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동님.
저는 뭐 글을 잘 쓰는 실력이 없습니다.
행인 김모 처럼 불특정 다수에 숨어들어 사람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랄까 아니면 선동하는 사람은 아니고요.
사실 이 닉네임은 벌로 지은 겁니다.
벌로: 경남 방언 '건성으로'
저에게 필력은 기대하지 마시고요...
이 작가의 이름은 김경진입니다. 밀리터리 스릴러물을 만드는 사람인데 대표작이 데프콘, 남북, 3차대전, 독도왜란...
이 작가분의 사상엔 반미감정이 깔려있지만 나름 재밌고 설겆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아주머니도 가끔 읽는 소설입니다.
뭐 10년도 더 된 소설이긴 하지만요.
아 그리고 미네르바의 숲 님께서 읽으신다면 중간에 욕나오는게 있습니다. 해병대가 베이징을 점령하는 척 하는 글에서
국정원의 선전선동이 뭔가 현실에서 비슷한게 나오거든요.
35. 베이징 점령
6월 15일 16:20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 북쪽 26km
"임현우 해병님, 질문 있습니다.!"
이두호 일병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임현우 상병에게 말을 걸었다. 무개트럭에는 분대 병력 전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나 몇 시간째 입을 여는 해병은 하나도 없었다.
분대원들은 황당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다들 임무카드를 쥐고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어제 저녁만 해도 보였다 하면 즉시 총질을 해댄 중국군 복장을 지금 분대원들이 입고 있으니 황당함이 더 할수 밖에 업었다. 아무리 특수작전이라 하지만 정규군인 해병대원이 적의 군복을 입는다는 건 어쩐지 대한민국 해병대의 명얘가 실추되는 것 같았다.
이두호가 탄 트럭 앞에도 뒤에도 중국 군용트럭이 달렸다. 트럭에탑승한 군인들은 중국군복을 입고 중국제 소총을 들었으나 알맹이는 틀림없이 국산, 한국산이었다. 이두호는 사람에게는 원산지표시제를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이곳은 베이징과 텐진의 남쪽, 중국군이 득시글거리는 지역이다.
중략
참다못한 이두호가 고개를 홱 돌렸다. 때마침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장갑차 사수석에 상반신을 내민 중국군과 눈이 마주쳤다. 그 중국군이 이두호를 향해 중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낄낄거렸다. 이두호는 화가 났지만 이럴 때 감자바위를 먹이면 중국인이 아닌게 들통난다는 교육을 오늘 아침에 받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이두호!"
"에! 이두호 시정하겠습니다"
분대장 변경백 하사가 낮게 이름만 불렀다. 고개 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장갑차들이 달리며 내는 굉음에 한국말이 들릴 리는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두호가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목을 움츠렸다. 중국 장갑자들은 다 지나간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십초 간격으로 목덜미가 서늘한 게 반대편 차로에 장갑차에 이어 중국군 트럭대열이 지나가는 모양이다.
이두호는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산둥반도 남서쪽 롄윈강 지역에서 전투에에 투입됐었다. 비록 포병의 도움을 얻었다지만 무명고지 전투에서 해병대 1개 소대가 중국군 2개 대대를 섬멸한얼토당토않은 전과를 올린 소대의 일원으로서 이두호는 자부심보다는 황당함이 앞섰다. 한국 해병원정군은 저런 개념없고 무식한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두호는 중국군이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인해전술을 쓰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현대 무기체계는 과거 2차대전이나 6.25때보다 비약적으로 화력이 강해졌다. 포병 화력도 옛날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병력이라 해도 위치가 드러나면 즉각 집중공격을 당한다. 원정에 참가한 미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보유한 이라크군이 전투다운 전투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무너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겨우 10년 2003년이었다. 이두호는 중국군이 무기체계는 현대화했지만 아직 교리는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중략
어쨌든 이 전투로 인해 소대는 사단장 눈에 띄었고, 소대원들이 훈장이나 휴가를 받는 대신 중대 전체가 새롭고 위험한 임무에 투입됐다. 조직에서 상급자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는 말은 이렇게 군대에서 고스란히 통용됐다.
원래 해병 2사단은 상대적으로 중국군의 압력을 덜 받는 산둥반도 남쪽 지역을 맡았다. 중국군 지휘부는 산둥반도가 무너지자 황하에 새로운 방어선을 펼쳤고, 그 남쪽은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져 많은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두호가 속한 해병 2사단은 상대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황하에 어마어마한 중국군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은 이두호도 익히 들었다. 베이징 인근에도 중국군 최정예 병력이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전에는 해병 1사단이 아니라 왜 해병 2사단 병력이 차출돼야 하는지 이두호는 알 수 없었다. 사실 해병 1사단에 여유 병력이 전혀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이두호는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씨X! 냄새하고 연기가 여기까지 날아오는구나."
소대 왕고 최주용 병장이 투덜거렸다. 분대장 변경백 하사와 박윤명 일병은 기침을 심하게 해댔다. 다른 분대원들이 시선을 보내는 곳으로 이두호가 고개를 돌렸다.
저멀리 동쪽 지평선 위로 거대하고 시커먼 연기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다강 유전이라고 했다. 다강은 이름과 달리 항구가 아니라 호수다. 작은 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었는데, 남재항은 허베이서, 북대항은 텐진시 영역이었다. 그 유전지대가 통째로 타오르고 있었다.
해병중대가 옌타이에서 헬기를 타고 보하이만을 거쳐 다시 해안선에 돌입할 때는 더 심한 유전 화재를 가까이서 접했다. 중대원들은 헬기에서 내리기 전에 방독면과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지급받았다.
아침인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살아 있는 생명 체를 발견 할수 없었다. 그곳은 성리 유전이라 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서로 상대방이 유전을 파괴해 환경파괴와 재앙을 불러왔다고 서로를 비난했다.
