌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의 결과는 거둘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도를 해도 사람들이 안믿는다고 실망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성령을 힘입어 뿌리고 또 뿌려야 합니다. 설사 눈 앞에 싹이 나는 것이 안 보이고, 자라는 것이 안 보이고, 열매가 안보여도 뿌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시는 날까지 계속해야 할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열매를 거두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그 열매는 바로 영생의 열매입니다. 교회를 통해 사람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일을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이루고 계시며 그 몸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거듭난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는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되어 예수님의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성령은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을 열어줍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성령께서 행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계십니까? 성령님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성령은 오늘도 여러분들의 마음에 이 동네와 이 지역의 구원을 위헤 기도하게 하시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10월을 시작하는 이 날에 여러분들이 많이 심고 많이 거두는 전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11월 19일인 추수감사절에 많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전도해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구합시다.
여러분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셔서 영적인 본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보기 원하면서도 그것을 찾지 못해 죄악의 본능을 따라 행하는 이 세상에 나가서 일을해야하는 영적인 농부로써 성령을 위하여 심음으로 영생의 사람들을 거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열매로 거두는 하나님의 복된 일꾼들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