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YzcLM1f3_qU
1984년 12월30일 KBS방영-가요대상 38세의 송창식
https://youtu.be/0fW9kX8ut78
2010년 5월 14일 방영-The ebs apace-63세의 송창식
https://youtu.be/UCY3PE4phOs
2024년 7월4일 방영- 마스터 송창식-77세의 송창식
송창식은 1947년 2월 22일 경기도 인천부 신흥동(현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 팝 음악인이다.
그는 77세로 생존하여 노래를 부르며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진취적인 창작자로 평가받으며, 특히 1970년대 사회적으로 억눌린 젊은이들에게 음악적 해방을 선사하며 청년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
음악 경력
송창식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 폴리오'로 데뷔했다.
그의 주요 히트곡으로는 다음과 같은 곡들이 있다:
고래사냥
우리는
담배가게 아가씨
한번쯤
왜 불러
창밖에는 비 오고요
사랑이야
가나다라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으며, 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
.
개인적 배경
송창식은 경찰관 출신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한국 전쟁 중 아버지가 전사하고 어머니도 행방불명되어 조부모 슬하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중퇴해야
했다.
음악적 영향력
송창식은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라고 평가받을 만큼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후배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창식의 음악과 삶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송창식이 트윈 폴리오에서 데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송창식이 트윈 폴리오에서 데뷔하게 된 이유는 우연한 기회와 음악적 열정이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송창식은 원래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1967년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조영남이 팝송을 부르는 것을 보고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쎄시봉에서 활동하던 이상벽의 친구였던 송창식은 1967년 9월 쎄시봉 무대에 처음 섰습니다. 당시 그는 팝송을 몰라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를 불렀습니다.
쎄시봉에서 윤형주를 만나 그의 팝송 실력에 감명을 받았고, 대중음악이 클래식과 달리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습니다.
송창식은 윤형주에게 트리오 결성을 제안했고, 처음에는 거절당했지만 결국 윤형주가 송창식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면서 1967년 10월 '쎄시봉 트리오'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멤버 변동으로 인해 1968년 2월 1일, 송창식과 윤형주 둘만의 '트윈 폴리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송창식은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관심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트윈 폴리오를 통해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독특한 음악적 배경과 재능, 그리고 우연한 기회가 만나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입니다.
송창식의 음악이 70년대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송창식의 음악은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음악이 70년대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음악적 해방과 저항 정신
송창식의 음악은 사회적으로 억눌린 70년대 젊은이들에게 음악적 해방을 선사했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당시의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청년 문화의 상징
송창식은 그의 음악을 통해 70년대를 풍미하며 청년 문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젊은이들의 감성과 열망을 대변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 전달
송창식의 곡 중 일부는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왜 불러'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장발 단속에 쫓기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으며, 반항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공감
송창식의 음악은 당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습니다.
송창식의 음악은 단순히 대중음악을 넘어 70년대 젊은이들의 정서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송창식의 음악 철학은 무엇인가요?
음악의 본질 추구
송창식은 음악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사회와 시대정신의 반영
송창식은 음악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고와
고민 그리고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그 모든 것을 음악이란 그릇에 용해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
송창식은 예술성 높은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독창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한국적 정서와 현대성의 융합
송창식은 우리 고유의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국악과 현대 음악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통해 한국적 정서와 현대성을 융합하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지속적인 음악적 진화
송창식은 음악적 실험과 진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송창식의 음악 철학은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저보다 3살 아래인 송창식은 자랑스런 인천중학교 후배 동창생입니다.
송창식이 1968년 20대에 트윈폴리오로 데뷔하여 녹음한 아래 레코드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돌리면 영원히 젊은 송창식이 노래하며 항상 내 곁에 있습니다,
첫댓글 68년에 라디오에서 하얀손수건 을 듣고 69년엔 OB'S CABIN 에서 두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서 왼쪽 윤형주는 알겠는데 오른쪽 안경쓴 송창식은 처음 봅니다.
애써 공부해 세브란스 의예과 들어가 제 갈길 가지 않고 저런 딴따라 아들을 둔 부모 마음이 어땠을까요?
송창식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꾸준히 개척한 음악 천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YM 오엠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송창식은 안경을 않쓰느데 안경쓴 유형주와 콤비를 맞추느라 엷은 선그리스를 쓴거 같습니다.
이 음반은 68년 두사람이 트윈폴리오로 데뷰한후 처음 만든 음반입니다.
1970년에 초반이 나왔으니 송창식 23세살때 녹음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저 음반 초반을 처음사서 가지고 있었는데 무선국 개국하고 얼마않되서 고인이 된 HL2JN이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아
사진의 음반은 똑같을 것을 1990년에 중고로 구입한것입니다. 음반제작년도도 1980년.
레코드판은 처음 발매된 초반이 제일 음질도 좋고 유명판은 부르는게 값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80년 제작판은 똥값.
세시봉 오비캐빈 젊을때 믾이 드나들었지요.
우리 또래 연배들은 송창식의 음악을 대부분 좋아하고 지금도 자주 부르곤 하지요?
그런데 빠른 탬포와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을 따라하지 못해 실제 듣는 음악으로는 참 좋은데
부르는 음악으로는 좀 부담스러워서 애창곡 목록에 넣기는 쉽지않습니다.
곡도 좋고 가사도 좋은 저 '우리는' 을 저도 특별히 좋아합니다만 노래방에 가도 왠지 리모컨에
손이 잘 안갑니다. hi
대신 좀 부르기 쉽고 감미로운 윤동주 시에 곡을 붙인 조영남씨 노래 '서시'를 제일 좋아합니다.hi
맞습니다. 송창식 노래는 듣기는 좋지만 따라 부르기 힘들지요.
송창식은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만들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작사도 하고 창법도 별나게 해서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