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6 주일 예배
마태복음24:14-30 <주님 오실 때 당신은>
분당 맑은샘교회 이대환목사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지진이 일어나 해일이 일어난다고 하구요. 북한의 백두산은 터진다고 말하고..일본에서는 독도를 빼앗겠다고 난리를 치고요. 어디를 봐도 편안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도 같이 춤을 춥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증조가 보인다고 하면서 666바코드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지요.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사람들을 동조합니다. 그리고 한편에 그 말이 맞는 것처럼 전쟁,기근,흉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무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삶 가운데 주인 되지 않으시면 어떤지를 보이기 위해서 끈임 없는 전쟁,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게 그냥 놔두십니다. 이런 일들을 2000년대만 이런 것이 아니라 1세기에도 3000년전에도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전자무기로 그때는 칼을 가지고 했다는 것 정도 일 뿐입니다. 1세기에 고통당하던 성도들이 아직도 고통당하고 있나요? 그 당시에 잠시 고통당하다가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수고로움과 고난으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곧 다시 갈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생이 고달픈 줄 깨달으신다면 ‘이 세상은 내게 완전한 행복을 주지 않는구나.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라구요. 이전 성도들도 예수님이 오실 나라를 소망하면서 거룩하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하면 됩니다.
종교인들을 이렇게 사기를 많이 칩니다. 2년후에 예수님 오신다고 하면요. 지금 대학 다니는 사람들은 대출받아서 대학 다닐 필요가 있습니까? 고등학생이 공부해서 대학갈 필요가 있나요? 이렇게 사람들을 속여서 미혹하는 사람들이 옛날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있습니다.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가 사는 곳에서 나랑 같이 살았니? 너가 공부하는 자리에서 나와 함께 했느냐? 네가 직장의 자리에서 나와 함께 했니? 수학 선생님이 춤과 노래로 아이들의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직장에 보냈다면 직장에서, 가정에 보냈다면 가정에서 주님은 여러분의 점수를 매기실 겁니다.
오늘 4개의 비유를 하려고하는데, 시간 상 다 할 수 없어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 첫 번째 비유
4장 45절 청지기비유.
지혜로운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주인의 집에서..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생각하는 너의 가족, 너의 아들 내거야.” 이런 주인은 종에게 말합니다. ‘때를 따라, 사람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10만원씩 나누어주면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감사합니까? NO! 10만원씩 주는 게 5주가 지나면 받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른인데 왜 중학생과 같은 금액을 받나요?’ ‘나는 아이를 키우는데 왜 어르신과 같은 금액을 받나요?’. 이런 불만들이 생길겁니다. 그리고 반대로 ‘저는 어린아이니까 5만원까지 필요없어요. 4만원은 내 놓을게요.’ ‘나는 노인이라서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없어요.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세요.’라고 두고 갈 사람은 없을겁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돈을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잘 분배하는 것” 이것을 경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잘 경영해서…사람과 때에 따라서 시간을 잘 분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악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24시간을 주었는데 너는 시간을 허비하였구나.” 선과 악은 가치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격을 평가하는 겁니다. “너는 돈을 왜 이렇게 허비했니?”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너는 악하구나. 너는 나의 것인 시간과 돈을 맡았는데 함부로 사용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겨진 돈과 시간을 잘 경영하십시요. 여러분의 삶을 잘 경영하는 능력이 커지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믿음이 있고 경영도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게 바로 자식이 성장하는 겁니다. 나의 삶. 나에게 맡겨진 모든 것에 있어서 주인의 것임을 기억하고 잘 사용하십시요.
지난 주 금요일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이야기를 듣는 중에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네가 말한 그 사장 아래에서 10년을 일해라.” 그런데 그가 놀라면서 “아니요. 저는 3년만 아래에서 배우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천장에 구멍 뚫어서 전기 다마 다는 거요. 3번만 옆에서 하는 거 배우면 따라합니다. 그러다가 생각하지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나는 하루 이렇게 일해서 8만원 받는데. 사장은 40만원 받는구나” 그래서 그 사람이 돈을 긁어 모아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런 그가 성공했을까요? No! 1년 내로 망하겠지요. 고용주와 고용인의 차이는 그렇습니다. 기술은 똑같을 수 있더라도 ‘경영’을 배우지 못했다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너의 삶을 경영하라. 너의 삶의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삶을 경영하라. 성경에서 종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장이 되어서 미운 사람은 내 치고 술 마시고 놀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돌아온 주인은 어떤 처분을 내렸나요? ‘엄히 때리라.’ ‘슬피울며 이를 갈도록 = 지옥을 의미함’
2. 두 번째 비유
이스라엘에서는 신부의 친구들이 등불을 가지고 나와서 신랑이 오는 길을 맞이합니다. 원래 해질 때쯤 되면 잔치가 시작하는데요. 아직까지 어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다리는데 신랑이 안 오는 겁니다.