중략
해병대가 탄 트럭 행렬이 내륙 도시인 창저우를 통해 우회한 것은 해안지역에 중국군 방어병력이 너무 많이 집결됐기 때문이다. 텐진주변을 경비하는 중국군들은 중국 내륙지역 방향에서 오는 군용트럭들에 대한 경계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전방에 검문소다!"
분대장이 경고하자 분대원들이 일제히 뻣뻣이 굳었다. 트럭 행렬이 검문소 앞에서 정지했다. 왼쪽으로 야간 굽은 길에 세워진 검문소라 이두호가 탄 트럭에서도 검문소에 근무하는 중국군들이 보였다.
중국군이 맨 앞에서 트럭행렬을 선도하는 사륜구동차에 다가가가 통행증 제시를 요구했다. 조수석에 탄 정체를 알 수 없는 선탑자가 뭔가를 내밀더니 중국어로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것 같았다. 중국군 위병이 경ㄱ례하자 트럭행렬은 다시 출발했다.
이두호는 파라솔 아래에 선 위병 뒤 상황실에서 30대쯤 돼 보이는 중국군이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상부에 차량 이동상황을 보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벌써 여러 번 겪는 일이라 이두호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도로 곳곳에 검문소가 있었지만 트럭행렬은 이상하게 무사통과였다. 임현우는 처음에는 트럭째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로 안내요원들이 완벽하게 위장하고 준비한 것 같았다. 이두호는 저들 가운대 일부분이 진짜 중국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들었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죄책감 따위 전혀 느끼지 않고 이민족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인간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검문소가 있는 언덕을 넘었다. 저 멀리 앙상한 철골을 드러내고 시커멓게 탄 트럭 수십 대가 도로변에 치워져 있는 게 보였다. 트럭에 탄 모든 해병대원들이 그 트럭 잔해들을 보며 놀랐다.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항상 노는 건 아니고 이렇게 가끔 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도로 옆부터 지평선 끝까지 밭이었다.
"예! 알게습니다.."
변경백 하사가 이어폰을 통해 소대장으로부터 명령을 전달받은 것 같았다. 분대원들이 전원 분대장을 주목했다. 변경백이 허리를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
"분대, 부대마크를 196으로 바꿔단다. 실시!"
"실시"
작은 구령과 함께 분대원들이 일제히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중국군 부대 마크를 꺼냈다. 부대마크를 바꿔 다는 건 오늘 들어 벌써 네 번째였고, 주머니에는 아직 두 장이나 더 남았다.
이두호가 어깨에서 제38집단군 직할 제8육항단 마크를 떼었다. 붉은 별 밑에 헬리콥터 그림, 그리고 그 밑에 38LH라는 문자가 박힌 마크였다. LH는 육항, 즉 육군항공의 약칭이다. 이 마크에는 그런 게 없었다. 정확한 부대 명칭과 부대 단위를 은폐하기 위해 상급부대와 병과만 표시한 마크였다.
중국에서도 영어 알파벳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무리 획수를 줄인간ㅈ라 해도 한자 자체가 매우 복잡하다. 억지부리기 선수인 중국인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매우 괴로워한다. 그래서 중국군은 각종 군용지도, 상황도, 부대마크 등에 한자 댓니 영문 약칭을 사용한다. 이두호가 제8육항단 마크를 뗀 자리에 텐진경비구 소속 제196마보여 마크를 붙였다ㅓ. 마크에 박힌 문자 196MHU에서 MH는 마탁화보병이라는 병과, U는 여단 식별부호다. 참고로 사단 식별부호는 S를 쓴다. 196마보여는 같은 텐진경비구 소속 다른 경비사단들과 달리 중무장한 정예부대였다.
그사이에 트럭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뒤에 따라오던 트럭에서 운전병이 뛰어나오더니 트럭 앞뒤 범퍼에 도장된 부대 단대호 앞에 스티커를 붙였다. 제8육항단을 나타내는 51356이란 숫자가 사라지고 196마보여 단대호를 붙였다. 스티커를 잘 만들었는지 멀리서 봐서는 페인트칠한 것과 구별되지 않았다.
트럭 행렬이 다시 출발했다.
중략
이두호가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작전 브리핑에 중대원 전원이 참석했고, 특이하게도 해병 2사단장도 참석했다. 영관급 장교가 어처구니없게도 베이징을 점령하는 척하는게 중대의 임무라고 했다. 중대장이 겨우 1개 중대로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작전참모는 베이징을 점령하는 게 아니라 점령하는 척하면 된다며 두 가지를 분명히 구별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투입된 병력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다. 베이징 주변에는 베이징 군구, 지난 군구, 선양 군구를 포함해 10개 이상의 정예합성 집단군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숫자로 따지면 경비사단이나 무장경찰 병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상식적으로 베이징 진입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 아무리 전황이 급하다 해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그런 엉뚱한 작전을 입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요행히 해병중대가 베이징에 침투한다 해도 위장작전이 반드시 통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뉴스는 빛의 10분의 1 속도로 빠르게 전파된다. 전깃줄이나 광섬유가 광속으로 신호를 전달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이 언제까지 통할지 알 수 없었다. 매스 미디어가 극도로 발달한 시대에도 거짓 선전이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중대원들 사이에서 작전참모가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에꿎은 작전참모만 독일 선전광 괴벨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괴벨스가 한 짓은 전시 미국에 의해 철저히 분석돼 이후 국가 외교정책이나 광고, 홍보, 정치선전 등에 이용됐다. 언론사에 의한 사실왜곡 보도 기법 상당수도 괴벨스의 선전을 분석한 후에 개발됐다.
그때 사단장이 일어났다.
'다른 군은 못한다. 우리 해병대니까 가능하다.'
사단장이 한 일장연설을 요약하면 대략 이 정도였다. 이두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두호는 다른 중대원들처럼 가족에게 남기는 유서를 썼다. 워낙 피곤해 밤에 잠은 잘 잤지만 밤새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아침에 헬기에 탑승하면서 알았는데 중대에 장군이 끼어있었다. 다른 장군도 아니고 바로 해병 2사단장 허준혁 소장이었다. 중국군 대교 계급장을 달고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모습이 이두호가 보기에도 조금 웃겼다.
