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없는 명 드라마
흔히 박빙의 스포츠 게임을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어제밤 우리 야구 대표팀이 북경 올림픽에 이어 ‘2015 프리미어 12’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 비록 예선전에서 우리 팀을 이겼다고는 하나 2군이 주축을 이룬 미국 팀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번 경기에서 빅게임은 단연 랭킹 1위의 일본과의 준결승전 이었다. 9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순간도 한눈을 팔 수 가 없었다.
북경 올림픽에서도 믿었던 강타자는 연일 헛스윙으로 국민의 애간장을 끓이게 했다. 예선에서 전승을 했어도 우승을 장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준결승 상대가 일본으로 결정되면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매 경기마다 빈타에 허덕이던 L선수는 감독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각본 없는 명 드라마는 결승 쿠바 전이었다.
상황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전개되어 갔다. 국민들은 은메달에 만족한다면서도 내심 금메달을 원하고 있었다. 감독의 노림수도 이런 것이 었을까? 게임은 감독의 의도대로 진행되어 갔다. 바가지 안타 뒤에 타석에 들어선 L선수는 낮은 변화구를 받아 처서 2점 홈런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쿠바도 녹녹한 팀이 아니었다. 아마추어 최강팀답게 홈런으로 한 점을 따라 붙더니 7회 말에는 2루타가 작렬하여 두 점을 보태려는 순간 한 선수가 3루에서 멈춰 섰다. 이해할 수 없는 주루 플레이었다. 아마도 3:3 동점이 되었다면 드라마는 싱겁게 끝이 났을 것이다.
3:2 승부처에서 한국은 운명의 9회 말을 맞는다. 감독은 이미 한계 투구 수를 넘기고 있는 Y투수를 밀고 나갔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푸에리토리코의 주심은 노골적인 봐주기 판정을 내렸다. 안타 뒤의 연속 4구로 만루가 되고 말았다.
이제 안타 하나면 게임은 쿠바의 승리로 끝이 나는 절명의 위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수가 주심에게 볼 판정을 물어보다 항변으로 오해를 사면서 퇴장까지 당하고 만다. 공든 탑이 무너지려는 순간이었다. 선수들과 국민들은 자과감에 빠졌다.
이번 프리미어 게임도 북경 올림픽 야구 경기의 재판이었다. 너무도 진행 상황이 그 때와 유사했다.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과 맞붙은 대표 팀은 괴물 투수의 호투에 헛 스잉만 하다 5:0으로 패하고 말았다. 예선 미국전에서는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면서 일본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준결승전에서 일본과 다시 맞붙게 된다. 이 게임에 일조를 한 것이 대만 2루심의 오심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는 각본에 따라 감독의 감각과 배우들의 이해력이 성공의 성패를 좌우 한다면 스포츠 게임은 감독의 직감으로 연출을 하고 선수들이 평소 연습한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피를 말리다고 하는 것 일까?
오타니 선발 투수는 예상대로 무시무시했다. 7이닝 동안 1피안타 1사구 11탈삼진을 기록하는 호투로 7회 J선수가 안타를 때리기 전까지 우리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일본 감독의 오만이었을까? 잘 던지던 투수를 교체하는 악수를 두었고 우리 팀은 그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9회 초 대타로 들어선 Oh선수는 좌익 선상으로 흐르는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S선수의 투수앞 강습안타로 일, 이루를 만들고 괴물 투수에게 유일하게 안타를 뽑아냈던 J선수가 2루타를 치고 나가 한 점을 만회했다.
급하게 소방수로 나온 일본투수는 L 타자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져 만루의 화를 자초한다. 다급해진 일본은 투수를 교체하는데 몸이 덜 풀린 탓인지 연속 불을 던져 밀어내기 점수를 헌납했다.
계속된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우리선수는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편시리즈 MVP 4번 지명타자였다. 결과는 니혼햄이 자랑하는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1루를 밟은 뒤 그는 우리 덕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4:3으로 역전 당한 일본의 9회말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2번부터 시작되는 막강 타선이었다. 우리 코치진은 북경 올림픽의 수훈갑 잠수함 투수 J를 올렸다. 땅을 흝고 흐르다 타자 앞에서 솟구치는 볼에 손을 대다 순식간에 투아웃이 되고 말았다. 4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발 빠른 대주자로 교체하고는 게임을 끝낼 기세로 홈런왕을 대타로 내 보냈다. 안타면 동점이요 홈런이면 역전패다.
9회말 상황은 어쩌면 그렇게도 북경 올림픽 결승전과 흡사하던지? 코치진은 서둘러 J 투수를 강판시키고 두산의 철벽 마무리 L 투수를 올렸다. 결과는 3루 앞 땅볼 아웃, 우리 팀은 예선의 치욕을 씻어내고 결승에 올랐고 일본은 잘 던지던 투수를 7회에 강판시켜 패배를 자초했다. 우리 팀은 적시에 투수를 교체하고 역전의 명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이번 대회 개막전에서 일본이 우리를 선택했던 것은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차제에 한국 대표 팀의 기를 꺾자는 심산이었다. 젊은 괴물 투수의 193cm 큰 키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포크볼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예선전과 준결승 7회까지 삼진 21개를 잡으며 2안타를 내주는 호투속에 예선 5:0 완승, 준결승 3:0을 거뒀었다.
더군다나 홋가이도 삿보르돔은 괴물 투수의 홈구장으로 더군다나 낯선 재질의 인조잔디는 우리 선수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역시 한일전은 한일전이였다. 선수들이나 국민들의 눈빛이 먼저 달라진다. 일본인 투수는 삼진을 잡을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괴성을 질렀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클로즈업 시켰다.
잘 만든 영화 한편이 수천만 관객을 동원하는가 하면 명 드라마는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은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스포츠게임을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뛰어난 작가가 있어 전혀 예측 할 수없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를 쓰겠으며 어느 감독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스펙터클한 연출을 하겠는가? 그래서 한일전이 각본 없는 명 드라마 인가 싶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훈을 세운 선수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올려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