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도 의사할걸 그랬어, 사람들 치료해 주고 좋은 일 하잖아~ 지금이라도 의사 공부할까?"
"아니야~ 공무원이 더 좋아야~ 공무원은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고 좋잖아."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곡식이 탐스러워 보인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 어머니가 살던 50~70년대 시골에서의 공무원인 면장님은 아주 높은 분이셨기에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내가 동장하면서 어르신들 모시고 병원 무료진료 갔을 때 우리 어머니도 모시고 갔는데 병원에서 동장님 어머니라고 하자 표는 내지 않으셨지만 어깨를 으쓱하셨고, 국장이 되었을 때는 쇠땅깨비가 왕땅깨비가 되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이 대화는 노치원에서 어떤 할머니가 어머니 팔뚝을 손톱으로 할퀴어 남양주한양병원에 3주 동안 입원했다 이틀 전 퇴원하고 오늘은 외래로 다녀가는 길에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칭찬하다 나온 것이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던가 고생은 했지만 우리 형제들 어머니 날마다 드시던 막걸리가 알코올 중독인가 걱정했는데 아니라는 것을 확인되었고 이 기회에 막걸리를 적게 드시도록 해보기로 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쯤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막걸리 사러 다니는 세븐일레븐으로 경찰관들 온다고 조금 기다리라는데"
"뭣 때문에 경찰이 오라 그런다냐?"
잠시 후 경찰차가 도착했고 경찰관 두 분과 함께 세븐일레븐 매점으로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얘기를 했다.
(경찰관) 밤에 나이 드신 할머니가 술에 취해 막걸리 사 가신다고 신고가 들어왔어요.
(나) 어머니 입원해 계실 때 의사 선생님이 술 드시며 안된다고 하시더니 의사 선생님이 경찰에 전화하셨나 보네.
(경찰관) 할머니 저녁에 또 막걸리 사러 오실 거예요? 막걸리 드시려면 자녀들이 사야지 할머니가 사러 오면 절대 안 돼요. 아셨죠?
(어머니) 이제 안 와요.
(경찰관) 자 그럼 저하고 약속해요. (경찰관 아저씨와 어머니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경찰관) 사장님, 앞으로 절대 할머니한테 술 파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세븐일레븐 아주머니) 예, 이제 절대 안 팔게요. 할머니 들으셨죠? 이번에 할머니 안 보여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경찰관님들과 함께 매점 밖으로 나왔다.
(나) 우리 어머니 93세인데 이렇게 건강해요. 이 나이에 어머니처럼 잘 걷고 건강한 사람 거의 없어. 어머니는 정말 훌륭해!
(경찰관) 할머니 허리도 안굽으시고 정말 건강하시네요.
경찰차가 떠나자 어머니 혼자 말을 하신다.
(어머니) 내가 뭐라고도 안 했는디 노치원 노인네가 손톱으로 팔뚝을 긁어갔고 형사도 만나고.... 나~ 참.
사실 이것은 밤마다 막걸리 두 병씩이나 드시는 것을 막아보기 위한 연극으로 아침 일찍 청학파출소에 들러 부탁을 드렸고 세븐일레븐 사장님께도 미리 말씀을 드렸었다.
우리 어머니 그동안 금호동 금호제일감리교회 옆에 사시면서 코로나 이전까지는 새벽 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하시던 분이셨다.
그런데 코로나로 집에서 혼자 지내시다 보니 외로움으로 약간의 치매가 왔고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병 드시더니 어느 날부터 두 병으로 늘어났다.
노치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6시쯤 집에 오자마자 바로 옆 세븐일레븐에서 막걸리 사와 다 드시고, 8시쯤 또 한 병을 더 사와 드시는 것이었다.
형제들이 어머니에게 하루에 한 병만 드시라고 하면 언제나 "나도 지혜가 있어야~ 심심하니까 딱 두 잔만 마셔, 배가 불러 두 병을 어떻게 마신다냐!"