중략
한국과 미국, 일본과 중국의 도시 하나씩 핵공격에 의해 이미 소멸됐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시가 사라지고,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과 개와 고양이와 새와 주와 바퀴벌레가 죽어갈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기형 생물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이두호는 기형아, 무뇌아, 타조 만한 닭, 등 굽은 물고기, 그리고 고지라와 닌자거북이를 떠올렸다.
"씨X ! 또 톨게이트야."
변경백 하사가 툴툴거렸다. 트럭 행렬이 서행하면서 동전을 던지며 톨게이트를 지나갔다. 도대체 몇 킬로미터 마다 톨게이트가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톨게이트를 벌써 네 번은 지난 것 같았다. 이두호는 아무리 유료도로라지만 너무했다 싶었다. 심심하면 톨게이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넓은 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돈만 많이 들지 무수한 톨게이트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차량이 빠른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두호는 톨게이트에 근무하는 중국인이 혹시나 이 트럭 행렬을 수상쩍게 여겨 중국군 당국에 신고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나 톨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도로표지판이 옆으로 홱 지나갔다. 그러나 트럭 행렬은 이미 텐진시 경계 안에 들어와 있었다. 15킬로미터 남았다는 것은 시 중심부를 기준 삼았을 때의 거리였다.
해병 제1상륙사단은 산둥반도 방어선을 돌파한 다음 황하 도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연일 공습에 나서 지난근처에 집결한 중국군에게 큰 피해를 압혔다. 해병대가 산둥반도에 거점을 마련하자 한국 공군은 빠른 시간 내에 전투기를 전투현장에 투입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공군은 중국군이 시도 때도 없이 가하는 핵공격을 감내해야 했다. 공군이 이용하는 산둥반도의 기지는 단지 주유소에 불과했다. 산둥반도에서는도저히 전투기 정비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해병 1사단은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두호가 본 해병대 고위 장교들의 초조한 얼굴이 그 사실을 웅변했다. 그래서 이두호는 제발 이번 작전이 성공해서 한국이 이기길 바랐다. 이두호는 물론 다른 중대원들도 살아 돌아간다는 생각은 아예 접고 말았다. 물론 작전 내용은 아직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처구니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두호 일병이 다시 임무카드에 나온 자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왼팔을 수평으로 쭉뻗고 오른팔은 접어 손등이 턱 밑에 오고, 시선은 왼쪽90도로, 다시 왼플을 꺽어 손등이 가슴에 오게 하고 오른팔은 세워 손바닥이 왼쪽을 향하게. 왼팔은 접고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가 어깨 뒤로 넘긴다.
임무카드에 설명된 자세는 따라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절도 있고 자연스럽게 다음 자세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야 두호야.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 교통순경?"
텐진에 가까워지자 최주용 병장이 분위기를 살리려 그런 건지, 아니면 공포를 떨치려고 하는지 이두호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중에 뭐가 될지 말하는 건 너무 허망했지만 희망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두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제가 머리가 나빠 이순신 장군 같은 명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원균 장군처럼 용감한 군인은 꼭 되고 싶습니다. 최주용 해병님!"
"이런 찌질이!"
이두호가 대답하자마자 욕설과 함께 주먹이 여기저기서 날아왔다. 이두호보다 후임인 박윤명 일병의 주먹도 여기에 참가했다. 이두호가 주먹들을 뿌리치고 항변했다.
"원균은 억울합니다. 칠전량에서 패했다지만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으니 명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닏. 역사적으로 재평가해야 합니다!"
"물론 재평가해야지. 우리가 보통 알고 잇는 원균은 너무 과대평가 돼 있거든. 맹장이라고? 맹장은 문제가 생기면 수술해야 해/"
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임현우 상병이었다. 임현우가 역사학 전공은 아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원균이 싸우다 죽어? 웃기고 있어. 칠전량에서 원균이 안 싸우고 안 죽었다면?"
실록에 기록된 여러 가지 보고서와 칠전량해전에 참가한 일본 무장들이 남긴 기록을 대조해보면 기존 학설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이 동원한 군선 숫자에 비해 실제 전투가 의외로 소규모였고, 조선수군이 전멸했다고 초기에 조정에 보고된 것과 달리 사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 해전에서 원균이 죽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칠천량해전과 원균에게는 당시 조선인이나 현대 일반인의 상식을 깨는 무언가가 있다.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살아남거든 공부해봐. 임진왜란 관련 기록은 널리고 널렸어. 세계 역사상 임진왜란만큼 사료가 풍바하게 남은 전쟁이 어디 있어?"
조선왕조에는 객관성이 검증되고 내용이 풍부한 관찬 실록도 있고, 임진왜란 기간 동안 개인이 쓴 일기나 전란회고록 종류가 현재 남은 것만도 수십 가지이다. 과거를 정확히 모르니 현대인이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게을러서 공부하지 않는 자들이 짖는 개소리이다.
6월 16일 09:05 충청남도 계룡대 합동참모본부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해병대가 중국 수도 베이징의 관문인 텐진 시내를 점령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 드리는데, 해병대가 텐진 시 전체를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TV를 보셨다시피 시내 곳곳에 일부 패잔병이 남아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류지은 소장이 연단에 올라와서 설명했다. 기자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노트북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는 소리가 기자실을 가득 채웠다. 기자들이 작성하고 있는 기사는 실시간으로 각국 언론사와 통신사 편집국장의 화면 위에 커서 움직임까지 고스란히 뜨고 있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촬영한 화면도 마찬가지로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군사작전은 기밀을 요합니다. 특히 상륙작전은 고도의 기밀을 요합니다. 그래서 한국 해병대가 기습저긍로 텐진항에 상륙한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 이제야 기자 여러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대신 기사에 쓸 만한 사진과 자료화면을 따로 준비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합참 소속 사병 두 명이 기자들에게 서류봉투 하나씩을 돌렸다. 기자들이 꺼내보니 한국 해병대가 텐진 신항에 상륙하는 장면을 찍어 인화한 사진들과 시디 한장이었다.
