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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한자이야기]席藁待罪(석고대죄)
짚 거적을 깔고 자기 죄에 대한 처벌을 기다린다
피의자들이 수사 받을 때의 태도나 피고인들의 법정에서의 태도가 우리나라가 제일 좋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혐의 사실을 무조건 잡아떼고,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판사나 검사에게 대들고 결정적인 범죄 사실이 증명될 때까지 계속 범죄 사실을 부정하거나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한다.
이런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근대적인 수사나 재판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강점했을 때부터 생겨났다. 그래서 독립운동하다가 잡혀서 재판을 받는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일본의 통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일본의 법에 의해서 재판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의 수상을 세 차례 지내고 조선 통감(統監)을 지냈던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중국 하얼빈에서 사살(射殺)한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여순(旅順)에서 재판을 받을 때, “나는 전쟁하다가 잡혀온 포로이지 죄인이 아니니까, 포로로 대접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그러니 많은 독립투사들이 재판을 받을 때 일본인 판사나 검사 앞에 고분고분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나 애국지사가 일본인들이 만든 법에 의해서 전과자가 되었는데, 누가 인정하겠는가?
1948년 건국 이후로는 좌우익(左右翼)의 충돌로 인하여 좌익에 대해서는 가중한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으니, 좌익에 속하거나 좌익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재판 결과에 수긍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정통성이 부족한 군사정권 이후로는 체제에 저항하는 인사들에게는 가혹하게 처벌을 내렸고, 또 정권 유지를 위해서 범죄를 조작하기도 했기 때문에 법원이나 검찰의 권위가 떨어져 피고인들이 재판 결과에 대해서 수긍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법원은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여론의 동향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의 헌법부터 무시당하고 있고, 법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도 범죄 사실이 뚜렷한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참회(懺悔)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자기 죄를 잡아떼거나 부정하고, 태도도 뻔뻔스럽다. 나라 일을 잘 하라고 뽑아준 대통령들이나,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긴 장관, 차관들이 국가 돈을 수천억, 수백억씩 횡령하고도 전직 대통령 행사를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죄를 안 지었으면 제일 좋았을 텐데, 자기 죄상이 드러났는데도, 국민 앞에 사죄(謝罪)하는 모습을 보이는 고위공직자를 보기 힘들다. 자신이 죄를 지었으면, 죄인으로 자처하여 거적대기를 깔고 엎드려 자신의 죄에 대한 처벌을 공손히 기다리는 태도가, 차라리 국민들의 동정이라도 사지 않을까? ‘석고대죄(席藁待罪)’는 ‘석고청죄(席藁請罪)’라고도 한다.
출처:경남신문 글 허권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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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기 죄를 순수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형량을 대폭 낮춰주는 것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