그래서 어머니 사진과 하루에 한 병만 팔아달라는 내용의 전단을 세븐일레븐 사장님께 갖다 드렸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다.
"조금 전에 한 병 사 가셨는데 아드님이 절대 두 병 팔지 말라고 했어요" 하면 내가 언제 사 갔느냐고 화를 내며 돈을 놓고 막걸리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세븐일레븐 아주머니도 걱정이 되어 집까지 바래다주시기도 하고 가시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치매와 술 때문에 조금 전 술을 마셨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정작 두 잔만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오자마자 막걸리를 드시고 싶다고 한다.
막걸리 색깔과 비슷한 밀키스를 드리면서 새로 나온 막걸리인데 의사 선생님이 이걸 드셔야 한다고 드렸더니 술맛이 아니고 취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밀키스는 그래도 넘어갔는데 문제는 생활비였다.
요즘은 딸들이 모두 사다 놓기에 생활비는 막걸리 사는데, 주일 날 교회 헌금 그리고 자식들 손주들 오면 집에 뭐 사 가라고 2~3만 원씩 주는 데 쓰고 있다.
생활비를 큰 딸이 가져가서 주지 않는다고 난리가 났다.
마치 큰딸이 어머니의 생활비를 가져다 써버리는 것처럼.
어쨌든 생활비를 드리면 또 막걸리를 드실 것 같아 드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옆에 사는 큰 딸이 날마다 밀키스 두 병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밤에 거실에 설치된 cctv로 지켜보면 막걸리 드시던 습관처럼 계속 밀키스를 드시는 것이다.
밀키스를 막걸리로 알고 드시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 오후 작은 딸이 고덕동 집에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생활비 지갑이 없으니 힘이 없다고 했단다.
작은 딸이 어머니 막걸리 사 간다고 신고가 들어와 경찰관도 왔었다고 하자 다 잊어버리고 예전에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셨다고 한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냐~ 괜찮아야~ 나도 지혜가 있어서 많이 안 먹고 심심하니가 딱 두 잔씩만 마셔야~"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인 장기기억은 뚜렷해도 단기기억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 어머니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무튼 93세 우리 어머니 매일 밤 두 병씩 드시던 막걸리 대신 새로 나온 막걸리 밀키스를 드시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는 온전히 밀키스 막걸리는 이 아이디어를 낸 큰 딸의 공이다.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전히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 여전히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느껴진다.
남양주 별내면에 있는 세븐일레븐 아주머니, 청학파출소 경찰관 아저씨들,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신 남양주 한양종합병원 성형외과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님 그리고 은빛사랑 노치원 선생님들....
첫댓글 정겨운 어머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밀키스 막걸리 아이디어를 낸 분이 참 잘 하셨네요. ㅎㅎ
옆에 살면서 고생하는 큰 딸이.... 막걸리만 좋아한다 생각했지 치매 때문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지요.
치매 초기의 어머니를 돌보시는 가족분들과 좋은 이웃분들 이야기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께서 80세 초반 부터 치매가 있으셨는데 식사 하셨는데 안드셨다고 또 달라고 하고, 오랫동안 피셨던 담배를 어느날 갑자기 담배 피시는걸 잊으셨어요.
치매가 가장 두려운 병인것 같타요, ㅠㅠ 본인은 인지를 못하고 옆에 있는 가족들이 더 마음 아프고 힘들더라고요,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그냥 얘기하면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치매가 단기 기억을 못한다는 것을 이론으로만 알았지 이번에 체험합니다.
주변에 치매 초기 가족있는 분들께 알렸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 츌근했더니 그동안 머금었던 사무실 화단에 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려 또한 행복한 날입니다.
감사하고 갓 피어난 나라꽃 구경하세요~~
지혜롭게 대처하셨네요
막걸리는 위장에 좋습니다. 조금씩만 드시면 좋을텐데요
감사합니다.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중 하나가 조금전 했던걸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의지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밀키스로 지금까지 성공입니다.
오느 아침 우리 사무실 앞에 핀 삼엽 국화 보내드립니다.
@시냇가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