사진은 꽤 많았다. 한국 해병대 상륙주정이 부두에 닿고 해병대원들이 쏟아졌다. 상륙장갑차가 부두 위를 달렸다. 그들 위에는 공격헬기가 비행하고 있었다. 커다란 상선을 배경으로 해병대원들이 총을 들고 달리는 모습을 해병 2 사단장 허준혁 소장이 허리에 손을 얹고 보는 사진도 있었다. 의외로 전투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파괴되어 불타는 중국 장갑타 사진만 달랑 한 장 들어 있을 뿐이었다.
몇몇 기자들이 시디를 노트북 컴퓨터에 넣자 동화상이 나왔다. 사진과 비슷한 장면들이었다. 완전 무장한 한국 해병대원들이 어느 건물 창문을 향해 총을 쏘고,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장면이었다.
"질문 있습니다! 방금 중국 국영방송에서는 한국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사진과 저 TV영상은 다 가짜랍니다."
일본인 기자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었다. 그 기자의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 LCD 화면에는 중국 국영방송의 공식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중국의 반응은 굉장히 신속했다.
"오오! 그래요?"
류지은 소장이 빙긋 웃었다. 류지은 소장이 원한 결과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류지은이 대형화면을 가리켰다.
"그럼 저건 뭔가요? 위성 생방송입니다."
화면에는 또 다른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한국 해병대원 두 명이 중국인민은행 CD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장면이었다. 주변에 다른 중국인들도 있었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한 중국 소수민족들이 도안된 런민삐 몇 장을 카메라 앞에 대고 흔들며 해병대원들이 웃었다.
해병대원들이 걷는 방향으로 카메라가 따라 움직였다. 무수히 많은 차량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외국제 중고차들에 붙은 번호판은 영문과 한자, 그리고 숫자가 섞인 중국 번호판이 틀림없었다. 해병대원들 뒤로 배경에 나오는 건물들은 틀림없이 텐진에 있는 것들이었다.
화면이 바뀌어 다시 해병대 2 사단장 허준혁 소장과 참모들이 있는 곳이 나왔다. 100년도 더 된 서양식 석조건물들이 늘어선 골목에서 해병 2사단 지휘부 요원들이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참모 장교 하나가 농담을 하자 사단장을 포함한 지휘부 요원드링 배를 잡고 웃어댔다.
"음제가 전에 텐진에 갔을 때 허핑루에 있는 저 가게에서 만두를 먹어봤습니다. 텐진파오츠푸라고 하던가? 화면이 최소한 합성은 아닌것 같습니다."
체구가 큰 50대 백인 기자가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여전히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형모니터에 뜨는 저 영상과 류지은 소장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군 해병상륙부대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턱밑까지 파고 든 셈이다. 하룻밤 사이에 중국 전선의 전세가 급격히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한가을 대위는 기자실 옆방에서 각국 방송과 신문사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세계 3대 통신사 공식홈페이지 탑 화면에는 '한국군 텐진 함락, 베이징을 향해 진격중!' 이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어느 신문사 홈페이지에는 '속보! 한국군 베이징 점령!" 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몰론 당연히 과장된 왜곡보도였다.
미국의 어느 케이블 뉴스 전문 채널에는 한가을에게 낯익은 장소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옆방인 한국 합동참모본부 기자실이었고, 앵커가 놀란 표정과 목ㄷ소리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TV 화면 속세엇 슬쩍 웃어가며 회견을 진행하는 류지은 소장을 보고 한가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류지은 소장이 발표한 사실을 있는 그래도, 제대로 전달한 언론은 단 한 군데 없었다. 역시 한가을이 예상한 대로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언론보도의 과장이 심해졌다.
미국 어느 방송사의 편집된 뉴스화면은 왜곡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 방송국에서는 류지은 소장이 '텐진 시가지 일부를 점령' 했다는 대사에서 '일부' 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고의적으로 노이즈를 삽입해 시청자들이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인 '애국적인 보도태도' 였다.
어느 신문은 한국 해병대가 텐진뿐만 아니라 베이징을 점령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 중앙권위 주석 일행을 생포했다는 헛소문을 1면 탑에 내걸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보도가 나올 판이었다.
중략
한가을이 채널을 바궈 중국 국영TV를 틀었다. 조금전에는 텐진과 관련된 정국정부 성명이 한자 자막으로 흘렀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나운서도 텐진에 관련된 보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가을 대위가 피식 웃었다.
중국운 대처가 늦었고, 이미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국영방송 아나운석다 한국이 거짓말하낟고 보도했으나 지금은 그런 소리마처 자취를 감췄다. 중국이 모른 체 잠시 딴청을 피우는 것은 사실확인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보도가 실제로 전파를 탈 경우 중국 전체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는 중국인들조차 제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가 확대될 가능성이 더욱 컸다.
바로 이것이 류지은 소장과 한가을 대위가 원한 것이었다. 중국 관영 방송인 중앙전시대(CCTV)의 아나운서가 한국이 거짓말한다고 말한 그 몇 초를 위해 한국 해병대는 사단장과 1개 중대병력을 희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몇 초의 실수는 결정적이었다.
물론 중국군 병사들이 휴대전화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전쟁소식을 주고받으며 한국 해병대의 텐진 침투 사건을 알게 될 수도 있었다. 한국 해병대가 텐진을 완전히 점령했느니, 중앙군위주석을 포로로 잡았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그것은 소문에 불과하다. 그런데 국영TV에서 한국의 주장을 부인함으로써 헛소문을 완전히 공인하고 말았다.
한가을이 쪽지를 작성해 옆에 대기하고 있는 사병에게 주었다. 그 사병이 류지은 소장에게 전달하러 서둘러 방을 나갔다.