신부는 기름을준비해야합니다. 기름이 무엇일까요? 기름을 더 많이 준비해서 잔치에 들어가서 더 많이 먹고놀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기름의 량을 많이 준비하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오는 신랑을 맞이하고 준비해야합니다. 앞에 기다리는 신부들을 오늘 잔치에는 어떤 요리가 있대. 등등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번이라도 ‘그 신랑의 집은 종로래. 그래서 여기에 오면 적어도 1시간은 더 걸릴거야.’ 라고 미리 예상했다면… 아니면 그 신랑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어떤 생각못한 사고가 생겨서 늦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더라면… 예수님이 언제 오느냐 안 오느냐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예수님께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요… 미련한 여자들을 포커스를 놓쳤습니다. 밤에 먹을 밥에 포커스를 두었구요. 어떤 미련한 여자들을 신랑 친구 한 명 꼬셔보고자 화장만 두들기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예배에 나올 때 신랑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오십시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너는 참 슬기롭구나” 고 하십니다. 여러분 슬기로운 처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번째 비유
“적은 일에 충성되었구나”
5억을 주었는데 10억으로 만들어온 종에게 하나님께서는 ‘적은 일’에 충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존심을 확 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목숨 걸고 하지만 주인에게 그것을 작은 일 입니다. 주인에게는 돈을 두 배로 늘려온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맡기면서 충성했는지, 착했는지를 봅니다. 주인이 지금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착한지를 보고싶어하는 겁니다. 착하고 충성되었다는 것을 돈을 늘리는 수완과 기술과는 다른 겁니다. 주인은 종의 인격을 보고 싶었고 그 인격이 성장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이 종은 오늘 가족에게 가서 나 오늘 승진했다고 자랑하는 것도, 승진했다고 친구들에게 한 턱 쏘는 것도 뒤로하고 주인에게 바로 갔습니다. 주인은 이 종의 충성을 보았습니다. 종이 실수해서 돈을 잃을 지는 몰라도 충성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26절 악한 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LG,삼성 등등의 사장님이 여기 있는 반도체 공장에가서 메모리 만드나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그러니까 골프치러 다니잖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장을 우리를 통해서 배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사장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고 생각하잖아요? 먼지나는 공장에 사장이 오겠습니까?
여기 이 종이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이 주인은 한 번도 쟁기를 들고 들판에 가서 콩 하나 심은 적이 없잖아요? 탈곡하는 데 와서 탈곡기 돌린 적이 없잖아요. 탈곡하다가도 먼지나는 것 멈추고 청소한 다음에 주인님께 90도 허리굽혀 인사했고, 인사를 받았겠지요. 그리고 심은 적도 없으면서 “뭐했길래 농사가 이 모양이냐?”라고 호통치는 주인입니다. 저는 종의 이 말을 이해합니다.
주인은 말합니다. 네가 나를 정말로 그런 사람으로 보았니? 그랬다면 내가 이자놀이 하는데 원금을 맡기고 이자만 받아 챙겼겠지. 하지만 내가 너에게 돈을 맡긴 것은 2배로 남겨오라고 그런 게 아니야. 게으른 너에게..그래도 너도 노력하면 된다는 걸 너도 한번 경험해보라고 그래서 맡긴거다. 너도 노력하면 돈이 벌어진다는 것을 배워야 인간이 되고. 천원 버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너도 경험해야 한다는 건지…부모가 너에게 운동화 한 켤레 사줄 때 그게 얼마나 자존심 구겨지는 일을 겪고 나서야 사줄 수 있었던 건지 배우라고 너에게 일부러 맡긴거야.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 만큼을 맡기면 얼마나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아시면서도,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맡기시는 겁니다.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그 회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기술로 아무리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놓아도 그걸 팔 기회가 없으면요? 주인이 할일 없어서 골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이 거 키워서 사람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찬양하고 말씀 드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너무 좋다” 라고 하시겠습니까?
아이 낳는 엄마의 고통을 생각해봅시다. 아이 낳을 때 죽을 것 만큼 아프다가도 태어난 아이가 엄마를 보면서 징긋거리는 표정하나에도 엄마가 그 고통을 싹 잊습니다. 웃어 준 것이 가치 있어서 애 낳는 고통을 참을 수 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거 낳느랴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애가 살아 나왔다는 것 만으로도 기쁜겁니다.
보잘 것 없는 것… 내가 하는 헌금은 적은 것 입니다. 내가 하는 찬양 적은 것 입니다. 그러나 나의적은 충성으로도 하나님은 그것으로도 기뻐합니다. 주인은 기회를 영원히 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됐다. 라고 기회를 닫아버리면 밖에서 슬피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충성해서 착한 종이 되면 주인은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와 같은 은혜가 있어서 세사의 종말이라고 휘두르는 사람들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또 먹고 노는 삶만 살려고 하지 마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