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본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이 된다고 봅니다. 결혼하면 부부가 생겨나고 주변으로 남자 쪽과 여자 쪽으로 관계가 발생합니다. 사돈 관계로 말미암은 관계입니다. 사실 어른들보다는 자식이 생긴 이후로 그 손자들로 인하여 관계가 친밀해집니다. 부부 사이에 자식이 생겨나지 않으면 이런 관계가 확장되기 쉽지 않습니다. 고모와 삼촌 그리고 이모와 외삼촌의 가까운 관계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자식들로 말미암아 양가로 관계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자식 없이 부부만 있다면 처제나 시누, 처남이나 시동생과 서방님이라 칭하는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확장되어 나가기 어렵습니다. 자손이 생기면 속된 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관계가 확장되어 나가기가 쉽습니다. 특히 우리 혈통 중심의 사회에서 그렇습니다.
한참 인기가 있던 영화가 있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입니다. 그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한 집단은 혈연으로 모인 것은 아니지만 가족 이상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실제 그 팀의 주역인 ‘도미닉 토레토’는 동료들에게 ‘가족’임을 늘 강조합니다. 서로 살펴주고 목숨을 걸고 동료를 찾아 구해내기도 합니다. 함께 일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얻은 것을 함께 나눕니다. 서로에게 덕 되는 일을 도모해주고 잘 되기를 기원해주고 실제로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일이 생기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열일을 제쳐두고 모입니다. 한 마음으로 모이고 일하고 나눕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집단이며 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합니다. 혈연이 아님에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합니다.
실종 신고를 하면서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보호자’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과연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합니다. 실종 신고를 받는 이 경찰관에게 찾는 학생이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비로소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지요. 무슨 근거가 있는가? 그야말로 난감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본 적은 있는가? 아, 수 년 전 그 아이 아빠 장례식장에서 잠깐 보았습니다. 아빠 장례식이니 찾아 왔겠지요. 그것뿐입니다. 정식 인사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고는 내려갔습니다. 그 후 타 지방에서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결혼 전에 아들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본 것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뭘 알겠습니까? 그렇게 수년을 보내고 이제 만난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사춘기를 지내는 학생입니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와서 더 이상 돌봐줄 수 없습니다. 삼촌 하나 있기는 한데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삼촌이 찾은 것이 형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살고 있는 형수입니다. 조카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효진’의 입장에서는 기막힐 입장입니다. 본인이 낳은 아이도 아니고 현재 남편도 없고 아직 새파랗게 젊은 여자입니다. 이제 나이 겨우 서른둘밖에 안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창창한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도 아니고 사춘기 학생의 보호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친구도 엄마도 펄쩍 뜁니다. 한 마디로 미친 짓이지요. 자선사업가야? 네 인생은 어쩌고? 그 말도 안 되는 책임을 떠안으려 합니다. 도대체 왜? 인생 포기한 거야? 막가자는 거야? 본인 혼자의 삶도 버거울 지경인데 무슨 짓하는 거야?
사실 효진이 아들 ‘종욱’이를 받아들인 동기가 애매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는 소재가 있습니다. 여태 현관에 남편의 구두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벌써 떠난 지 2년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종욱이 오고 나서 비로소 신발장에 넣습니다. 마음에서 아직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비록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종욱이를 통해서 남편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래도 어려운 결정이요 선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무료한 일상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기는 했습니다. 때로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원생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수준이 다릅니다. 총각이 결혼과 죽음의 상실을 경험한 여인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벅찰 것입니다.
종욱이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의 생활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병 때문에 헤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한 어머니(?)를 따라 친숙했던 환경을 떠나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여자 친구 하나와 꾸준히 오가며 마음의 의지처를 찾습니다. 말썽꾼(?) 종욱이가 친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알아채고 효진이 도와줍니다. 알고 보니 친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얼마간 키워주었을 뿐입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합니다. 그리고 출산합니다. 그런데 낳자마자 입양을 시킵니다. 종욱이는 극구 반대합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잘 양육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합니다. 아기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객관적으로 아기에게는 어떤 환경이 가장 유익할까요?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가족만이 가족일까 하는 질문을 합니다. 조그만 인연도 키우다 보면 가족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친부모나 친자식 살해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현실을 보며 더 깊이 생각해봅니다. 영화 ‘당신의 부탁’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