한가을은 평소 류지은 소장이 강조한 '진실의 힘' 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거짓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국 정부와 달리 류지은은 한국에 약간의 위신 손상이 있을 만한 내용도 과감하게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전황에 관련되 각종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기자들에게 차근차근 신뢰를 샇아나갔다. 그럼으로써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 카드를 꺼내 기자들이 믿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 하나 있었다.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 참모부장인 류지은을 기자들이 국방부 대변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이곳이 국방부 청사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건물인데도 기자들은 계속 오해한 채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사실 민사심리전참모부장이라는 직함 자체는 실제 심리전을 수행할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자 여러분 과장하면 안됩니다. 언론사와 한국 합동참모본부의 신뢰성 유지 차원에서라도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셔야 합니다. 어느 언론사에서는, 한국 해병대가 베이징을 점령했다'"
이 대목에서 류지은 소장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당연히 의도적이었다.
"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류지은 소장이 여유만만하게 기자들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류지은 소장은 방금 자기가 한 말도 왜곡보도의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언론에 따라서 류지은의 발표 중에서 앞의 문장 일부를 거두절미하고 '한국 해병대가 베이징을 점령했다'는 말만 인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류지은 소장이 방긋 웃었다.
"난 거짓말 안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마담 제너럴."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합참에 출입했던 독일인 기자였다. 독일 기자는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이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할 줄 아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다. 특히 독일 기자들은 괴벨스시대의 선전선동 기법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혐오하는 편이다. 그 독일인 기자느 벌써부터 그런 낌새를 채고 있었다.
류지은 소장이 그 기자를 가리키며 정정을 요구했다. 물론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마드모아젤"
"아, 죄송, 실례했습니다. 마드모아젤 제너럴."
처녀 장군이라면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가 맨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겉보기에 잔다르크와 류지은 소장의 이미지는 많이 달랐다.
월 16일 09:25 중국 텐진시 우칭
중국군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텐진 시내 중심부로 출동했다. 첫 번째는 중무장한 인민무장경찰 병력이었고, 나중에는 정규 인민해방군도 시내에 진입했다. 인민무장경찰과 잠시 교전을 치른 허준혁 소장이 퇴각을 명했다.
텐진에서 벌어진 시가전 과정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든 한국 해병중대는 중국 해방군 트럭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퇴각방향은 베이징이었다. 어지간히 간 큰 사단장이었다. 그러나 아직 수행해야 할임무가 남았다.
텐진 곳곳이 불타 오르며 시커먼 연기가 시내 곳곳에서 치솟았다.
중국군 부대들이 텐진에 진입하면서 의심 가는 곳마다 무차별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사망했다.
중국군 부대들 사이에서 오인공격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이것은 중국군 부대들이 진입한 초기에 텐진 번화가 건물 옥상에 남은 해병 저격수들이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텐진 시가지의 총성은 곧 멈췄다.
해병중대는 베이징 - 텐진 간 고등공로를 벗어나 우칭 입체교차로를 통해 103호 국도로 빠져나갔다. 약간 높은 곳에서 보니 방금 빠져나온 고속도로에 중국군 기갑부대가 텐진을 향해 고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해병중대 트럭 행렬 위로 중국 공격헬기들이 날아 지나갔다. 이들은 모두 텐진 시가지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텐진 시가지의 중국군 병력 밀도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시가지에 최소 5개 사단이 들어가 있었고, 지금 이 시간에 텐진으로 향하는 병력은 7개 합성집단군 규모였다. 물론 합성집단군의 모든 병력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동타격 임무를 띤 부대들이 텐진으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호떡집에 불났네."
최주용 병장이 검은 연기가 치솟는 텐진 시가지를 보면서 낄낄거렸다. 그러나 다른 해병들은 침묵을 지켰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상대적으로 집결지와 가까운 곳에서 작전에 투입된 소대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특히 2분대는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이두호는 텐진 도심지에서 팔자에도 없는 교통정리에 나섰고, 변경백 하사 등 두명은 은행에서 돈을 뽑아 가게를 돌며 쇼핑을 했다. 박윤명 일병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 모두가 군사적 목적으로 분대원들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TV카메라가 해병대원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한 것은 텐진을 점령한 한국 해병대가 중국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평화로운 군정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연기력이 미숙한 해병대원들이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런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 같았다. 나머지는 합참 민사심리전참모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전방에 적이다! 분대, 하차!"
트럭이 멈춰 선 순간 변경백 하사가 고함을 질렀다. 분대원들이 총을 들고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300미터쯤 앞에 103호 국도와 허베이성으로 이어지는 성도가 교차하는 네거리가 있는데, 그곳에 중국군 병력이 바리케이드와 기관총 진지를 설치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해병대원들이 흩어져 전투준비를 했다. 그런데 맨 앞에서 달리던 트럭 두 대가 바리케이드를 향햐 속도를 높여 달렸다. 그리고 해병대원들이 트럭에 탄 채 중국군을 향햐 사격을 퍼부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제식 장비인 지에팡 트럭 행렬을 보고 긴가민가하던 중국군들은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다. 트럭에서 해병대원들이 내리며 소총을 발사했다. 동료들이 줄줄이 스러지는 모습을 본 중국군들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실은 해병대 초급장교나 부사관인 기자들이 이 전투장면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총에 맞고 쓰러진 중국군들을 배경으로 방송카메라 앞에 선 기자들은 이것이 베이징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과 약간 달랐다.
"제기랄! 2Km만 더 가면 북경이 보일텐데! 전원 탑승해!"
허준혁 소장이 안타깝다는 듯이 주먹을 쥐고 고함을 질렀다. 베이징 시가지가 보이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그 누구도 한국 해병대가 베이징을 공략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해병대원들이 트럭에 타는 동안 교차로 갓길에 사륜구동차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손을 들고 무릎을 굻은 젊은 백인이 눈에 띄었다. 다행히 해병대원들이 그 백인까지 사살하지 않았다. 허준혁 소장이 백인에게 다가갔다.
