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네덜란드. 독일방문 성과
- 경제세일즈외교에서 핵 안보 통일외교로 -
박대통령이 3월 23일부터 5박7일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 안보정상회담에 참석하고 독일을 국빈 방문하고 귀국하였다. 이번 방문의 의의와 성과는 대단히 크다.
첫째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파격적 의전을 받고 양국우호협력증진에 기여 하였다. 24일 알렉산드 국왕 오찬에 단독초청을 받았으며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었던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과 현제 네덜란드 축구팀에서 활동 중인 박지성 선수도 참석하였다. 24일 마르크루터 총리 관저에서 만찬 및 정상회담을 갖고 에너지, 과학기술, 원자력 분야 등에서 호혜적 실질협력방안, 지역 및 글로벌 이슈 등에 심도 깊게 협의를 하였다. 양국은 수교 53주년으로 6.25전쟁 때 5322명이 파병하여 한국을 도운 혈맹의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627년 선원 벨테브레이(한국명 박연)일행이 표류하여 한국여자와 결혼하였고, 1653년에는 네덜란드인 38명이 제주도에 표류하여 ‘하멜표류기’를 작성하여 서구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 2차 만국평화회의에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기 위하여 이상설, 이준, 이위종 3명의 밀사를 파견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참석 못하고 이준열사는 분개하여 현장에서 자결한 곳이다. 최근 네덜란드 교과서에도 한국은 ’고도의 산업국가 이자 부국이며 최첨단 스마트폰, 자동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나라‘로 표현하고 한국어도 배우고 있다. 핵 안보 정상회담 회의장에 설치된 대형 TV 74대가 모두 삼성과 LG 제품이었다.
둘째는 제3차 핵 안보정상회담에 참석하여 전임의장국으로서 개막연설을 하고 ‘핵 없는 세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어야한다’며 북한 핵 폐기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촉구하였다. 핵 테러위협에 대응하고 국제 핵 안보체제 발전을 위해 (1)핵 안보, 핵 군축, 핵 비확산에 대한 통합적 접근, (2) 핵 안보 지역협의체 구성 (3) 국가 간 핵 안보 역량격차해소, (4) 원전 사이버테러 대응책 강구 등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아래 국제 핵 안보체제가 추구해 나갈 4개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북한 영변 핵시설에 화재가 발생하면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재앙‘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북한 핵 프로그램은 비확산. 핵 안보. 핵 안전 등 심각한 우려대상으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폐기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도착 직후 제일먼저 시진평(習近平) 중국주석과 한중 정상 회담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 등 한반도 통일 문제를 비롯하여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논의하였다. 박 대통령은 핵 없는 한반도를 강조하고 북한 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재개 표명과 북한 인권조사위(COI)의 최종보고서 채택에 거부권행사를 말라는 부탁을 하였다. 시 주석도 북핵 불용을 제 확인하고 제사회가 원하는 대로 유도하겠다고 다짐하고 새로운 제재수단 동원가능성도 시사하였다. 특히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 지시와 시안(西安) 근교 광복군 주둔지 기념표지 설치 적극지원 등을 약속하였다.
넷째, 미국 대사관저에서 가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박대통령은 ‘북핵문제가 동북아 평화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한미일 3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이 중요성과 북핵 불용과 비핵화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미국과 일본의 협조를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3국 협력은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단결된 대응을 불러올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3자회담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 갖는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총리가 23일 출국하면서 ‘박대통령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향한 첫걸음이 됐으면 한다.’고 하였고 정상회담에서도 서툰 한국말로 박대통령에게 인사와 미소를 보내면서 적극성을 보였다.
다섯째는 25일 저녁 독일을 국빈 방문하여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통일대박의 의지를 다졌다. 26일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 오찬을 마친 뒤 베를린 시장의 안내로 베를린 장벽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총리관저에서 메르켈 총리와 한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교역. 투자 확대를 비롯한 실질적 협력 과 통일 분야 협력 확대방안 등 폭넓은 논의를 하였다. 두정상은 여성으로서 14년간의 오랜 인연으로 박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설명 협력을 요청했고 메르켈 총리도 적극 지지와 공유를 다짐했다.
27일 오전에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 설치한 야외전시관에 들려 DMZ-그뤼네스 반트사진전을 관람하고 우리의 통일 희망과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통독 첫 외교장관 한스, 전 내무장관이며 현 재무장관인 볼프강 쇼이블레 등 과거 통일주역들과 만나 통일 경험과 미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오후에는 한국대통령으로 처음 옛 동독지역 중 최대 경제력을 보유한 ‘드레스덴 기적’ 현장을 방문하여 독일 통일의 여정이 시작된 성모교회(Frauenkirche)를 방문하고 28일에는 드레스덴 공대에서 구체적인 ‘한반도 통일관련 평화통일구상’을 밝혔다. 박대통령은 남북 간 군사적 대결, 불신, 사회문화 장벽, 국제사회와 북한간의 단절과 고립의 장벽 등 4개의 장벽을 허무는 통일의 비전과 남북한 교류 협력을 위한 대북 3대 지원방안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남북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해결로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유엔과 함께 북한 유아 지원 사업 제안, 둘째로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으로 북한지역에 남북복합 농촌단지 조성과 남한이 교통. 통신 인프라 투자와 북한이 지하자원 개발 허용을 제시, 나진. 하산에 남북러 협력사업과, 신의주 중심 남북 중 협력사업을 추진하여 한반도와 동북아 공동발전을 주창하였다. 셋째로 남북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작업으로 교류협력 사무소 설치와 역사. 문화 예술, 스포츠교류, 교육프로그램 공동개발, 북한에 경제 금융교육 지원을 밝혔다. 박대통령은 독일말로 ‘우리는 한민족이다. 통일직후 동서독 주민들이 하나 되어 부른 뜨거운 외침이 한반도에서도 꼭 울려 퍼질 것이라 믿습니다.’ 라고 했다. 28일 저녁에는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여 파독 광부, 간호사와 면담과 기업, 동포, 유학생들과 간담회 마치고 귀국하였다. 1963년부터 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 1천여 명이 파견되었고 현재 3300여명이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박대통령은 이번 네덜란드, 독일을 방문하여 양국 간 우호협력 증진과 핵 안보정상회담에 참석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전 세계에 호소하였다. 그리고 북 핵 불용을 포함한 대북공조에 중국의 동의와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을 재확인 하였고, 한일정상회담의 기초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독일을 방문하여 과거 통독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 한반도 통일을 자신있게 설계하여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드레스덴 구상’ 선언이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번순방은 종전의 경제세일즈외교에서 핵 안보와 통일에 두었다. 그리고 50년 전 아버지는 서독이 내준 전세기로 방문하였으나 딸 박대통령은 전용기로 가서 통일의 꿈을 다지고 왔다. 박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북한도 하루속이 동참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일본도 한일관계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기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