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탄산업이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집중되어 있던 강원도의 태백, 정선, 고한·사북, 삼척, 도계 등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었을 때 그곳의 사정을 알고 싶어 태백전력소에 갔다.
일은 대충 마무리 짓고 나니 시간도 많고 나 혼자고 아는 사람도 있을 리 없으니 올 때부터 마음 먹었든 ' 탄광촌 대포집'에서 술 한 번 푸지게 먹는 것과 '뒤로 가는 열차'를 한 번 타보기 위해
도망 나오듯이 전력소를 빠져나왔다,
80년대 중반 이후 3저 (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힘입어 빠른 경제 성장의 달성과 반도체, 자동차, 산업용 전자 등 기술집약형 산업이 성장을 주도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석유와 가스
보급으로 석탄 수요가 급감한 데 따라 대표적
탄소에너지인 석탄 채굴은 이미 경쟁력이 잃었다. 전국 300여개 석탄 광산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석탄공사가 직영하는 전남 화순광업소, 태백 장성광업소, 삼척 도계광업소 등 3개 국영 탄광과 국내 유일의 민영 탄광인 삼척 경동-상덕광업소 등 4개뿐이다.
까치발 건물에 대포집 간판을 달고있는 가계가 문은 열었으나 광부가 떠났으니 손님이 있을리 없다.
높은 나뭇가지 위의 까치집처럼 지역 경기는 썰렁했다
화약골 삼거리인 ‘바람부리’는 탄광촌이 호황기였을 때 대포집이 즐비했던 곳이다. 광부들이 떠나가니 마을도 휑하게 드러나 썰렁해졌다.
바람부리에서 도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니 태백시내 중심인 황지연못이다. 연못 앞 돌기둥에
새겨진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고 쓰인 글이 퍼뜩 눈에 띄었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믈줄기 따라 솟아올라 황지연못을 이루고, 이 물은
태백팔경 중 하나인 求門沼를 지나 영남 내륙을 관통한 뒤 을숙도를 거쳐 남해에 합류한다
통리역의 驛舍는 동해남부선 서생역의 역사와
느낌이 비슷했고 승강장은 있데 승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비슷했다..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북부의 고생대에 주로
매장되어 있던 무연탄은 과거 196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다. 조개탄과 연탄은 지금은 옛시절이 생각 날 때 간혹 떠오르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生活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때의 강원도 태백, 영월, 정선. 사북, 도계 등의 읍내는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사람과 돈이 모여 번창했던 곳이었고 그 지역의 석탄은 중앙, 영동, 태백선 등의 산업 철도를 이용하여 운송되었다
기차는 선로와 열차 바퀴의 마찰력이 낮기 때문에 경사가 급한 구간은 운행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는 頃東地形으로 서쪽의 완만한 경사에 비해 동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탄광 지역에 철도 선로를 건설하고 운영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서쪽에서 서서히 올라 통리역 680m에 이른 열차는 도계역 245m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직선거리는 6.3km이지만 고도차는 435m로 우리나라의 가장 험한 철도 구간 중 하나였기에 급경사인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철도의 특수 시설이 필요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철도
특수 시설( 인클라인, 스위치백, 루우프식 터널)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참고로 철도에서 경사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퍼밀을 사용한다.기차가 1000m 거리를 진행하며 30m 고도를 올라 간다면 30퍼밀의 경사를 지나게 된다,
경사가 30퍼밀을 넘는 경우를 급경사라 표현하고 안전을 위한 물리적 한계는 대략 35퍼밀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