"당신 뭐요? 위험하게 왜 이런 데에 있는 거요?"
"저는 AFP 통신 소속 종군기자입니다."
그 기자는 가슴에 기자 패찰을 차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저 ...... 장군님."
기자가 눈치를 살피며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켰다. 허준혁 소장이 가슴을 쭉 폈다.
"찍으슈. 기자가 할 일이 그건데/"
허준혁 소장이 입술과 눈에 힘을 주어 억지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승리의 V자를 그렸다. 그게 더 장난스러워 보였다. 기자는 허준혁 소장 뒤로 트럭에 탄 해병대원들, 그리고 교차로 주변에 널브러진 중국군을 함께 담았다.
트럭 위에서 해병대원들이 활짝 웃으며 사단장처럼 손가락 두 개르 세워 V자를 그렸다. 손가락 하나만 세운 해병대원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낄낄거렸다.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찍히는 사진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해병대원들은 끝까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
6월 16일 09:40 중국 베이징
총참모부 작전부는 한국 해병대로부터 일격을 당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텐진에 한국 해병대 병력 소수가 침투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베이징과 텐진에 주둔하는 인민해방군 병력이 즉각 출동했다. 현재 텐진에 침투한 해병대 소수 병력을 거의 전멸시켰고, 나머지 소규모 잔존부대를 추격중이라는 보고를 방금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텐진이, 심지어 베이징까지 한국 해병대에게 점령당했다고 전 세계의 온갖 매체에서 떠들어댔다. 중국 관영 CCTV 중앙 4개 채널 등 모든 중국 언론들이 침묵을 지켰지만 해외에 거지하는 중국인들이 사실을 확인하려는 통화가 중국 국내로 폭주하고 있었다. 각 군구 또는 합성집단군 지휘관들이 총참모부에 사실여부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와 무선통신도 폭주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1부장, 즉 작전부장인 왕양준 소장은 실로 어이가 없었다. 보좌관인 작전부장 조리, 천리화 대교도 황당하다는 듯이 소파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베이징에 나타난 한국 해병대 장군은 2사잔장이야. 해병 2사단은 산둥반도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한국 해병 2사단인 텐진을 점령했다고 해,. 해병 2사단장도 텐진에서 나타나 카메라 앞에 섰어. 그렇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지!"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수장 동지! 어떻게 외국 언론들을 설득합니까?"
천리화 대교가 고민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왕양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중앙군위 주석 동지도 내 말을 믿지 않아. 다른 중앙군위 위원이나 군구 사령들도 텐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난리야. 텐진에 침투한 한국 해병대가 소수 게릴라에 불과하다고 어떻게 그들에게 설명하지? 110호 고등공로와 109호 국도가 차량으로 붐벼 마비됐다는군."
두 도로는 베이징에서 서쪽 또는 북서쪽으로 향하는 도로다. 서둘러 베이징을 빠져나가는 베이징 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때마침 한국 순항미사일 공격을 베이징에 퍼부었는데, 이것은 텐진을 점령한 한국군 포병대가 베이징을 향해 야포 사격을 실시한 것으로 오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당장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텐진을 취재하도록 주선해야 합니다. 미국과 프랑스 곳곳에서 베이징이 함락됐다는 호외가 시내에 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이 사태를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작전부 소속 군관이 들어와 왕양준에게 메모를 건넸다. 메모를 읽은 왕양준 소장이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천리화 대교가 메모지를 받아 살펴보니 AFP 통신이 세계로 타전한 기사 내용이었다.
제목: 한국군, 베이징 공략 중!
내용: 현지 시간 오전 9시 30분에 베이징과 텐진의 경계지대인 우칭에서 치열한 교전이 발생했다. 베이징 외곽을 방어하던 중국군을 전멸시킨 한국 해병대는 현재 베이징 시내를 향해 진군 중이다. 해병대 사단장이 직접 선봉부대를 지휘했다.
사진 설명: 전투 직후 기자에게 포즈를 취한 한국 해병대 사단장과 해병대원들. 계속된 승리로 자신감에 넘친 표정들이다. 이들 주변에 전사한 중국군들이 쓰러져 있다.
천리화 대교가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것은 결정적이었다. 잡스러운 신문, 방송사가 아니라 AFP통신이 보도한 전쟁 관련 기사라면 그 누구도 기사의 신뢰를 부정할 수 없었다. AFP 통신과 계약한 종군기자들은 특히 독종이라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처참한 체첸내전을 사진과 함게 자세히 보도한 것도 AFP 통신이었다.
천리화는 어떻게 하필 그 전투현장에 통신사 기자가 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물론 우연이었지만 온갖 상상력이 동원됐다.
"제기랄! 한국이 발표한 게 전혀 사실이 아니더라도 중국은 이미 텐진과 베이징을 잃은 거야. 우리 중국의 힘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완전히 사라져버린거지."
왕양준 소장이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계속 울렸지만 흥분한 왕양준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한국이 거짓말했다고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제시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한국 해병대를 몰아내고 텐진을 수복했다고 발표해야 합니다. 몰룬 베이징은 방어했다고 발표해야합니다."
천리화 대교의 말에는 큰 의미가 숨어 있었다. 베이징을 공략하려면 적어도 몇 개 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만약 중국군이 베이징을 방어하고 또한 텐진을 수복했다고 발표한다면 중국군이 대규모 한국군 병력을 몰아내거나 전멸시켰다는 증거가 된다. 텐진을 수복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으니 잘하면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었다.
왕양준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군관이 또 다시 메모를 들고 허겁지겁 들어왔다. 이번에는 더 중대한 사태가 일어난 것 같았다. 메모지를 읽은 왕양준 소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미디어 전쟁인가? PDA나 휴대전화로 간단히 무선인터넷 접속한다는ㄱ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 몰랐어."
왕양준이 메모를 건넸고, 즉시 읽어본 천리화가 혀를 찼다. 황하 방어선에 투입된 중국군 부대 일부에서 도망병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잇다는 보고였다.
