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간 전국 각지 교소도에서 복음 전해
기도로 낳은 자녀들과 손자 8명 자손 번창 감리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줄 알고 자랐다. 그런 내가 27살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교회를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 시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수시로 산에 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다니셨다.
결혼 후 첫딸을 낳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낳았건만 시어머니는 아들이 아니라고 나를 구박하셨다. 남편이 3대 독자라 이해하려 노력했다. 둘째가 생기길 기다리는데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어머니는 집을 나가라는 소리까지 하셨다. 불임검사를 하러 대학병원에 갔는데 어떤 환자에게 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와서 위로를 해주고 함께 찬송 부르는 모습을 봤다.
나에게도 익숙한 찬송이라 무심코 따라 부르다 무서운 시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입을 틀어막고 “하나님 저 어머니 돌아가시면 교회갈께요”라는 이상한 타협을 했다. 그 혼잣말이 오히려 나에게 충격이 됐다. ‘안 되겠다. 내가 지금 가야겠구나’라는 결심이 서 그 주일부터 버스를 타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다시 신앙생활을 하자 1981년 하나님이 둘째 딸을 주셨다. 이어 셋째 딸을 내리 낳자 시어머니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성경에 있는 한나의 기도를 흉내내기 시작해 넷째가 잉태된 후에도 새벽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다. 남편은 아들이 태어나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성경학교의 모든 과정을 공부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았다. 교회학교 교사를 20년 하고 지금은 남선교회에서 봉사 중이다.
나 역시도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조건 순종했다. 교구에서 지·구역장으로 섬기던 중 교회 친구의 권유로 교정복지선교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마태복음 25장 36절에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는 말씀을 주셨기에 한마디로 선교회 활동에 올인했다.
30년간 교정 선교를 하는 이유와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어 감사하다. 교도소에 갈 때마다 회원들이 힘을 모아 떡 한 가마니, 빵 수백 개,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등 인원수에 맞게 간식을 전달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또 건강을 위해 노력한 적도 없는데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 흔한 성인병 하나 없이 건강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자녀들도 간호사, 고등학교 교사, 어린이집 교사, 회사원으로 잘 성장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나는 자녀들 덕에 여덟 명의 손자를 둔 다복한 할머니가 됐다. 자녀들이 성장할 때 기도만 했다. 만남의 복을 받아 어디를 가나 자녀들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지혜롭고 건강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항상 기도했다. 기도에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그 복을 누리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