일선부대에서 규정상 휴대가 금지된 휴대전화나 PDA를 갖고 있는 병사들이 많았고, 군관들은 알고도 대충 눈감아 주었다. 병사들은 이번 사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과장된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공포를 키워나갔다.
훨씬 후방인 텐진과 베이징이 공략당하는 판에 황하방어선은 의미가 없었다. 또한 후방에 적을 둔 상태에서 전투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용기를 유지 할 수는 없었다. 중국 인민 해방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수성전에서 당한 전철을, 그리고 6.25 때 국군 3군단이 현리전투에서 당한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었다. 두려운 것은 후방의 적!
6월 16일 09:45 중국 베이징 남동쪽 경계
아득히 멀리 회색 스모그 밑에 잠긴 베이징 시가가 보였다. 그 오른쪽 베이징 동부 공업지대에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수많은 굴뚝들이 하얀 연기를 뿜어 올렸다. 그리고 좀더 가까이에는 그림 같은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허베이성과 연겱된 전원지대였다.
이곳에서 베잊ㅇ이 보인다 해서 그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두호 일병은 임현우 일병과 다른 소대 해병대원들과 함께 언덕에서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군들이 큰 인명피해를 입고 언덕에서 물러났으나 곧 다시 올라 올 것 같았다. 중국군 장갑차들이 언덕을 향햐 기관총을 쏘아댔다. 언덕 좌우로 우회하는 병력을 엄호하기 위한 사격이었다. 우회하는 중국군 병력을 뻔히 보고도 해병대원들은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임무는 대충 끝났나?"
군시중 중위가 떨더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단장도 죽고 사단 참모들도 다 죽었다. 분대장 변경백 하사도, 분대 막내 박윤명 일병도 조금 전에 전사했다. 방송국 기자로 위장한 장교와 부사관들도 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해병대원은 없었다. 곧 다시 만날 것이므로.
해병 2사단장은 온몸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허준혁 소장은 숨을 거두기 직전 피를 토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긴 분명히 베이징이다. 베이징은 우리 해병대가 점령했다."
이두호 일병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임현우 상병은 마음의 정리가 끝난 듯 차분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남은 해병 여덟 명이 언덕 뒤에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총탄은 항상 그렇듯이 머리 위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아리랑~ 아리라앙~ 아라리요오오~
웬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국 땅에서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듣는 조국의 노래가 하필 아리랑이었다. 이두호 일병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런데 옆에서 임현우 상병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요? 대출 받겠냐고요? 돈 빌려주면 고맙죠. 한 100억쯤 대출해 줘요."
임현우가 전화를 끊으며 씩씩거렸다. 임현우의 휴대전화에 걸려온 것은 광고 전화였다. 분위기에 전혀 안 어울리는 전화 내용이었다. 해병대원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임현우에게 눈길을 보내는데, 권시중 중위가 낮은 포복으로 임현우에게 다가왔다.
"로밍 되는 거야? 중국이 안 끊었어?"
"이건 위성전화입니다."
해병대원들 대부분 휴대전화를 국내 부대 주둔지에 놓고 왔다. 중국 땅에서 통화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는 당연했다. 한국군이 산둥반도에서 한국으로 전화하는 꼴을 중국이 눈뜨ㅜ고 못 보리라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대전화는 기지국이 필요하고, 기지국은 전쟁 중에 파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산둥반도에서 몇몇 해병대원들이 국내 가족들과 통화를 시도했디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위성전화는 비싼 요금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그리 많이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전쟁이 시작되면서 잦은 핵폭발로 인해 통화품질도 많이 떨어져 최근에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위성전화가 여기서 제대로 작동했다.
"그거 이리 줘봐."
휴대전화를 빼앗은 권시중 중위가 버튼을 연속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이두호에게도 들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해병대원들은 권시중 중위가 상급부대나 해병상륙부대 사령부에 전화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전혀 아니었다. 권시중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이두호가 앞으로 꼬구라졌다. 총탄에 맞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요 저 시중이예요. 저 보세요"
권시중 중위가 휴대전화를 얼굴 앞에 댔다. 이두호 일병도 전화기 LCD창에 나온 권시중 중위의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두호도 집에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건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여서, 권시중 중위가 빨리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래. 내 새끼. 밥은 잘 챙겨 먹냐? 안 다쳤지?
"그럼요! 제가 누군데 굶겠어요? 끄떡없어요!"
권시중 어머니가 손가락을 쭉 뻗었다. 손가락 끝이 얼굴만큼 커 보였다.
"뭐하세요?"
-응. 이 통화가 녹화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어. 에구 , 내 새끼. 그래. 지금 어디 있어? 연운항인가 하는 곳으로 간다며?
이두호가 다시 엎어졌다. 연운항은 이틀 전에 해병 2사단이 공격하던 롄윈강이다.
부대 주둕지나 진격 방향은 군사기밀에 속한다. 소대장은 가족과 통화하면서 수시로 군사보안 사항을 위반한게 틀림없었다. 귄시중 중위가 자랑스럽게, 그러나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금 북경에 있어요! 우리 해병대가 선봉으로 돌격해 북경을 점령하고 있어요!"
-그래 아까 뉴스에서 봤다. 거기에 있어? 몸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일에는 나서지 말고, 그런 일은 부하들한테 맡겨. 알았지?
"그럼요! 엄마, 사랑해요!"
권시중이 휴대전화 LCD 창에 입술을 대고 쪽 하는 소리를 냈다.
이두호가 모로 쓰러졌다. 소대장이나 어머니나 똑같았다.
"보세요! 멀리 북경 시내가 보이죠?"
권시중이 휴대전화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베이징과 그 주변을 향해 천천히 돌렸다.
휴대전화에 딸린 카메라 렌즈가 2천만 화소라 하나 실제로 빛을 받아들이는 촬상소자 자체는 아주 작다. 그래서 권시중 어머니가 휴대전화 LCD 창을 통해 베이징 시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베이징 영역 안이라 해도 여기서 베이징 시내까지는 너무 멀었다. 바로 그때 권시중의 손과 휴대전화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붉은 피와 작은 기계 부속품블이 공중에 흩어졌다. 언덕에 총탄이 쏟아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포탄이 수없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6월 16일 14:10 중국 산둥성 둥잉 북서쪽 21Km
해병 상륙부대 사령관 문영대 소장은 언덕에 올라 황하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갈수기라 강폭이 크게 줄어든 황하 하류 위에 가설된 부교 네 개 위를 전차와 장갑차, 상륙장갑차들이 지나고 있었다.
하늘 위로 KF-16 전투기 네 대가 황하 북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황하방어선의 주요 거점인 빈저우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빈저우에는 한국 해병대 포병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황하방어선을 지킥던 중국군은 스스로 무너졌다. 베잊ㅇ이 한국 해병대에 점령됐다는 뉴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합참 민사심리전 참모부에서 파견된 팀이 중국군 지휘부의 통신망에 침투해 갖가지 가짜 정보와 명령을 뿌렸다.
중국 정부와 인민해방군 지휘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외신을 통해 베이징이 함락됐다는 뉴스를 접한 중국군 지휘관들은 황하방어선에서 뒤로 물러나 베이징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퇴작전은 군사작전 중에서 가장 어렵고, 후퇴과정 중에 도망병이 많이 발생한다.
바로 이때 텐진에 침투한 한국 해병대 소수 병력 제압을 마친 이민해방군 7개 합성집단군 병력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텐진 남쪽과 황하 북쪽의 중간지역에서 편제를 갖춰 후퇴하던 중국군 대부대들과 마주쳐 엉망으로 뒤엉켜버렸다. 특히 도로결집점인 창저우 주변도로는 모든 방향이 차단돼 차량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중국군이 겪은 재앙은 적인 한국군이 아니라 같은 중국군 대부대로 인해 발생했다.
중국군 교통통제반원들이 남쪽에서 올라오는 부대를 우회로로 유도했으나 우회로도 곧 수많은 전투차량으로 인해 막혀버렸다. 이것은 불과 몇 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고, 춘절명절기간보다 정체가 심해 도로가 다시 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군 교통제반이 수령한 명령은 가짜였다.
이들 머리 위로 날아온 것은 한국 전투기들이 투하한 집속폭탄이었다. 순항미사일도 공격에 가세했다. 무수한 자탄이 흩뿌려지며 차량과 인간의 몸을 가리지 않고 파괴했다.
결국 창저우 주변 도로 곳곳에서는 1991년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던 이라크 기갑부대가 당한 것과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전차와 장갑차, 트럭들이 꼼짝 못하고 뒤엉킨 채 불타올랐다.
"해병 2사단이 점령했던 베이징을 '다시' 점령하는 작전이다."
문영대 소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언덕을 내려왔다. 사령부 참모요원들이 문영대 소장을 뒤따랐다. 언덕 아래에 세워진 지휘장갑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장갑차에 탄 문영대 소장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TV 모니터였다. 통신장교가 TV를 보며 훌쩍이고 있었다. 베이징 교외까지 진격한 해병대 2사단 병력 중에서 권시중 중위라는 장교가 어머니와 통화하는 모습이었다. 세계 모든 뉴스 전문 방송국들이 오늘 내낸 이 화면을 내보냈다.
권시중 중위가 활짝 웃다가 화면에 입을 가까이 댔다. 화면 전체에 권시중의 입술만 보였다. 그리고 흐린 하늘 아래 펼쳐진 평원에 서있는 베이징 시가지가 화면에 자그맣게 들어왔다.
문영대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너무 멀고 화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카메라폰에 잡힌 영상은 분명히 베이징 시가지였다. 잠시 후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화면이 검게 변했다. 통신 장교가 다시 훌쩍 거렸다.
대한민국 해병대 2사단장이며 문영대 소장의 후배인 허준혁 소장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병 2사단은 현재 베이징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징 일부를 점령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문영대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통신 컨솔에 해병 상륙부대 예하부대 전체가 수신 중이라는 신화가 떴다.
문영대 소장은 조금 전에 황하를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혼잣말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병 상륙부대는 해병 2사단이 점령했던 베이징을 '다시' 점령하려고 진격하는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해병 2사단은 지금도 베이징을 계속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을 점령하고 있는 해병 2사단을 지원한다. 전진하라!"
문영대 소장이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진격의 선봉은 제1 해병상륙사단이 맡았다. 해병대가 패할리는 없었다. 왜냐 하면 해병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해병상륙부대 이야기는 끝....
6월 18일 08:30 러시아 코랴크 자치관구, 우엘렌
중략
한국군은 서쪽으로 공격 방향을 꺽었다. 한국은 중국 베이징을 먼저 공격할 모양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미군 전투근무지원부대가 한국군 보급을 맡았다고 한다. 절반 이상 살아남은 미국의 포병과 공병등 전투지원부대도 진격하는 한국군의 뒤를 따랐다. 미국은 전쟁을 그만 두려는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볼코노프스키 원수는 그것이 매우 유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패할 수 없었다. 러시아인은 결코 미국의 오만을 용납할 수 없었다.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볼코노프스키 원수가 팔짱을 끼었다.
"자! 그럼 지구 멸망을 위한 서곡을 연주해볼까?"
<2부에 계속>
|
첫댓글 @@,
소설을 Ctrl + Ctrl V하면서 빼먹은 내용이 국군 해병대가 점령한 베이징에서 TV방송(국정원 민사요원)하고 중국인(국정원요원)과 인터뷰하면서 적국의 여론을 왜곡하고 선전전을 벌이는 것을 빼먹었습니다. 이게 현실에서는 세월호 사고 이후 어머니회 회장이 유족인 마냥 대통령을 만나 울고 불고 하는 것과 위안부 합의 이후 '엄마부대' 대표가 대통령 합의 잘했다고 언론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